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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 딸 얼굴 어떻게 하나요?" 학교폭력 피해자의 절규

한 번 피해자는 끝까지 피해자?

[취재파일] "내 딸 얼굴 어떻게 하나요?" 학교폭력 피해자의 절규
"소리 지르면 죽인다" 공포의 2시간
 이제 겨우 16살, 중학교 3학년 여중생의 얼굴이 모두 무너져 내렸습니다. 역시 겨우 중고등생인 가해자들은 너무나 잔인했습니다. 피해자를 무릎 꿇리고 얼굴만 발로 찼습니다. 맞다가 넘어지면 더 때렸습니다. '소리내면 죽인다'는 협박에 여중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끅끅대며 맞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여 폭행은 지속됐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쓰러졌고, 양쪽 눈과 콧뼈가 모두 주저앉았습니다. 피가 목으로 넘어가 숨도 제대로 못쉬었습니다. 피해자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에겐 그저 재미난 놀이 정도로 여겨졌던 것일까요? 폭행 내내 낄낄대면서 '예전의 네 얼굴은 잊어라. 이제부터 퉁퉁 부은 이 얼굴이 네 얼굴이다' 따위의 폭언도 서슴치 않았다고 합니다. 폭행이 끝난 뒤엔 더 심했습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자신들 숙소 옥상으로 끌고 올라갔습니다. (가해자들은 가출생으로, 이른바 '가출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감금했습니다. 피냄새가 나니 방에는 가둘 수 없고 옥상에 가둔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한달 후면 붓기가 빠질테니 그때 집에 보내주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얼굴을 다친 피해자는 새벽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택시를 겨우 잡아타고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응급실에 입원했습니다.

"왜 내 욕을 해?" 10년지기 친구의 폭력
 피해자는 왜 이렇게 맞아야 했을까요?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이유였습니다. 전말은 이랬습니다. 피해자는 김 모 양, 가해자의 중심엔 피해자의 초등학교 친구 ㅁ양이 있습니다. ㅁ양은 얼마 전 가출을 하고 학교를 자퇴했습니다. 그리곤 동네의 가출-자퇴생 오빠들과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무리 중 한 오빠와 사귀었습니다. 이때부터 ㅁ양이 이 자퇴생 오빠를 사주해 김 양을 갈취했다는 게 피해자 가족의 증언입니다. ㅁ양 파마 비용을 대기 위해 김 양이 어머니 신용카드를 훔쳐 나간 적도 있었고, 교통 카드도 헌납했다고 합니다. 배고프다며 밥을 퍼오라고 시켜 김 양이 집에서 몰래 밥을 퍼나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며, 심지어 옷까지 빨아다 주곤 했다고 합니다. 만약 말을 듣지 않거나 싫은 기색을 내면, ㅁ양은 자신의 고교 자퇴생 남자친구를 시켜 김 양을 윽박지르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김 양은 초등학교 친구 ㅁ양의 철저한,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셔틀'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일이 터진 겁니다. 어느날 ㅁ양은 김 양이 자신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트집을 잡았고, 급기야 교제중인 오빠를 사주해 '손을 봐주자'고 모의합니다. 고교 자퇴생 오빠 4명과, ㅁ양을 비롯한 중학교 친구 3명이 가담, 남녀 학생 7명이 김 양을 집단 폭행했습니다.

