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바다에 가면 억대 연봉이 보장?

귀어의 빛과 그림자

[취재파일] 바다에 가면 억대 연봉이 보장?
전남 완도에 다녀왔습니다. 꽤 멀었습니다. 서울에서 완도까지 차로 5시간 반이 걸리고, 완도에 딸린 섬으로 이동할 때 마다 배로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그래도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오랜 세월이 빚은 절경은 피로감을 잊게 해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완도를 찾은 이유는 도시의 안락함과 편리함을 버리고 어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분들, 이른바 <귀어민>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귀농-귀촌 열풍에 이어 어촌으로 돌아가는 '귀어' 가구가 최근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전라남도 어촌 마을로 내려간 귀어 가구 숫자는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4.5배나 증가했습니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삶의 터전을 옮긴 가구가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고 무엇보다 40대 이하의 젊은 층이 55%에 달했습니다. 귀농 인구의 상당수가 은퇴 이후에 전원생활을 꿈꾸며 농촌을 선택하는 것과 달리, 귀어민 가운데에는 한창 일할 나이의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었습니다.

귀어민들이 늘면서 어촌 모습도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직접 본 완도의 섬 마을은 분명 젊고 활기가 있었습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동네 곳곳에서 들렸고,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어 폐교 위기까지 몰렸던 초등학교는 이제 교실을 늘려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동네에선 볼 수 없었던 놀이터가 하나 둘 생겨났고,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을 실어 나르는 스쿨버스까지 등장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마을 분위기 전체가 바뀌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몸이 불편해도 병원 한 번 가보기가 어려웠는데 운전할 줄 아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져서 도움을 받았다는 분이 계셨고, 부서지거나 고장이 나도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일들을 이제 동네 청년들이 척척 해결해준다며 고마워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귀어민’의 증가는 개개인의 삶의 변화뿐 아니라 어촌의 이미지와 분위기까지 바꿔가고 있었습니다.
이미지
귀어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완도에서 배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보길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인구 5천명의 작은 섬이지만 우리나라 전복 생산량의 2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보길도의 풍경은 평소 생각하던 어촌의 모습과 많이 달랐습니다. 마을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을 거라 생각했던 지붕 낮은 집들 대신 벽돌과 콘크리트로 지은 최신식 가정집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집 마당에 들어선 고급 승용차들도 이 마을에선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보길도에서 만난 한 귀어민은 서울과 광주에서 10년 동안 일을 했지만 갈수록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3년 전 귀어를 선택했는데, 도시에서 연봉 2천 3백만원을 받다가 완도에선 연봉이 10배로 수직상승했다고 합니다. IT 관련 회사를 다니다 전복 양식업으로 직업을 바꾸면서 연봉 2억원의 사장님이 된 겁니다.

다른 귀어민들도 대부분 경제적 풍족함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실제 전라남도 어민 10명 가운데 1명은 억대 연봉자였습니다. 완도에서만 연간 5천 만원 이상 버는 가구가 1,785가구, 소득 2억 이상 가구가 200가구에 육박합니다. 도시에서 꿈꿀 수 없었던 돈을 만질 수 있단 점은 분명 매력적인 이유일겁니다. 이렇게 ‘대박’ 을 기원하며 내려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마을 기업을 창업하는 경우도 생겼고, 귀어민들끼리 사교 모임을 운영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경제적 이유 뿐 아니라 삶의 질 향상도 귀어 선택의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양복 대신 작업 복을 입고, 구두 대신 장화를 신고, 자동차 대신 어선을 몰지만 그런 일상의 변화에 대부분 만족했습니다. 빡빡한 도시 생활에 허덕이던 예전과 비교해서 몸과 마음이 훨씬 행복해졌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회사를 다니며 하루하루 꿈을 잃어갔는데, 어촌에 내려와서 하루하루 새로운 꿈을 꾼다는 귀어민도 있었습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낯선 바닷일지만 귀어민들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있었습니다.

이러자 군청도 귀어 장려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귀어민들을 대상으로 창업 자금을 최대 2억까지 빌려주고, 정착 장려금을 3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집 수리비 500만원이 별도로 제공됩니다. 뿐만 아니라 귀어민들이 조기에 마을에 정착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대학 위탁 교육 시스템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바다에 내려오기만 하면 무조건 억대 연봉이 보장되는 걸까요? 조금 김빠지는 이야기지만 일단 어촌에 내려오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내려올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촌에는 어업 면허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전답만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영농과 달리 어촌에서는 배를 산다고 해서 아무나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또 김이나 전복을 기르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마음대로 기를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어업 면허권이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어업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마을 어촌계에서 관리하는 면허권은 외부에 살던 사람이 그냥 가서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마을에서 오래 거주하던 사람들에게 대대로 이어져오는 ‘가업‘의 성격이 짙습니다. 실제 귀어민들의 95% 이상이 그 마을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 작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어머니가 살던 집에 내려와서...가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자연히 귀어민의 대부분은 그 마을 출신들입니다. 어쩌면 ’귀어’라는 말보다 ‘어촌 출신 사람들의 귀향’ 이라는 말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촌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많습니다. 지난해 태풍 볼라벤의 재앙에서 보듯이 변화무쌍한 대자연 앞에서 늘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어촌의 숙명입니다. 여기에 최근 기상이변으로 고수온 현상이 나타나 어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양식업 시설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어촌에선 증설을 요구하고 있지만 군청에선 환경 문제와 원활한 조류 흐름을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조금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완도 주변에서 바다 그대로의 모습을 감상하기는 어렵습니다. 바다 곳곳엔 김과 다시마 양식장을 표시하는 부표가 떠있고 전복을 키우는 가두리 양식장 시설이 즐비합니다.

과장되게 말해서 눈을 편하게 둘 곳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바다 위의 인공 시설물들이 푸르른 다도해의 아름다움을 빼앗아버린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도시에 비해 부족한 교육, 문화 시설도 어촌에 남겨진 숙제입니다. 아이들이 많아지고 젊은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교육 시설과 문화 공간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늘어날텐데 이를 감당할 여건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어촌에서 만나본 젊은 귀어민 가구 가운데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어촌 생활에 불만을 가진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이미지
완도 마을을 돌며 귀어민들의 이야기를 2박 3일 동안 듣다보니 저도 귀가 솔깃할 정도였습니다. 도시 대신 어촌을 택한 사람들의 성공담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완도군청의 한 직원은 귀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다에 투자하는 것은 주식 투자와 같습니다. 일시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위험을 각오하고 투자해야 합니다.”

귀어가 반드시 금전적인 대박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전에 신중히 고려해야할 부분이 많습니다. 조건도 까다로워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래도 자연과 벗 삼아서 자기가 노력한 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고, 노동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데 귀어의 매력은 충분합니다.

어촌으로 내려온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무엇이냐고 한 귀어민에게 물어봤습니다.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행복의 조건들이 많이 생긴거죠.”

완도에서 먹어본 전복은 제가 서울에서 먹던 전복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습니다. 전복이 그렇게 부드러운 식감을 지닌 음식이란 것을 완도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