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지난 12일부터 계속 반복적으로 나오는 리포트가 있습니다. 제목은 '대화?대결? 한국 대통령과 총리의 태도가 다르다'입니다. 제목만 봐도 대충 내용이 짐작이 가시죠? 전날인 11일 우리 통일부 장관이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에 대해 대화의 문이 열려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날 저녁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대화 제의'라고 못을 박아 설명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총리는 기자들에게 "(북한에 ) 사과를 하든지, 사정을 하든지, 대화를 하자고 하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정 총리측은 직후 대통령의 발언과 상반된다는 지적을 받자 '전쟁 억지력을 강조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이 오락가락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중국 언론들이 걸고 나선 것은 이 부분입니다. 우리 정부의 넘버 1, 2가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면서 정부내 이견이 노출된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특히 정 총리의 발언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북한에 대해 대화를 제의하는 것은 상황을 더욱 자오가오(중국말로 곤란하다, 난감하다 뉘앙스)하게 만들 것"이라면서 "북한이 군사력을 이용해 칼춤을 추다가는 결국 자신이 상처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한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정 총리는 '주먹을 쓰겠다는 사람 앞에서는 주먹이 소용없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지'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칼춤'으로 바꾸면서 말의 내용을 더 험악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 언론들은 "한국 정부가 일관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이렇게 상반된 신호를 내놓는데 북한이 대화 제의를 어떻게 진의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겠냐"며 꼬집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 언론들이 살짝 북한에 경도된 입장에서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합니다. 심지어 우리 언론들도 '오락가락'이라고 표현했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우리가 상대하는 북한은 지금 상식의 궤를 벗어난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이야말로 더욱 철저히 합리적 원칙에 입각해 일관되게 대처해야 합니다. 상대의 비상식적 언행에 따라 우리마저 갈팡질팡하면 문제를 풀기는 커녕 더 꼬이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목적과 방향을 확고히 잡고 그에 따른 전략을 흔들림 없이 펼쳐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화 제의'라는 대단히 크고 중요한 방향 전환을 하면서 이런 치명적인 잡음이 불거지는 모습은 대단히 아쉽습니다. 중국 언론에 이런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의 대화 제의에 대해 어제 북한 조평통의 반응이 나온 뒤에 우리 정부가 보여준 대응도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아니 앞서 말한 장기적인 전략이 있기나 한지 걱정될 지경입니다. 한국이 원론적인 수준에서 대화 제의를 하면 북한이 얼씨구나 하고 '대화 합시다'하고 나올 줄 알았나요? 지난 11일 대화 제의 뒤 여러 대북 전문가와 얘기를 나눴습니다만, 공통적인 의견은 '북한이 이제까지 긴장을 고조시켜온 관성 때문에 쉽게 대화에 응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 국면 전환의 계기를 만들 선수를 둔 만큼 북한의 반응에 너무 구애받지 말고 대화의 틀과 내용에 대해 조금씩 구체성을 더해 가면서 협상 테이블에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해가야 한다'였습니다.
일단 14일 조평통의 대화 거부 발언이 나온 뒤 우리 통일부의 반응은 그래서 적절해보였습니다. "대남 선전기구인 조평통의 대변인은 격이 낮은데다 형식도 성명이 아닌 기자와의 문답"이라면서 "특히 조평통이 '대화 여부는 우리측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한 내용 등을 볼 때 북한이 사실상 대화 제의를 거부했다고 너무 단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라"고 차분하게 언급한 것은 적당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대화하자 했다고 냉큼 받을 수 없겠지. 그러니까 북한 당국도 아닌 산하 기관의 대변인을 통해서, 그것도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앙탈을 부리는 거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 없다'는 속뜻이 충분히 납득할 만 했습니다.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뻔히 예측할 수 있었던 반응을 최고의 전문가가 모였다는 청와대와 우리 정부의 안보 라인은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이니 큰일 아닙니까? 아니면 이번 대화 제의가 국제 여론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일부 외신들의 지적에 일리가 있는 것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정부의 오락가락 태도 표출로 그마저도 실패한 셈이니 더욱 한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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