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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시영 채점표를 공개합니다!

[취재파일] 이시영 채점표를 공개합니다!
  4월24일 아마복싱 국가대표로 선발된 여배우 이시영씨가 편파 판정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전문가는 물론 보수와 진보 논객까지 논쟁에 가세해 점입가경 양상입니다. 이시영은 국가대표선발전 여자 48킬로그램급 결승에서 자신보다 12살이나 어린 19살의 김다솜을 22대20 두점차로 꺾었습니다. 초반 열세를 뒤집고 역전승을 거두며 연예인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미모의 여배우가 가장 힘들다고 알려진 복싱에서 국가대표가 된 것은 온 국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바쁜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도 엄청난 노력으로 모두가 꿈꾸는 국가대표에  뽑혔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축하받아야 할 일이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패자인 김다솜측은 "편파 판정 때문에 유명 배우에게 졌다"며 억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때 이시영을 지도했던 홍수환 전 프로복싱 챔피언은 "누가 봐도 이시영이 진 게임"이라고 말했고 SNS에서도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보수 논객인 변희재 주간 미디어워치 대표는 "이시영의 솜방망이를 22점으로 채점했다면 김다솜은 최소 50점을 줘야한다"며 비판했습니다. 진보논객으로 불리는 진중권 교수는 상반된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주도권은 김다솜이 잡았지만 가격의 정확도가 떨어지고 오픈 블로우가 많았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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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판 판정을 책임지고 있는 아마추어 복싱연맹은 "아마복싱과 프로복싱을 보는 관점의 차이 때문에 불거진 것"이라며 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아마복싱은 파워보다는 정확한 기술에 의한 타격이 중요하다. 공정하게 점수를 매겼고 오픈블로우 경고에도 문제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아마복싱은 5명의 부심이 전자채점 방식으로 매긴 점수 중에 서로 근접한 세 점수의 평균치를 해당 라운드의 최종 점수로 인정합니다.  근접한 점수가 없으면 최고 점수와 최저 점수를 뺀 나머지 세 점수의 평균치를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점수가 1, 2, 5, 6, 7로 매겨졌다면 5, 6, 7의 평균인 6이 라운드 점수입니다.  만약 근접한 3개의 점수가 없다면 최저·최대 점수 1개씩을 제외한 나머지 3개 점수의 평균이 라운드 점수가 됩니다. 그래서 이른바 '짜고 치는' 부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지 이시영-김다솜 경기의 1차 채점표를 보면서 분석해보겠습니다. 점수를 매긴 부심 5명의 표기는 편의상 A, B, C, D, E로 합니다. 

 ▼ 이시영-김다솜 경기 1차 채점표 (왼쪽이 이시영 점수, 오른쪽이 김다솜 점수)
라운드 A부심 B부심 C부심 D부심 E부심
1라운드 6-4 2-4 2-4 5-5 2-4
2라운드 6-6 6-6 4-4 14-5 4-5
3라운드 7-5 6-3 6-3 16-5 7-5
4라운드 11-6 7-5 6-4 6-7 10-6
합계 30-21 21-18 18-15 41-22 23-20
 
 5명의 부심이 모두 이시영의 우세로 채점했습니다.  위에 설명한 채점 원칙에 따라 실제 채택된 점수는 이미 알려진대로  1라운드에서는 4대2로 김다솜 우세, 2라운드에서는 5대5 동점, 3라운드에서는 김다솜의 오픈블로우로 인한 벌점을 계산해 이시영 9대5 우세, 그리고 마지막 4라운드는 6대6 동점, 그래서 합계 22대20으로 이시영이 2점차 승리를 거뒀습니다.  

  저는 스포츠취재만 23년을 했고 복싱 담당기자도 맡았습니다. 제 아버지가 아마추어 복싱 선수였고  저도 초등학교 때 3년간 복싱을 배웠습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물론 국내 복싱 대회 현장에서 수많은 경기를 관전하고 취재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이 경기의 비디오를 4차례나 면밀히 분석했습니다.  다른 요소를 제쳐놓고 유효타만을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보면 제 개인적인 판단은 1라운드는 김다솜의 우세, 2라운드는 김다솜의 근소한 우세, 3라운드는 이시영의 우세, 4라운드는 김다솜의 근소한 우세입니다.  김다솜이 합계에서 4점 정도 앞섰는데 벌점 2점을 감안하더라도 2점 정도는 이긴 게임입니다.

  그런데 1차 채점한 결과를 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A부심의 경우 1라운드에서 오히려 이시영이 6대4로 앞섰다고 채점했습니다. 4라운드에서는 11대6으로 점수를 매겼습니다. D부심은 정도가 더 심합니다. 2라운드에서 14-5, 3라운드에서는 무려 16-5로 이시영에게 압도적인 점수를 주었습니다. 물론 이 점수가 실제 점수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편파 판정이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극단적인 채점이었습니다. 이 부심은 총점에서도 41대22, 거의 더블스코어로 채점했습니다. 

 프로복싱의 경우 채점 원칙은 대개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떤 선수가 더 경기를 지배했는가? 2. 어떤 선수가 더 상대에게 대미지(충격)를 입혔는가? 3. 어떤 선수가 더 유효타를 날렸는가? 1번과 2번의 관점에서 보면 김다솜의 승리가 확실합니다. 인파이터인 김다솜이 펀치의 강도, 횟수, 공격성에서 아웃복서인 이시영보다 우세했기 때문입니다.

  유효타를 가장 중시하는 아마추어 복싱의 관점을 적용하면 이런 설명이 가능합니다. 김다솜은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 등 다양한 펀치를 날렸습니다. 이시영은 스트레이트 위주의 단조로운 펀치를 구사했습니다. 하지만 아마추어 복싱은 전통적으로 훅이나 어퍼컷보다 스트레이트를 더 선호합니다. 궤적이 큰 양훅보다 인사이드 블로우(inside blow)인 원투스트레이트가 점수 획득에는 더 유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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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하더라도 이시영이 이겼다하고 하기에는 찜찜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시영 펀치의 상당수는 체중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강도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복싱 경기의 점수는 상대를 가격(HIT)해야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상대의 얼굴이나 몸을 손으로 민다고(PUSH) 점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시영의 펀치는 이런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만약 주먹이 얼굴에 걸치기만 해도 점수가 된다면 복싱은 결코 투기 종목이라 할 수 없습니다.

 김다솜의 오픈 블로우 벌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특히 2라운드에 김다솜이 오른손, 왼손 훅을 잇따라 적중시켰을 때 주심은 김다솜의 오픈 블로우를 지적하며 주의를 주었습니다. 이때 이시영이 정타를 맞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상태였는데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켜 결과적으로 이시영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었습니다. 느린 화면을 보면 오른손 훅은 깨끗이 적중했고 왼손 훅은 약간 오픈성이 있었는데 바로 주의를 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과거 슈거 레이 레너드나 마빈 해글러 같은 전설적인 선수들도 체력이 떨어지면 훅을 구사할  때 너클파트로 치지 못하고 오픈 블로우가 나왔습니다. 

 복싱은 결국 심판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승부를 가립니다. 하지만 그 주관적인 판단에도 최소한의 객관성은 있어야 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박시헌은 미국의 로이 존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도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당시 미국의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NBC는 "복싱 역사상 최악의 오심"이라며 수십차례나 그 경기 영상을 방송하며 자국민을 자극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박시헌은 하루아침에 떳떳치 못한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국내 심판들이 한국 아마추어 복싱 흥행을 위해 유명 여배우에게 유리한 판정을 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앞으로는 좀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판정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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