"우리 딸 어떻게 해요? 여자애가 얼굴이 무너져 내렸으니..."
 전신마취 후 4시간에 걸친 대 수술. 벌써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딸. 온 얼굴에 감긴 반창고와 보호대. 피해자인 딸은 이제 거울도 못 봅니다. 이제 어떻게 하냐며 엄마를 붙잡고 운다고 합니다. 어머니 심정은 오죽 할까요? 어머니는 딸 아이의 사진을 조심스레 꺼내 취재진에게 보여줬습니다. "이게 우리 딸이에요. 어디가면 예쁘단 소리 듣고 다녔어요. 그런데 이 얼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잖아요. 어휴.." 가슴이 무너져 내리지만, 슬픈 기색도 내지 못합니다. "내가 약한 모습 보이면 아이가 어떻게 되겠어요. 얼굴 뿐 아니라 마음도 무너질거 같아서 제가 슬픈 내색도 못해요. 오히려 평상시랑 똑같이 아이에게 타박주고 그러는데.." 그리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더 큰 걱정은 딸아이의 심리상태입니다. 폭행 당시의 공포에 아직도 밤에 깜짝 깜짝 놀라고 불안해 한다고 합니다. 학교도 가기 싫다고 합니다. 당장 퇴원한 뒤엔 어떻게 해야 할 까 걱정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어떤 상담을 받아야 할 지도 몰라 막막합니다. 딸 장래 걱정에, 그 많은 수술비와 병원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 지는 걱정할 여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 언론에 제보했다고 합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경찰 "아이들 처벌 못해요. 사소한 일이거든요."
 연락을 받은 취재진이 병원에 갔을 때, 마침 병실엔 경찰이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찰이 하는 얘기가 부모님 속을 뒤집어 놨습니다. 아직 가해자를 붙잡지도 못했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이 아이들 구속 시키지 못해요. 우리나라는 아이들한테 관대하거든요. 전과가 있는 애가 한 명 있는데 그 아이만 구속 될겁니다." 옆에서 듣던 제가 경찰에게 물었습니다. 이 정도면 구속감 아니냐고요. 그러자 경찰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거의 다 이렇게 폭행이 이뤄 지거든요.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에요. 애들 사이에 험담하고 하다가 벌어진.." 저는 경찰이 이 사건을 '사소한 사건'이라고 하는데 놀랐습니다.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결론을 지어놓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제3자인 저도 이럴지언데, 피해자 부모님 심정은 어땠을까요. 자신을 한 달 간 감금하려던 일당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딸 아이. 언제 이 아이들이 쳐들어와 해코지 할까 하루 하루 불안에 떨고 있는데, 경찰은 조사도 시작하기 전부터 '처벌 어렵습니다'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 큰 걱정은 이 일당의 추가 범행 가능성입니다. 가해자들은 이른바 살생부를 작성하고, 김 양 외에도 두 명을 더 손봐주겠다며 날까지 잡아놨다고 합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우리 딸이야 이미 당했지만, 앞으로 당할 아이들이라도 막아야 할 것이 아니냐며 경찰 조사에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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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해 학생들이 학교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어요."
 피해자 김 양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이 학교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가해자 일곱명 가운데 두 명이 학교로 돌아온 겁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돌아온 뒤로 이상한 소문이 퍼졌습니다. 김 양이 맞은 이유가 모두 김 양이 잘못했기 때문이란 거죠. 취재진이 학교를 찾아가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은 막연히 '김 양이 오빠들한테 까불다가 맞았다'는 식으로 알고 있더군요. 피해자 부모는 이 부분도 분통이 터집니다. 정작 다친 피해자는 병원에 입원해서 학교도 못나가는데, 가해자들은 버젓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모자라 왜곡된 소문까지 내고 다니니 말입니다. 어떻게 가해자가 학교에 나올 수 있는지, 학교 측 해명을 들어봤습니다. 학교 측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지난해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학교폭력 종합대책'이란 규정이 있습니다. 학교 측은 이 규정을 그대로 지키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합니다. 얘기인 즉 이랬습니다. 가해자 처벌은 학교 측이 마음대로 하는게 아니라, 학교 내 '학교폭력특별자치위원회(학폭위)'에서 정해지는 사안입니다. '학폭위' 위원은 교사와 학부모들로 이뤄지는데, 학폭위가 열리면 가해자와 피해자 얘기를 들어보고 일종의 '재판'을 해서 처벌 수위를 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학폭위를 열려면 절차가 필요합니다. 먼저 학교 측이 자세한 진상조사를 해야 하고요, 그 다음에 이 내용을 토대로 학폭위 위원들에게 소집 요청서를 보내야 합니다. 이 과정만 3주 정도가 걸린다는 거죠.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 번처럼 집단폭행이나, 정도가 심한 경우엔 학교장 재량으로 가해자들의 등교를 즉시 중지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학교 측은 가해자 즉시 등교 정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들이 경찰 처벌을 받지도 않은 데다가, 피해자 김 양이 병원에 있어서 가해 학생과 학교에서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에, 가해 학생들이 학교를 나와도 된다고 판단 한 겁니다. 학교 측 말대로, 학교 측은 절차를 어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심한 배려가 아쉬웠습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에게 김 양을 험담하는 소문을 낼 것 까지는 예상치 못한 것이죠. 전문가들은 이런 점이 우리 학교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학교폭력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과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데, 우리나라 선생님들은 업무가 너무 많아 학교폭력 대처법을 공부할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그저 '규정집'에 쓰여진 대로만 기계적으로 따라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피해자의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란 겁니다. 물론 학교폭력 방지와 피해자 보호에 큰 관심을 갖고 사비를 털어가며 대처하는 선생님들도 계십니다만, 이런 선생님이 아직까지는 너무나 적다는 거죠.

