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악동뮤지션 살펴보기 ③ 창의력과 부모력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악동'들의 삶 되돌아보기

[취재파일] 악동뮤지션 살펴보기 ③ 창의력과 부모력
 이번 편에서는 악동뮤지션의 삶을 하나씩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취재하는 내내 또 지금 이 글을 쓰는 가운데에서도 악동의 창의력을 만든 건 바로 ‘부모력’이다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됩니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군은 1996년 9월에, 이수현양은 99년 5월에 태어났습니다. 몽골에 가기 전까지 이들의 삶은 그저 평범했다고 합니다.
이미지
악동뮤지션 찬혁 군과 수현 양 어린 시절
 
주세희 / 악동뮤지션 어머니
여느 가정과 거의 비슷하게 지냈죠. 아빠는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들어오고 거의 아이들하고 저하고 하루종일 있는 그런 편이었죠. 다른 가정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어요.

이찬혁 / 악동뮤지션
저는 전혀 노래 쪽에는 앞으로 제 꿈을 노래 쪽으로 잡겠다. 그런 게 없었어요. 작곡도 아니었고, 전에는 좀 춤에도 관심 있었고 그림에도 관심 있었고


이수현 / 악동뮤지션
그냥 저는 옛날부터 그냥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좋아했는데 언제 한 번 장기자랑 같은 게 있어서 그냥 나가봤는데 주위에서 목소리 예쁘다고 그때는 노래를 잘하지 못했으니까 그냥 목소리 예쁘다. 이런 얘기를 들어서 아, 내가 목소리가 예쁜가?


평범한 삶. 하지만 부모의 교육법은 우리나라에서도 남들과 조금은 달라보였습니다.

주세희 / 악동뮤지션 어머니
그게 딱 원칙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보내는 것이 좋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말 뭐가 하고 싶니? 했을 때 찬혁이가 저는 태권도가 배우고 싶어요. 그럴 경우에는 저희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보냈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서 어린 나이에 초등학교 1학년, 2학년, 3학년 나이에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 학원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그렇게 좋지는 않았어요. 공부야 뭐 학교에서 얼마든지 충분히 배우고 집에 와서, 집에 와서는 놀아야 된다. 라는 그런 좀 나름대로의 그런 생각이 있어서 그랬죠.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성적은 아이들이 그래도 중간 이상은 했던 거 같아요. 그냥 숙제만 좀 챙겨주고 이렇게 하면 한 중간 이상은 했던 거 같고 꼭 1등을 하지 않아도 그냥 학교생활 열심히 재미있게만 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어요.
이미지
몽골에 가기 전 초등학생인 악동뮤지션
 
 그렇게 학원을 안보내도 되겠냐는 주변의 걱정이 있었지만 악동의 부모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런 교육 방식의 흔들림은 다른 방식으로 왔다고 합니다.

주세희 / 악동뮤지션 어머니
한 번 찬혁이가 저희 부부에게 엄마, 학원을 좀 보내 주세요.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학원에? 왜? 가서 공부하게? 공부하고 싶어?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요. 친구들이 다 학원에 있어요.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친구들하고 놀려면 학원에 가야 된다는 거예요. 거기서 아, 그렇구나. 현실이 이렇구나.


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학원을 보내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노력해서 놀아줄게.’ 정말 열심히 놀아주는 게 그 방법이었습니다.

주세희 / 악동뮤지션 어머니
애들하고 운동장에 거의 매일 나갔었고 그래서 아빠가 좀 일찍 들어오는 날은 아빠도 같이 나갔었고 아빠는 찬혁이랑 축구를 해준다든지 나는 딸이랑 소꿉놀이를 해준다든지 아니면 뭐 그밖에 다른 것들 놀이터에서 많잖아요. 그러다 보면 또 주변에 있던 학원에 안 다니는 친구들이 또 모여요. 모여서 같이 축구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그래요.

이미지
몽골에 간 악동뮤지션
 
그러다 이들 가족은 몽골로 갑니다. 선교사인 부모가 5년 동안 고심한 결과였죠, 떠날 당시 찬혁 군은 초등학교 6학년, 수현 양은 3학년이었습니다. 몽골에 간 처음부터 홈스쿨링(Home Schooling)을 했던 건 아닙니다. 처음엔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교(missionary kids school, MK school)을 다녔습니다. 1년 정도 학교를 다녔을 때, 악동 가족은 두 가지 시련을 겪게 됩니다. 한 가지는 몽골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 급상승한 환율로 경제적 압박이 커진 것이었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악동들이 교우 관계도 아닌 몽골어도 아닌 영어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겁니다.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아이들이 몽골에 갈 때만 해도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적이 없었고,  지금 다 배우죠. 그런데 몽골에서는 아무래도 외국 환경이다 보니까 유치원 때부터 영어를 배웠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애들이 그 학년에 들어가서 영어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과목이고 항상 그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게 다른 과목에도 영향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이 상태에서는 이 학교의 진도를 따라가기 힘들겠다.


영어 스트레스를 벗고 자신들의 수준에서 공부할 수 있던 악동들은 1년 만에 다른 학생들의 수준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홈스쿨링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악동 가족들은 그저 학교 시간표대로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런 과정에 위기가 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죠.

