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차일드는 2000년 대 초반 개념 자체가 꽃미남 밴드로 가요계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고 그 가운데 허정민이 있었다. 6년 후 문차일드는 ‘엠씨 더 맥스’로 변신했다. 그룹에서 탈퇴한 허정민은 묵묵히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여전히 가수로 기억되는 이유는 제 연기생활에 임팩트가 없었기 때문일까요? 가수활동은 딱 1년 6개월 정도했지만 연기는 그 곱절을 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겠죠. 더욱 열심히 달릴 겁니다.”
허정민은 겸손하지만 단단한 각오를 내비쳤다. 그럴 만도 하다. 허정민은 SBS '모래시계‘ 박상원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 올해로 연기 20년 차에 들어섰다. 문차일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매니저의 끈질긴 설득으로 첫 외도를 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문차일드의 일원이 됐지만 그 준비과정 역시 호락호락했던 건 아니었다. 허정민은 실력파 멤버들과 한 그룹으로 뭉쳤고 그들과 1년 6개월은 9평짜리 원룸에서 버티며 배고프게 가수를 준비했다.
“가수 준비를 할 때 정말 힘들었어요. 멤버들이 모두 집에 손을 벌리지 말자고 했기 때문에 궁핍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죠. 한번은 4명이서 1.5리터 사이다를 두고 서로 마시겠다고 하다가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어요. 배고프고 힘들었지만 서로에게 많이 의지했고 사이도 좋았어요.”
그렇게 탄생했기 때문일까. 문차일드는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허정민은 꿈은 처음부터 연기였기 때문에 끝까지 멤버들과 함께 할 수 없었다. 탈퇴 과정에서 멤버들 사이에서 오해가 생겼고 사이가 소원해졌다. 하지만 허정민은 여전히 엠씨 더 맥스를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했던, 허정민의 지난 5년은 녹록치 않은 시간이었다.
“탈퇴한 직후 3~4년 동안은 폐인에 가까웠어요. 무대가 그리웠고, 팬들이 해줬던 응원이 사라지자 텅 빈 느낌이 들었어요. 출연 요청을 받는 입장에서 직접 찾아다니며 오디션을 봐야 하는 처지가 된 것에 적응하지 못했던 거죠. 현실의 차가운 벽을 온몸으로 느꼈어요.”
허정민은 달라진 주위 환경이나 반응에 불평불만을 늘어놓진 않았다. 재작년 소집해제 한 이후 허정민은 보다 낮지만 절실한 자세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 오랜만에 주연으로 출연한 KBS ‘드라마 스페셜-82년생 지훈이’(2011)에서 진정성 있는 연기를 펼쳐 보였고, 드라마 관계자들을 자못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런 허정민의 성장에는 ‘엘레베이터’ 보다 ‘계단’을 택한 묵묵한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허정민은 2011년 연기의 기본기를 다지고자 대학로로 향했다. 지난해 연극 ‘뉴 보잉보잉’ 공연을 모두 소화했고, 연습에 보다 열심히 참여하기 위해서 일산에서 대학로로 집을 이사하는 열정도 엿보였다.
연극은 허정민에게 연기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게 한 곳이자 마음의 위안을 선물한 자리였다. 허정민이 “지금하고 있는 드라마가 끝나고 또 다시 활동에 공백이 생긴다면 주저 없이 대학로로 달려가겠다.”고 말하는 이유 역시 연극이 순수한 열정으로 빚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허정민은 ‘내 연애의 모든 것’으로 연기의 첫 발을 내딛었던 SBS에 20년 만에 돌아왔다. 잘하고 싶다는 의욕은 그 누구보다 크지만, 과한 욕심을 내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맡은 역할에 충실하며 주연을 빛내주는 것이, 조연 연기자들이 빛나는 길임을 오랜 연기 생활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수 안돼서 연기자 한다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요. 가수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도 극복하고 싶고요. 저는 지금에 만족하지도 불평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있어요. 마흔쯤 허정민은 어떤 얼굴일까, 생각해보면 누구보다 진심으로 다해서 연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허정민이 멋진 역할보다는 악역을 꼭 맡아보고 싶다고 소망을 내비쳤다. 자신 안에 쌓아둔 연기를 향한 갈증과 에너지를 풀기에 악역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진심을 느끼게 해주는 연기자를 꿈꾸는 허정민의 열정만큼은 그 어떤 배우에게 뒤지지 않았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 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경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