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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물고문 당하는 국보 '반구대 암각화'

[취재파일] 물고문 당하는 국보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상황을 숭례문에 비유하자면..

“숭례문이 불타고 있습니다. 작은 불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신고를 받고 근처 소방대원들이 총출동했습니다. 하지만 불을 어떻게 끄느냐를 두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한쪽은 원형을 훼손하기는 하지만 지붕을 뜯어내면서 빨리 불을 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아직 화재 초기니까 원형을 상하지 않도록 하면서 소방차를 더 동원해 일시에 불을 끄자고 맞섭니다. 그렇게 싸움만 할뿐 아무도 결정은 내리지 않습니다. 결국 화재를 진압할 시기를 놓치면서 불이 숭례문 전체를 집어삼켰습니다.” 

숭례문으로 비유해 본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상황입니다. 숭례문이 불이 났다고 하면 반구대 암각화는 물고문으로 익사하기 직전입니다. 이미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수준입니다.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물에서 구해줄지 결정이 안 났습니다. 누구는 로프를 던지자고 하고, 다른 사람은 튜브를 던지잡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10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그림이 어디 있는 거죠?"

교과서에서만 보던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제가 눈앞에서 보기 전에는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지 잘 몰랐습니다. 어렵게 보트를 빌려 타고 망원 렌즈까지 가지고 직접 반구대 암각화 위에 섰을 때, 제가 처음 한 말은 "그림이 어디 있는 거죠?"였습니다. 인류 최초의 고래 사냥 그림이 있다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모르겠습니다. 너무 희미해져서 오후 2-3시쯤 햇빛이 잘 들 때 말고는 잘 보이지 않는답니다. 군데군데 물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습니다. 물고문의 흔적이었습니다. 일 년에 8개월을 물속에 있으니 벽화 위에 수생식물이 자라면서 작품을 훼손시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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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암각화 밑에 큰 틈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누가 도끼를 가지고 벽화를 때린 것처럼 균열이 일어났고, 나무가 넘어지듯 암각화 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습니다. 현장에 동행했던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은 “이 상태로는 2-3년 내로 암각화는 무너지면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습니다. 신석기 시대 한반도에 살았던 천재 예술가의 작품은 이렇게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먹을 물이 없다" VS "세계문화유산 지정 물 건너간다"

문제의 원인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재 울산의 식수를 뽑아내는 사연댐이 건설됐습니다. 말이 댐이지 수문도 없는 큰 둑입니다. 물이 귀해 수도 값이 비싼 울산에서는 사연댐은 보물입니다. 울산 시민들의 식수 45%가 여기서 나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뒤 반구대 암각화가 발견됐습니다. 물이 빠졌을 때 발견된 겁니다. 이 암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고학적인 가치가 드러나더니 1995년에는 국보로 지정됐고,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잠정 목록에 등재됐습니다. 식수냐 문화재 보호냐 두 가지 갈등이 시작된 겁니다.

여기서 문제를 해결할 소방관으로 등장한 게 문화재청과 울산시입니다. 문화재청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조합니다. 현재 암각화 앞을 흐르는 태화강 지류의 수위를 확 낮춰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침수를 막을 수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도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울산시는 현실적인 고민이 큽니다. 가뜩이나 수도 값이 비싼 울산에서 사연댐이 가둔 물은 귀한 몸입니다. 수위를 낮췄다가는 울산시민들이 먹을 물이 없다고 난리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제방을 쌓자고 주장합니다. 암각화 주변에 둑을 쌓아서 침수를 막고, 수원도 지키자는 논리입니다.

두 가지 논리가 워낙 팽팽합니다. 식수와 문화재를 보호하자는 양쪽의 논리 모두 타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논쟁이 벌써 10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시기를 놓쳐도 한 참을 놓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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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각화 구하기 10년 논쟁, 결국 정치력으로 풀어야

새누리당 지도부가 해결책을 내놓겠다며 반구대 암각화에 총출동했습니다. 요지는 울산시의 제안처럼 생태 제방을 쌓되, 임시로 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충분히 논의를 하고 결정이 되면 허물든 영구 시설로 두든 정하잡니다. 양쪽 주장의 타협점을 찾아보려는 고심이 엿보이기는 제안입니다.

하지만 임시 제방이라는 것은 본질은 땜질 처방에 불과합니다. 근본 대책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울산시와 문화재청 모두 불만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결정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사연댐을 완전히 없애 암각화를 육지로 완전히 끌어내는 겁니다. 수위가 낮든 높든 간에 물속에 있는 암각화는 사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근처에 가지도 못해 암각화를 보려면 관람대에서 망원경으로 보는 현 상황은 암각화가 있던 환경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서는 정치력을 발휘해야합니다. 울산시가 사연댐을 없애거나 수위를 확 낮추자면 구미와 대구 시민들이 먹는 물을 끌어와야 합니다. 하지만 물을 뺏기는 쪽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울산시도 무작정 손을 벌리기도 머쓱합니다. 돈도 많이 듭니다. 울산시와 문화재청의 관계뿐만 아니라, 울산 주변 지자체와도 갈등 조정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려면 국가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관련 법령과 예산 지원은 물론 문화유산을 둘러보고자 하는 전세계 관광객들을 맞을 준비도 국가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반구대 암각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 첫 단추로써 새누리당의 대책이 일단 몇 년 만 모면하고 보자는 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암각화를 둘러싸고 국민들의Î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여러 기관과 지자체, 주민들을 설득하는 고차원 정치 방정식을 풀어낼 진정한 정치력 발휘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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