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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제작자 이경규, '실패'를 통해 '꿈'을 키웠다

[인터뷰] 영화 제작자 이경규, '실패'를 통해 '꿈'을 키웠다
언론시사회를 하루 앞두고 만난 이경규는 겉으로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인터뷰 시작 전 안신환 한 정과 피로회복제 한 병을 먹었다.

"몸이 안 좋으세요?
"그런건 아닌데, 스트레스 때문인가봐요."

"체력적으로요? 아니면 정신적으로요?"
"정신적으로겠죠."


영화 공개를 앞두고 긴장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긴장이 안 된다는 건 거짓말이겠죠. 어떻게 될지 잘 모르니까. 많이 걱정되네요"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의 심리적 불안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인터뷰 초입 약 10분여뿐이었다. 개봉을 위한 모든 담금질을 끝낸 이경규는 자신의 세 번째 영화 '전국노래자랑'(감독 이종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근거 있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경규의 인생을 관통하는 단 두 개의 키워드를 생각해보자. 첫번째는 누가 뭐래도 '개그'다. 두번째는 대다수의 대중이 외면했지만, 본인이 가장 애착을 갖는 '영화'일 것이다. 

개그맨 이경규는 실패를 모르는 남자였다. 그러나 영화감독 이경규는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개봉 20여 년이 지났지만, 입봉작 '복수혈전'(1992)은 이경규의 유일한 실패로 지금까지도 개그 소재로 소비되고 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는 포기를 몰랐다. 2007년 밤무대 가수의 애환을 그린 '복면달호'로 전국 170만 관객을 동원하며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6년 만에 세 번째 작품 '전국노래자랑'으로 다시 한번 화려한 날갯짓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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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은 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소재로, 실제 참가자들의 사연을 재구성해 만든 휴먼 코미디 영화. 이경규는 6여 년 전 지방 촬영을 갔다가 이 장수 프로그램을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전국노래자랑' 제작진을 찾아가 판권을 구매했고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왜 '전국노래자랑'이었어야 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생일날을 제외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날이 없다. 그러나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는 모든 사람이 그날만큼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30년간 이어진 이 프로그램은 수만 명에 이르는 출연자가 곧 이야기의 원천이었다. 수많은 사연과 각기 다른 캐릭터들 속에서 보편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사연을 추려내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전국노래자랑'이 배출한 트로트 가수 박상철의 사연을 바탕으로 한 '봉남'(김인권 분)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아내가 운영하는 미용실에서 셔터맨을 하며 가수의 꿈을 품고 사는 남자가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이야기가 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이경규는 기획, 시나리오, 캐스팅에 이르는 제작의 전 분야에 참여하며 영화의 뼈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촬영에 들어간 후부터는 손을 떼다시피 했다. 제작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드나드는 촬영장에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감독과 배우들이 행여나 부담을 느낄까 봐서였다.

"내가 할 일을 영화 촬영 전에 끝났다고 생각했다. 크랭크인 하는 순간부터는 감독과 스태프, 배우들을 믿고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 촬영 후 내가 한 일이 있긴 하다. 회식비 계산해주는 것 정도?"

지난달 23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전국노래자랑'은 영화인 이경규의 진심과 뚝심이 묻어나는 영화로 완성됐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공언했던 것처럼 무리하게 웃기거나 울리지 않는 공감 가능한 사연을 통해 보편적인 감동을 끌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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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에게 왜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대학교 때 영화를 전공했다. 개그맨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꼭 영화를 만들어야지'하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90년대에는 코미디언이 스타가 되면 꼭 어린이 영화를 만들곤 했다.  난 그게 싫었다. 오래전부터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당연하게도 충무로에서 불러주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제작한 것이다. '복수혈전'을 만들 때 주변에서 '미친놈이네' 했다. 그래도 내가 좋으니 한거다"

'복수혈전'의 실패는 이경규를 암담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분노를 이겨내지 못해 집에 있던 필름을 다 불태우기도 했다. 그런 상처를 딛고서까지 다시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안 하면 억울할 것 같아서"다. 그는 "시간이 확 지나가더라. 더 나이가 들었을 때 '그때 영화를 좀 더 해볼걸'이라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첫 영화의 큰 실패와 비전문 인의 영화 제작이라는 점 때문에 여전히 투자는 쉽지 않다.

"그게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복면달호'때도 투자받은 것과 배급사 정하는 것 때문에 애를 먹었다. 다행히 그 영화의 성적이 나쁘지 않아 '전국노래자랑'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렇게 한 발짝씩 진보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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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영화 연출이다. 이경규는 제작 경험을 좀 더 쌓고, 연출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를 한 뒤 다시 한번 감독에 도전해 볼 계획이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으냐는 질문에 "진정성 있는 영화를 하고 싶다. 돈 벌려고 생각했다면 영화는 안 했을 것이다. 웬만해서는 영화로 돈을 벌 수가 없다. 영화감독을 처음 꿈꿀때는 나의 오랜 우상인 이소룡의 액션 영화 같은 것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그랜 토리노'같은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답했다.

충무로에는 영화를 만드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이경규는 충무로 밖에서 영화를 꿈꾼 사람이다. 그러나 영화를 대하는 그의 진중한 자세만큼은 진짜다. 

이경규의 진정성이 듬뿍 담긴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지난 1일 개봉했다. 그리고 전국 9만 4,246명의 관객을 사로잡아 박스오피스 2위로 쾌조의 출발을 했다.

ebada@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 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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