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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대기업이 하는 퀵 서비스가 '나쁜' 이유

26년차 퀵 서비스 기사의 '눈물'

[취재파일] 대기업이 하는 퀵 서비스가 '나쁜' 이유
얼마 전 한 퀵 서비스 기사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만나자는 연락이었습니다. 꼭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만났습니다. 낡은 오토바이에서 한 중년의 남성이 내렸습니다. 헬멧을 벗은 얼굴에는 고단함이 가득했습니다. 흰 머리가 많은 짧은 스포츠머리를 긁적이며 악수를 청해왔습니다. 장갑을 벗은 손은 거칠었습니다. 방금까지 장갑을 끼고 있었던 손인데도 너무 차가웠습니다. 26년 동안 퀵 서비스 기사로 생계를 이어온 한 중년은 가슴에 쌓여 있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퀵 서비스 기사로 사는 삶의 고단함을 이야기했습니다. 멸시와 가난으로 점철되는 자신의 비참한 삶을 토로했습니다. 매일매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혹한과 한파에도 오토바이를 탔습니다. 그래도 빚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가난 때문에 큰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가정환경 때문에 자식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없었습니다. 큰 아들은 공사판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막내아들도 오토바이를 타고 있습니다. 희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나아지지 않는 퀵 서비스 기사로서의 삶이 한스럽다고 했습니다. 기사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퀵 서비스 시장에서 운송단가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보면 오히려 더 줄어든 겁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퀵 서비스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영세한 중소업체들이 난립하다 보니 서로 출혈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기업까지 슬그머니 퀵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영세 업체와 기사들끼리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퀵 서비스 시장에 대기업까지 슬그머니 숟가락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진출하는 게 불법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기업은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만 챙기고 있었습니다.

대기업은 재작년부터 퀵 서비스 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기존의 영업망을 통해 퀵 서비스 물량까지 손쉽게 확보를 합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겁니다. 대기업이 보증하며 운영하는 퀵 서비스라면, 소비자들은 기존의 영세한 퀵 서비스보다 대기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기업은 이렇게 확보한 일감을 다시 한 특정 퀵 서비스 업체에게 몰아줍니다. 결국 대기업은 퀵 서비스를 운영하지도 않고, 기존의 퀵 서비스 회사에게 하청만 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업체는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 소화하고 남는 물건들을 다시 영세한 퀵 서비스 업체에게 또 하청을 줍니다. 업계에서는 대기업에서 처리한다고 하는 퀵 서비스는 이렇게 하청에, 또 하청을 거친 물건들이 대부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다단계 구조가 형성되면서 자연히 수수료라는 게 생깁니다. 운송단가는 이 다단계 구조에서 단계를 거칠수록 수수료만큼 운송단가는 싸지게 됩니다. 대기업도 수수료를 챙겨야 하고, 퀵 서비스 업체도 수수료를 챙기고, 또 다른 업체도 또 수수료를 챙기고. 결국 실질적으로 물건을 옮기는 퀵 서비스 기사들만 낮은 단가에 일을 해야 하는 겁니다.

"하청과 원청 같은 자기네들끼리 주고받은 것 때문에 건당 4천 원~5천 원의 가치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장난질로 공중에 날아간다는 건 정말 화가 나는 거죠."

도로에서 만난 한 퀵 서비스 기사가 불만을 털어놨습니다.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다는 게 기사의 주장이었습니다. 일은 퀵 서비스 기사가 다 하는데 대기업은 앉아서 수수료만 챙기는 건 너무하는 게 아니냐며 화를 냈습니다. 업주들에게 23%씩 내야 하는 수수료도 부담스러운데 대기업까지 나서서 자신들과 같은 어려운 사람의 돈마저도 가져가야 하느냐며 대기업을 원망했습니다. 대기업이 가져가는 수수료는 단돈 몇 천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몇 천원은 영세한 퀵 서비스 기사들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돈입니다. 점심값 아끼려고 오토바이에 도시락 싣고 다니는 기사들에게는 단돈 몇 천원은 너무나 큰돈일 수도 있습니다. 매일매일 빚 독촉 전화에 시달리는 기사들에게 담배 한 갑 살 수 있는 몇 천원은 큰돈입니다. 사람들은 개구리에게 장난삼아 던진 돌을 던집니다. 하지만, 장난삼아 던진 돌은 개구리에게는 목숨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무기인 겁니다.  대기업은 퀵 서비스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작다고 밝혔습니다. 대기업은 자신들에게는 얼마 되지 않은 그 매출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생계와 직결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그냥 무시하는 걸까요.