이수현 / 악동뮤지션
처음에는 그냥 되게 학교에서 하던 것처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딱 시간에 맞춰서 딱딱딱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진짜 공부 열심히 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냥 다시 학교 가면 안 되냐고 막 그랬어요.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그때 비로소 고민 했어요. 그래서 몇 가지 좀 참고 서적들도 찾아보고 했는데 저희들이 하는 방식은 진정한 홈스쿨링이 아니더라고요. 일반 홈스쿨이 아니어서 일단 홈스쿨의 정신 자체가 아이들의 숨겨진 재능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더라고요. 또 삶의 중요한 가치를 찾게 하는 거 만약에 이것이 진정한 홈스쿨의 의미라면 우리 교육은 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거다…여기서 일단 정리를 해야 되겠다. 대신 아이들이 스스로 재능을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엄마도, 아빠도 봐야 되고 아이들이 스스로 또 깨달을 수 있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풀어주고 놀게 해야겠다. 그래서 그때는 얘들아 이제부터 공부하지마. 그렇게 한 거예요. 그래서 너네들 하고 싶은 거 하자.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그 결정대로 밀고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사춘기를 겪던 찬혁군과 아버지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찬혁 군이 무언가 잘못을 하고 아버지는 꾸짖고, 그에 대해 찬혁 군이 쉽게 인정하지 않고, 이게 또다시 아버지가 화가 나고 이런 식의 악동 가족의 속앓이는 계속됐습니다.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나는 예전에 이 나이 때 이러지 않았는데 얘는 왜 이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이해 할 마음이 없었던 거예요.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지 못한 거예요. 나중에는 제가 인정을 했어요. 아이한테는 잘못이 없었다는 걸. … ‘이건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 나이에 너무 당연한 일이구나. 문제는 그것을 보고 그 상황들을 바라보고 있는 또 그것에 대해서 판단하고 뭔가 가르치려고 하는 아빠에게 문제가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때 알고 제가 잘못 했다고 용서를 구했어요. 아이한테.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해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용서를 빈다는 것.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요. 찬혁 군도 이런 아버지의 모습에 다시 마음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찬혁 / 악동뮤지션
지금 당장만 보고 이거 할 거예요. 이러거든요. 엄마 아빠는 좀 더 멀리 보라고 저기 있는데 지금 당장만 생각하지 말라고 그런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 다 저를 위한 말씀이셨고, 또 제 고집이었고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이미지

악동의 부모가 진정 하고 싶은 것과 지키고 싶은 가치를 찾으라고 아이들을 풀어주면서도 마냥 제어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했는데 그때 강조했던 건 바로 이겁니다.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 될 일. 하고 싶은 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있다. 그 해야 될 일이 뭔가를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해야 될 거다.

 
  처음엔 하고 싶은 일에만 집중했던 악동들이 하나 둘 자신들의 벽에 부딪치면서 해야 될 일에 적어 가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스스로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고,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찬혁 군은 중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한 상태입니다. 악동들은 이제 음악 활동을 하더라도 공부는 계속 하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모두 스스로 내린 결정입니다.

해맑게 놀던 악동들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건 몽골에 기타 열풍이 계기가 됐습니다. 새로운 놀거리를 찾던 악동에게 기타와 피아노가 눈에 들어온 거죠.

이수현 / 악동뮤지션
저희 집에 기타가 하나 있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놀다보면 그래도 되게 심심해져요. 그런데 공부는 하기 싫고 그러니까 오빠가 기타를 잡더라고요. 그래서 기타를 막 치기 시작하니까 저도 질세라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그런 거 하다 보니까 노래도 하게 되고.

이찬혁 / 악동뮤지션
기타는 그 전부터 아빠가 하는 거를 보고 그냥 조금 조금 둥당 둥당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작곡을 시작하기 조금 전부터 이제 기타 붐이 일어났어요. 몽골에. 그래서 몽골 또래 친구들한테서 또래 친구들 기타를 막 치니까 저도 그 사이에서 좀 껴서 조금 배우고 친구들하고 같이 치다 보니까 지금은 좀 3년 정도 3년차 정도 되는 거 같아요. 기타 친 지.


아는 형에게 기타를 배운지 2달 째. 찬혁 군은 처음으로 작곡이라는 걸 하게 됩니다. 아는 형이 아이팟이라는 곡을 만들면서 나도 해볼테야라며 만든 첫 곡. 그 곡이 갤럭시입니다.
(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l_CYr2jU3xY )

이성근 / 악동뮤지션 아버지
그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의 그 재능이 그 순간부터 막 폭발적으로 일어난 거거든요. 저희는 그거 보면서 염려된 게 아니라 너무 신기했어요. 너무 재미있고 또 해봐 해봐 너무 잘한다 해봐 해봐 하니까 새로운 것들 가져오는데 그것마저 너무 놀라운 것들이었어요.


이렇게 지난 2011년 말. 아이들의 음악 즐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겁니다. 그리고 채 2년이 되지 않아 악동뮤지션은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볼 요소가 있습니다. 누군가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악동에게는 일상이었다는 겁니다. TV가 없는 몽골 생활에서 아이들은 부모님 앞에서 춤을 추고 콩트를 하는 등 장기자랑을 했고, 악동 부모들은 환호 했습니다. 그러면 악동은 그저 좋아 새로운 걸 만들어오길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때와 지금 바뀐 건 그 장기자랑의 소재가 음악으로 변했다는 것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악동은 수 십 곡의 자작곡을 내놓았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악동들도 악동들의 가족들도 모두 놀라울 뿐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그저 집에서 놀던 것이었고 부모들은 그저 즐기던 것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게 됐으니 말입니다. 악동뮤지션이 커온 과정이 분명 정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에게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볼 점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꼭 해외에 가야만 또 학교를 그만 두어야만 그들의 방식을 따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악동의 창의력엔 부모의 힘, ‘부모력’이 미친 영향이 상당히 커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조짐 없이 또 아무런 토대 없이 지금의 악동뮤지션이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요? 다음 취재파일에서는 음악과 관련된 악동들의 ‘씨앗’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미지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