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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개봉작 ① 타비아니 형제-유럽 거장감독의 귀환

'시저는 죽어야 한다'…재소자의 딜레마

[취재파일] 개봉작 ① 타비아니 형제-유럽 거장감독의 귀환
연초부터 한국영화 열풍이 불더니, 최근 한 달은 잠잠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부터 다시 극장에 관객이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돌아온 ‘아이언맨’ 때문이죠. 이번이 3편인데, 1편과 2편 모두 4백만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흥행 시리즈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개봉 4일 만에 260만 넘는 관객이 봤다고 하니, 아무리 주말 이틀이 끼어있다고 해도 정말 많은 수가 봤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이언맨에 가려져 있는 이번 주 개봉작들의 면면이 심상치 않습니다.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 특히 유럽영화 챙겨서 보시는 분들한테는 꽤나 소중하고 반가운 한주가 될 것 같습니다. 잘 만들기로 소문난 유럽영화 세편이 같은 날 선을 보이거든요.

유럽 거장감독들 복귀작 다수…‘살아있네!’

복귀작이라고 하기 무색한 것이, 소개해드릴 영화 세편 모두 지난해, 혹은 제작년 발표됐던 것들입니다. 국내 개봉이 이번주로 겹친 것 뿐이지, 이미 자국민들에겐 충분히 소개된 영화들입니다. 칸과 베를린 같은 국제영화제에서 주요상 수상도 했고요. 그러니 어쩌면 다음 영화들에 대한 소식은 '이미' 전해 들으셨을 확률이 높습니다.

첫번째 영화, 타비아니 형제의 '시저는 죽어야 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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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비아니 형제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말 그대로 형제가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형은 비토리오 타비아니, 29년생이고요, 동생 파올로 타비아니는 31년생으로 형제가 모두 여든의 나이를 넘긴 노년입니다. 형제 감독이라고 하면 할리우드의 워쇼스키 형제(참, 이제 남매죠 ^^)와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미국 독립영화계의 큰 기둥 코엔 형제를 생각하시죠. 그런데 사실 타비아니 형제야말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실험적인 영화를 하고 있는 거장 중의 거장입니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라니.... 제목이 범상치 않습니다. 영화는 잘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연극 '줄리어스 시저'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입니다. 극영화이기도 하고요, 연극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연극무대에 올라선 재소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영화 속 재소자는 '진짜' 재소자입니다. 다들 형을 선고받고 로마 외곽에 있는 레비비아 교도소라는 곳에서 복역 중입니다. 누군가는 마약 밀매를 해서 17년형을 선고받았고요, 또 누군가는 살인으로 종신형을 살고 있습니다.

재소자들이 연극을 하게 된 건, 정부의 교화사업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법무부도 열심이죠, 재소자들에게 그림이나 악기 연주 등을 교육하는 일 말입니다. 타비아니 형제는 우연히 레비비아 교도소에서 연극연기를 배우고 있는 재소자들의 사연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 이 교도소를 방문해 오디션을 진행했죠. 이후 몇몇 재소자들을 선발해 본격적으로 연극 연기를 가르치고 함께 하나의 작품을 연습하는데, 바로 '줄리어스 시저'입니다.

비연기 전문가, 일반 재소자들은 점차 연기를 통해 자유로움과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상이긴 하지만 잠시나마 바깥 세상 사람들과 비슷한 상황을 겪고, 같은 결의 감정을 느끼는 거죠.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배역에 몰입할 수록 재소자들에겐 불안과 불행이 함께 찾아옵니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각성'하게 되는 거죠. 이 지점이 오묘하고, 또 신기합니다. 연기하기 이전의 시간동안 죽어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잘 먹고, 동료들과 대화도 나누고, 잠도 잘 자고, 가끔 여가생활도 하고. 평온해서 따분하기까지 했던 일상이었는데, 그 일상에 균열이 생긴 겁니다. 어쩌면 끝까지 떠올리지 않았으면 했던 그것, 살아있음. 감정. 그 모든 것들이 밀물이 되어 재소자들의의 감방에 침입합니다.