김 양 "저 전학갈래요. 무서워요."
 결국 이번에도 끝까지 피해자는 김 양이었습니다. 학교에 자신에 대한 안좋은 소문까지 퍼졌단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김 양은 절대 학교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마음의 문을 닫았습니다. 전학을 보내달라고 졸랐습니다. 아이들 얼굴을 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아니, 아예 평생을 살아온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가겠다고 울먹였습니다. "왜 가해자들은 멀쩡하게 학교를 다니는데 우리 딸은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고, 왜 우리 딸만 전학을 가야 되고, 걔네가 무서워서 벌벌 떨어야 되나. 이게 진짜 화나요 진짜." 어머니는 아직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전해들은 많은 시청자들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휴대폰 훔치면 실형! 친구 때리면 훈방?' 형평성 논란
 이게 이번 학교폭력 사건의 전말입니다. '학교폭력->2차피해, 학교폭력->2차피해'. 숱하게 보도됐고, 많은 시민들이 번번이 공분했고, 그때마다 새로운 규정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가해자는 당당하고 피해자는 도망칩니다. 이번에 취재를 하며 참 많은 전문가를 만났는데,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하는 얘기가 '우리나라는 학교폭력 처벌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어린 아이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고 전과자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학교폭력'에는 유독 관대하단 겁니다. 예를들면 이런 겁니다. 10대 중학생이 남의 스마트폰을 훔쳐 팔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럴경우 이 친구는 대개 절도죄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10대 중학생이 친구를 심하게 때린 경우엔 대부분 훈방조치나 봉사활동 정도로 그칩니다. '절도=범죄'의 인식이 있지만, '폭행=싸우면서 크는 것' 정도의 온정주의가 있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마트 폰을 도둑맞은 사람은 100만 원을 잃은 것이지만,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로 폭행을 당한 사람은 인생을 잃은 것이라고요. 그런데 처벌은 그 반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입니다.

'가해자 대책'은 OK! '피해자 보호책'은?
 이런 지적도 많습니다. 갖가지 대책이 참 많이도 나왔고, '가해학생'에 대한 대책은 이제 얼추 마무리가 됐는데, 아직도 '피해자 보호책'은 전무하다는 겁니다.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당하는 2차 피해가 앞 서의 사례와 같이 친구들 사이에서의 '소문'입니다. 어떻게 된 것이, 때린 것은 자랑이고 맞은 것은 챙피한 일이 돼 버리는 거죠. 전체 학생 가운데 8%가 학교폭력 피해 학생, 4%가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고, 나머지 88%는 방관자라고 합니다. 선진국일수록 이 방관자 학생들이 방관하지 않도록,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다'라는 인식을 가지도록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이게 안된다는 거죠. 특히 현재처럼 '보복 폭행만 막으면 되지' 식의 소극적인 피해자 보호책을 갖고는, 이 88% 방관자 친구들로부터 폭력 피해자가 따돌림을 당하는 불합리한 일을 막을 길이 없는 겁니다. 학교폭력 대책, 이제는 피해자 보호를 신경써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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