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링, 본명은 주링링입니다. 중독 되기 전까지는 부모에게는 축복과 같은 딸이었습니다. 공부를 잘해 중국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칭화대 화학과에 들어갔습니다. 피아노와 중국 전통 거문고도 잘 다루고 심지어 노래 실력까지 뛰어나 교내 가창 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용모도 빼어나 칭화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학생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만약 중독 사고만 없었다면 그 누구보다 앞날이 밝았을 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1994년 12월 주링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심한 복통과 함께 정신병 증세를 보이고 머리가 모두 빠지는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다행히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자 병세가 호전돼 다음해인 95년 3월초에 퇴원할 수 있었고 학교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달15일 다시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이번에는 호흡 곤란까지 오면서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그리고 5개월 동안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중국 병원은 주링이 다시 쓰러진 뒤 독극물 중독으로 추정하면서도 그 독극물이 무엇인지 한달이 넘도록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미국 UCLA에서 근무하는 중국계 의사들의 도움까지 받아 그해 4월28일에서야 탈륨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문제는 탈륨이란 화학물질은 일상 생활에서는 접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누군가 주링을 독살하기 위해 일부러 탈륨을 몰래 먹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94년 12월과 95년 3월 두 차례에 걸쳐서요.
중국 사회는 경악했습니다. 누가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요? 중국 경찰은 그해 5월부터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칭화대 여대생 기숙사는 당시 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습니다. 또 탈륨은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중국 경찰은 조사에 착수한 지 2년이 지난 97년 4월에서야 유력한 용의자로 주링의 같은 과 학우이자 룸메이트인 쑨웨이라는 여학생을 지목합니다.
쑨웨이는 주링과 함께 교내 가창대회에 출전했다가 주링에 밀려 입상에 실패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주링을 시기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쑨웨이에 대한 중국 경찰의 소환 조사는 단 한차례로 끝납니다. 그리고 다음해인 98년 8월에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쑨웨이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립니다. 주링 중독 사건은 끝내 미제 사건이 됐습니다.
경찰은 당시 주링이 중독된 뒤 수사 착수까지 반년 가까이 흘러 거의 모든 증거가 훼손됐다고 변명했습니다. 아울러 누군가가 주링이 평소 기숙사에서 쓰던 물품들을 없애버려 수사가 더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용의자였던 쑨웨이에 대해 심증은 가지만 물증이 없다는 거죠. 하지만 당시 중국인들은 이런 수사결과가 나온 원인을 달리 받아들였습니다.
쑨웨이의 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모두 민주당파(중국의 명목상 야당)의 주요 요직에 있는데다 정협의 주요 위원(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 중국 유력자들이 맡고 있음)이기도 한 고위 인사이기 때문에 중국 경찰 당국이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링은 현재 생존해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주링이 아닙니다. 탈륨 중독으로 뇌신경이 대량 파괴되면서 눈도 보이지 않고 거의 거동도 못합니다. 지능 역시 정상인에 한참 모자라게 돼 늙은 부모의 보살핌 속에 삶을 겨우겨우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웠던 옛 용모는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최근 중국인들 사이에 다시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발단은 올해 4월 발생한 푸단대 연구생(석사 과정 대학원생)의 독살 사건입니다. 역시 중국의 전통 명문대인 푸단대에서 한 연구생이 독극물에 중독돼 숨졌는데, 수사 결과 같은 과 연구생으로 룸메이트인 학우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주링의 사건과 너무나 닮았죠. 현재 푸단대 독살 혐의자는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링의 비극을 기억하고 있던 수많은 중국인들이 주링 중독 사건도 재수사하라고 인터넷을 통해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아울러 주링의 부모가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해 그동안 당시 수사 기록을 요구해왔지만 중국 경찰 당국이 이를 계속 거절해온 사실까지 확인되면서 중국 누리꾼들의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인 10만명이 서명한 청원서를 미국 백악관에 접수하기까지 했습니다.
미국 법규에서는 10만명 이상이 청원한 사안에 대해서는 백악관이 어떤 식으로든 답변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이런 제도를 이용해 사건 뒤 이름을 바꾸고 미국으로 이주한 쑨웨이를 중국으로 추방해 재수사를 받도록 하라고 청원했습니다.
사안이 이렇게 발전하자 중국 경찰이 공식으로 입장 표명을 하고 나섰습니다. 자신들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통해 재수사가 불가능한 점을 설명했습니다. 이미 증거가 다 없어졌고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당시 상황을 명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당시 수사에 압력을 행사한 외부 인사나 기관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중국인들은 없어 보입니다. 오늘도 바이두(중국판 구글)나 요쿠(중국판 유튜브)에는 주링 중독 사건을 재수사하라는 요구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많은 언론 매체들도 이 사건을 새삼 다시 보도하고 있습니다. 머리 좋고, 재능 많고, 아름다웠던 한 명문 여대생의 비극이 중국의 비극처럼 느껴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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