대기업은 퀵 서비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는 고객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합니다. 고객사들이 택배와 화물 운송, 퀵 서비스까지 포함하는 통합물류 서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하기 때문에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겁니다. 그리고 영세 상권에 대기업이 진출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하청을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설명합니다. 일단, 퀵 서비스 시장이 영세한 시장이라는 건 인지를 하고 있나 봅니다. 그리고 이 시장에 진출하면 여론의 비난을 받을 것이라는 건 예상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하청을 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설명이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이미 수년전 오토바이까지 사서 퀵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려다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영세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청을 줬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실패한 후 일감만 확보해 시장에 풀고 수수료는 받으면서 영세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하청을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대기업의 모습에서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감을 특정업체에게 몰아주는 건 뭘까요. 최소한 하청을 제대로 주려면 공개입찰이라도 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특정업체에게 몰아주고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수수료만 챙기고 싶었을까요. 뭐가 그리 당당하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대기업은 거래처마저도 속였습니다. 거래처는 대기업을 믿고 대기업이 안전하게 운송해 주기를 원해서 서비스를 요청한 겁니다. 일감만 가져가서 기존의 다른 영세 업체나 기사들에게 던져주라고 맡긴 게 아닐 겁니다. 기존 퀵 서비스 운송업체나 기사를 믿지 못하겠으니 대기업에게 맡긴 걸 겁니다. 실제 한 고객사는 취재진에게 대기업에 맡긴 물건을 대기업에서 운송해 주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일부 퀵 서비스 업체의 불신으로 대기업에게 맡겼는데 정작 대기업은 그 퀵 서비스 기사들에게 운송을 맡겨 놓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도 대기업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만약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 있는 피해 보상과 서비스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대기업과의 신용거래를 통해 퀵 서비스 배송비에 대한 회계가 투명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하지만 편하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마트에 사람들이 몰리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기존 퀵 서비스 업계나 기사들도 철저한 자기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조건에서의 경쟁이 불가피한 대기업과 영세 상권과의 불평등한 싸움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이 가져야할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 때문에 골목상권 보호라는 명분이 힘을 얻고 있는 겁니다. 대기업이 자본력과 시스템, 이미지를 바탕으로 소비자를 시장을 장악하는 것 보다, 가진 게 많으니 나눠주면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대기업도 답답하고 억울할 겁니다. 대기업에게 투자를 강요합니다. 경기가 어려우니 투자를 하라고 여기저기서 압박합니다. 그래서 사업에 진출하려면 골목상권 침해니 뭐니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해외로 나가라고만 합니다. 국내에서만 사업하려고 하지 말고 해외로 나가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고 등을 떠밉니다. 그런데 해외 투자도 쉬운 게 아닐 겁니다. 힘들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가진 자의 책임감과 배려를 요구하는 겁니다. 많이 가졌으니까 조금 나누자는 겁니다. 한 대기업의 퀵 서비스 진출을 지켜보던 다른 물류 대기업들도 퀵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외국계 물류 회사도 이 흐름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대기업이 퀵 서비스 시장까지 다 흡수해서 다단계 구조를 형성하면 퀵 서비스 기사들은 더 어려워집니다. 퀵 서비스 기사들의 상당수가 하루벌이입니다. 적잖은 비율이 신용불량자입니다. 하루 벌어 고금리의 빚 갚고, 남은 돈으로 먹고 삽니다. 그러다 사고라도 한번나면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또 빚을 내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결국,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나와서 오토바이를 운전해야 합니다. 그래야 빚 독촉에서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고 밥이라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퀵 서비스 시장은 연간 4조원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택배 시장이 연 3조 원이 넘는다고 하니 택배시장보다 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방치돼온 퀵 서비스 시장에 대해 최근 들어 입법화가 다시 추진되고 있습니다. 퀵 서비스 시장은 수십 년간 어려운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입법화 과정을 통해 퀵 서비스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되는 버젓한 직업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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