여기서, 왜 타비아니 형제가 선택한 연극이 '줄리어스 시저'였는가를 다시 돌아가보죠. 원작 줄리어스 시저는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B.C.100~44)'의 살해라는 로마 역사의 특별한 사건을 배경으로 삼습니다. 그러니까 영화 속 재소자들은, 우리로 치면 사극을 연기한 겁니다. 시저 살해는 로마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역사적 사건이지만, 도리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제목만 '시저'이지 시저의 등장 분량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물론 시저가 중요인물이긴 하죠, 모든 사건의 전개가 시저의 살해를 계기로 다이나믹하게 흘러가니까요.

'줄리어스 시저'에서 진짜 주인공은 시저를 살해한 브루터스와 그에 대항하는 안토니(시저의 오른팔)입니다. 시저 살해 이후 브루터스와 안토니의 대결이 원작의 주요 내용입니다. 브루터스는 시저에 대한 추도사에서 자신이 시저를 살해한 동기를 밝혀 군중을 설득합니다. 그는 매우 고결하고 이성적이며, 로마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죠. 그의 이상은 공화정이고, 따라서 1인 독재자 시저는 타도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브루터스의 시저에 대한 감정은 또 이중적입니다. 그는 시저라는 인물을 존경하고 또 사랑했습니다. 그만한 인재가 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시저 살해가 가져올 '사적인 이익'에 밝았던 음모자들이 덕망을 갖췄기 때문에 더할나위없이 거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브루터스를 유혹하고, 어떤 의미에서 순수하기까지 한 브루터스는 시저 살해의 선봉에 섭니다.

나중에 군중이 시저의 오른팔이었던 안토니의 감정적인 추도사에 선동돼 브루터스 무리들을 처벌하게 되었을 때에도, 안토니와 측근들은 브루터스야말로 유일하게 시저를 살해할 대의와 명분을 갖춘 자라고 평하며 칭송합니다. 방금 전까지도 자신의 목을 겨누었던 적을 말이죠. 그만큼 브루터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서 고결한 위인으로 그려집니다.

역사를 건너온 거대한 작품을 이렇게 짧게 정리하려고 하니 빈 틈이 한둘이 아니네요, 어찌됐든, 간단하게나마 소개를 드린다면, 줄리어스 시저는 이토록 이중적이면서도 비극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솔직한 작품입니다. 극단적인 설정이긴 하나 매 순간, 인간군상이 보이는 모습과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타비아니 형제가 다름 아닌 줄리어스 시저의 대본을 건넸던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 아닐까요. 재소자들은 이 명작을 연기하면서 웃고 울고 또 분노하고 용서합니다. 더불어 악행과 실수,위법, 잘못된 관계로 점철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합니다.우정, 배신,권력,자유,의심 그리고 살인까지 모두 담고 있는 줄리어스 시저를 통해 오늘날 자신의 모습을 개인의 역사가 아닌 몇 세기에 걸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성찰하게 되는 겁니다. 브루터스를 유혹해 시저 살해에 성공한 인물인 '카시우스' 역의 재소자 배우 코시모 레가가 연극이 끝나고 자신의 방에 돌아와 영화의 주제와 마찬가지인 탄식하듯 이런 대사를 내뱉습니다. "예술을 알고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이 되었구나!"

* 배우들은 프라이버시를 보장해주겠다는 제작자의 제안을 거절하고 실명으로 출연했습니다.   
* 이 영화는 지난해 베를린영화제 최고영예인 '황금곰상'을 수상했습니다.
* 주연을 맡은 세 배우 살바토레 스트리아노와 지오반니 아르쿠리, 코시모 레가는 '심지어' 팜 스프링스 국제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이들 중 사면 출소한 살바토레를 제외한 두 배우는 전세계 유일무이하게 재소자 신분으로 수상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초기 극사실주의를 추구했던 타비아니 형제는 이전에도 비전문배우, 자연광 등을 이용해 현실과 경계가 모호한 극영화 찍기를 즐겨했으니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는 타비아니 초기의 영화들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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