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웃음과 울음의 경계는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웃지 않고 보면 눈물이 나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보면 웃음이 나는 영화거든요. 삶이라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요."
코믹한 감초 연기로 충무로에 자리매김한 배우 김인권이 이경규가 6년 만에 제작한 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수를 꿈꾸는 철없는 남편 '봉남' 역을 맡았다.
24일 홍대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인권은 영화 내내 가수 지망생다운 춤과 노래 실력을 선보여야 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영화 '복면달호'의 '이차선 다리'를 만든 '트로트 전문' 작곡가와 "왕년에 이태원 나이트클럽을 주름잡았던" 안무가에게 맹훈련을 받았다.
극 중 중국집 배달원에게 '황진이'를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맛깔 나게 소화하는 '벤딩' '바이브레이션' 등의 전문 용어는 보컬 훈련 과정에서 배운 것.
"가수가 되는 거니까 사실적으로 보여줘야 하잖아요. 액션 연기처럼 누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영화를 찍으면서 난 왜 이렇게 안될까 '멘붕'이 오기도 했죠."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살도 7∼8㎏ 빠졌다.
"영화 앞부분이 퇴물의 모습이라면, 뒷부분은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초반에 여자 스태프들이 살 좀 빼라고 헬스장을 잡아주기도 했어요. 나중에 날렵한 모습을 만들어냈더니 살 너무 뺀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웃음)"
영화는 미용실을 운영하다 '전국노래자랑' 출연을 계기로 트로트 가수가 된 박상철의 실제 사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박상철 선배는 영화로 자칫 자기 삶이 희화화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어요. 설정도 실제 얘기와는 조금 다르게 바뀌었는데 대중이 자기 과거를 오해할까 우려도 하구요. 내심 잘 봐주길 바랐는데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눈물을 펑펑 흘리고 갔다더라구요. 다행이다 싶었죠."
봉남의 아내 '미애' 역을 맡은 배우 류현경과는 이미 10여 년 전 중편 영화를 한번 찍었던 터라 호흡이 저절로 맞았다고 한다.
"현경이는 열정이 대단한 배우예요. 연출과 출신이라 단편 영화감독도 했었죠. 저도 연출과를 나왔고 이종필 감독은 배우 출신이라 그런 부분에서 셋이 말이 잘 통했어요. 새로 생긴 장면도 많아요."
극 중에서 미애가 늦은 밤 골목길에서 귀가하는 봉남을 기다리는 모습도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한 장면에 착안한 류현경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현경이 얘기를 들은 감독이 한번 해보자며 밑도 끝도 없이 알아서 하라고 해서 당황했죠. 그래서 술 취한 걸로 할 테니 꽃다발이라도 하나 달라고 했어요. 현경이는 연기에 푹 빠져서 진짜 남편 대하듯 했죠. 나중에 찍은 걸 봤는데 감동이 오더라고요. 그것이 제일 건진 장면 같아요."
"밥 묵었나" "술 묵었다" "가자 고마"와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툭툭 주고받으며 저절로 화해를 하는 봉남과 미애의 뒷모습이 인상적인 이 장면은 이렇게 탄생했다.
영화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전국노래자랑 출연자들의 소소한 사연을 엮어냈다. 여타 코미디 영화와 달리 억지 설정도 거의 없다. 이는 모두 '설정'을 걷어내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가길 원했던 이경규의 의도였단다.
"이경규 대표가 삶의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길 원했어요. 시나리오도 20번 넘게 고쳤더라고요."
김인권은 인터뷰 내내 제작자인 이경규를 언급했다. 이 영화를 통해 세 번째 주연을 맡은 김인권은 "이 영화는 이경규의 영화"라며 "나는 주연이라기보다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겸손해했다.
이경규를 자신의 '롤모델'로 꼽은 김인권은 "'리얼함' 속에서 사람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코미디언 이경규가 제작한 영화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예능으로 예능을 만들어낸 영화에요. 영화에는 송해 선생님에 대한 헌정의 느낌도 있고, 투병 생활을 한 오현경 선생님의 삶도 담겼죠. 영화라기보다 국민 버라이어티 이벤트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어요. 이경규라는 예능의 신이 만들어낸 예능의 결정체죠."
김인권은 "느낌은 '해운대'나 '광해'보다 더 좋다"며 "송해 선생님은 3천만도 가능하다고 했다"고 웃었다.
"코믹한 배우로서 코미디의 길을 계속 가고 싶다"는 김인권은 영화판의 '엄숙주의'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감독, 너는 배우, 이렇게 엄숙하게 시스템 내에서 움직이는 것을 벗어나고 싶어요. 어릴 때 교회에서 연극을 하듯이 연기도 했다가 소품도 맡았다가 연출도 했다가 하는 거죠. 이경규 대표도 연출, 제작에 연연하지 않고 영화의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셨어요.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앞으로도 쉽게 나올 수 없을 만큼 제게 괜찮은 롤모델입니다."
영화는 내달 1일 개봉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