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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민주당, '빙하기의 공룡'되나

계파봉합보고서된 대선평가보고서

[취재파일] 민주당, '빙하기의 공룡'되나
민주당이 오늘(5/20)일 6차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18대 대선 평가보고서 내용 중에 개개인의 이름을 적시하고 계량화 해 평가한 부분은 삭제해서 대선평가 보고서를 수정 발간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배재정 대변인은 언론 뿐만 아니라 당내 반발을 고려해 객관적인 노력이 훼손 안되는 범위안에서 당 지도부가 만장일치로 이 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는 대선패배를 뼈저리게 반성하겠다는 취지에서 대선평가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삼고초려 끝에 한상진 서울대 교수를 위원장에 임명했고 위원회는 79일 동안의 자료수집과 분석기간을 거쳐 지난달 9일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장문의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보고서에서는 대선 패배의 주된 원인으로 계파 정치로 인한 당의 분열을 꼽았습니다. 친노 주류 측의 책임을 분명히 한 겁니다.

보고소에서는 총선을 이끌었던 한명숙 전 대표, 이른바 이-박 담합 논란을 일으켰던  이해찬 전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 그리고 문재인 전 후보 순으로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내 설문조사결과도 공개했습니다. 100점 만점에 한명숙 전 대표는 76.3점, 이해찬 전 대표는 72.3점, 박지원 전 원내대표 67.2점, 문재인 전 후보 66.9점, 문성근 전 대표 권한대행 64.6점을 각각 받았습니다. 특히 문재인 전 후보의 결단력 부족이 지적됐습니다. 지도부 퇴진론과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친노 주류 측은 지도부를 선출하는 5·4 전당대회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담겼다며 반발하고 나서면서 대선평가 보고서 발간은 계파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비주류 측에서는 문재인 전 대선후보의 의원직 사퇴 논란이 불거지면서 코너에 몰았고 문성근 전 대표 권한대행은 탈당을 선언하며 정계를 사실상 은퇴하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펜싱의 기대주 신아람 선수는 '1초 오심' 논란으로 금메달 문턱에서 좌절했습니다. 국민들은 크게 분노했고 스포츠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될 조짐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당한 요구에도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명백한 오심에 대한 판정도 그렇습니다. 이런 문화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바뀌진 않을 것입니다. 편파판정과 오심도 경기에 일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성숙함은 어찌보면 프로 선수들에게는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 되 버린지 오랩니다. 평가자인 심판의 권위가 무너지면 판정을 둘러싼 쟁송이 이어질 것이고 경기수준과 재미를 떨어질수록 관객들은 떠날 것입니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판정번복의 결국 최대 피해자는 심판이 아닌 선수와 국민들이기 때문입니다.

수권정당을 꿈꾸는 원내 1야당의 자부심을 내세우는 민주당에 이번 결정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전 지도부가 발간한 공식보고서를 차기 지도부가 칼을 들이대겠다는 발상은 스스로 지도부의 평가와 권위에 흡집을 내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한상진 위원장이 김한길 대표를 만나 수정에 동의했다고는 하지만 보고서에 오류를 인정해 수정에 동의했다는 내용은 보지 못했습니다. 민주당 대선평가보고서는 '오심'과 '편파판정'의 영역에서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려운 논란이 있는 상황입니다. 계파별로 입장이 극명하게 다른 상황에서 불완전한 보고서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부당한 평가로 규정짓는 건 보고서를 작성한 학자들에게 모욕입니다.

정치권의 오락가락 결정에 또 다른 피해자는 대선평가위원회에 참석한 학자들입니다. 기자회견 당시 한상진 위원장은 학자의 양심을 걸고 외압에 굴하지 않고 소신껏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삼고초려로 힘들게 영입한 학자가 그것도 양심에 기초해 작성했다는 보고서에 칼질을 하는 역사가 반복된다면 정치권이 어떤 진정성으로 호소해도 학자들은 학자의 권위와 양심까지 두 번 죽이는 정치권에 더 이상 발을 디디지 않을 것입니다.

단 한 글자도 바꾸지 않겠다는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대선평가보고서를 수정한 새 지도부의 속내는 결국 계파갈등을 봉합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입지가 약한 비주류 지도부가 인선작업을 비롯해 당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범주류측과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판단, 이 때문에 범주류측에 화해의 표시로 선물을 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옵니다. 기반이 약한 지도부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불가피한 정치적 행위'라는 온정적인 시각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새 지도부가 천명한 '뼈를 깎는 당 혁신'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얼마나 믿어줄지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습니다. 계파해체의 실체가 계파봉합이라는 미봉책으로 받아들여 지는 순간 민주당은 또 다시 '구태정치'라는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새누리당과의 경제민주화 경쟁보다 민주당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의 야권재편을 둘러싼 더 큰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원내 127석을 보유한 탄탄한 조직력을 가진 민주당이 안철수 개인과의 경쟁이 가당키는 하냐는 자신감 배인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2003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탄핵 국면에서 30여석에 불과했던 소수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선거는 명분을 동반한 바람입니다. 혁신과 계파봉합의 명확한 경계선을 민주당이 잊어버리는 순간, 현실에 철저하게 안주하게 된다면 민주당은 곧 '빙하기의 공룡'의 심정을 느끼며 뼈저리게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안철수 현상을 부채질 하는 게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비판이라는 점을 민주당은 다시한번 숙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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