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내가 사는 이유 '버킷리스트'

[취재파일] 내가 사는 이유 '버킷리스트'
 일본 특파원 시절, 인상에 남았던 일본 TV광고가 있었습니다. 광고는 캠핑을 간 아버지와 딸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대화를 나누는 설정이었습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버지가 10대의 딸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딸은 “아빠처럼 되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아버지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데, 딸이 “아빠의 꿈은요?”하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웃으며 “나는 이미...”라고 말하려다가, 의표를 찔린 듯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멈춥니다. 아버지는 “나는 이미 성공해 꿈을 이뤘잖아”라고 말하려다,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죠.

이 광고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마 저도 10대 아들을 둔 40대 아저씨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광고 속 남자처럼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며, 적당히 꿈을 잊고 지내는 공통점이 있어서였을 것입니다. 제 이야기라는 생각에 감정이입이 쉽게 된 것이겠죠. 그리고 짧은 시간이지만 제 일상을 되돌아봤던 것 같습니다.  

<현장 21-버킷리스트>편을 취재하면서 비슷한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주인공들의 사연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말에 많이 공감이 됐고, 때로는 그들이 품어내는 긍정적 에너지에 살짝 압도되기도 했습니다. 좋은 자극이 되어서, 안일한 내 모습을 반성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버킷리스트를 쓰기 시작했고,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버킷리스트를 쓸 것을 열심히 권하고 있습니다.

왜 버킷리스트를 쓰는 것이 좋을까요? 먼저 버킷리스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취재했던 진로교육 프로그램 ‘열정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의 사례가 적절할 것 같은데요, 이 ‘열정대학’은 처음 입학할 때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쓰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학생들 대부분이 당황한다고 합니다. 왜나 하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100가지가 안 되기 때문이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또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오지 못한 것이죠. 30여개 정도까지는 술술 잘 쓰는데, 그 다음부터 막힌다고 합니다. 저도 막상 써보니 100개는 도저히 못 쓰겠더군요.

하지만 버킷리스트를 쓰다보면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키워드가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여행을 좋아하면 여행 관련 리스트가 많아지고, 글을 쓰고 싶어 하면 책 출간과 관련한 버킷리스트가 많아지는 식이죠. 그리고 버킷리스트를 수정하면서, 자신의 선호도가 더 뚜렷해진다고 합니다. 박 영미 학생은 “ 버킷리스트를 적으니까 하고 싶은 것이 생겼어요. 아, 내가 관심 있는 것이 있구나. 내가 이런 것에 흥미를 느끼는 구나” 라고 말했고, 박 다희 학생은 “처음에 쓴 버킷리스트는 나의 가짜 욕망일 수도 있잖아요. 남들이 하니까 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는데, 점차 버킷리스트를 지워가고 추가하다 보면 제가 원하는 것이 뚜렷하게 보입니다”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유 덕수 열정대학 대표는 그래서 “버킷리스트는 본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지름길”이라고 단언합니다.             

두 번째 장점은 버킷리스트가 삶의 방향과 속도를 설정할 때 유용한 도구라는 것입니다. 삶의 ‘방향성’과 ‘구체성’을 준다는 것이죠. ‘버킷리스트 전도사’로 불리는 김수영 작가는 다음과 같이 비유합니다. “인생을 한 권의 책이라고 한다면, 버킷리스트는 목차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대략적인 목차가 있는 책과 아무 목차도 없이 그냥 백지에 씌어지는  책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을 해요.” 막연하게 ‘어떠어떠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만 한 채 일상에 파묻혀 허겁지겁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세우고 삶을 충실하게 보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꿈을 현실로 만드는데 버킷리스트는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과장이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방송에 나온 주인공들을 만나고 그들의 확신에 찬 표정과 목소리를 들으면서 차츰 수긍하게 되더군요. ‘구제불능의 문제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김수영 씨야 말할 것도 없고, ‘50대의 힘없고 약한 아줌마’에서 버킷리스트 덕분에 긍정적으로 변신한 배 성희 씨, 전 직원이 명함에 버킷리스트 목록을 박고 실천하는 IT 회사 타이거컴퍼니, 그리고 ‘열정대학’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생들까지 모두 버킷리스트의 효용성에 대해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니 설득이 됐습니다. 김수영 작가는 버킷리스트를 쓰기 전에는 무조건 열심히 살았지만, 쓰고 난 뒤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우선순위와 중요도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장점은 버킷리스트를 쓰면서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이라는 원래 뜻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버킷리스트를 이루면서 뿌듯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는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룰 수 없는 ’막연한 꿈’이 아니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꿈’에 도전하고 이루면서 삶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죠.    

특히 남편을 따라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한 50대 주부 배 성희 씨의 경우, 커다란 성취감에 생활이 극적으로 변했다며 버킷리스트를 쓸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습니다. 배씨는 하나씩 이루어나가면서 “늙어갈 준비가 아니라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저수지에 갇혀있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살아가는 것이 설렌다고까지 표현하더군요. 배 씨는 그런 의미에서 버킷리스트를 ‘자존감’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하나 이뤄내는 자신이 좋고 존경스러워지고, 궁극적으로 사는 것이 즐거워지기 때문이랍니다. 취재기간 내내 배씨는 마치 꿈꾸는 10대 소녀같이 활력이 넘쳤습니다.    

버킷리스트에 대한 정의와 이미지는 편차가 상당히 큽니다. 전형적인 이미지인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팔자 좋은 신선놀음이나 젊은이들의 객기어린 장난쯤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 새해 다짐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버킷리스트라는 말이 일반화된 것이 얼마 되지 않다보니, 개념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인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버킷리스트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계신지는 모르지만, 저는 한 번 써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한번쯤 호흡을 가다듬고 어디로 가야할 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