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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누가 명품을 '명품'이라 불렀나?

[취재파일] 누가 명품을 '명품'이라 불렀나?
최근 흥미로운 보고서 하나를 봤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서 발간한 보고서인데 명품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한 조사 보고서였습니다. 이런 저런 설문조사도 흥미롭기는 했는데 더 관심이 갔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명품에 관한 정의였습니다.

  습관적으로 ‘명품’, ‘명품’ 이렇게 불러왔던 물건들인데, 뜬금없이 ‘명품의 정의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니 막상 대답하기 참 어려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명품의 뜻, 어떤 게 정말 명품일까요? 사전적으로는 ‘아주 뛰어난 물건이나 작품’, 영어로는 ‘masterpiece' 정도로 정의돼 있습니다. 아직 명품이라는 물건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딱히 없는 모양입니다. 보고서에서도 입맛에 딱 맞는 뜻을 사전에서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 실제로는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요? 외국의 사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명품이라고 부르는 물건에 대해 미국은 ‘high-end product' 또는 ’premium product' 정도로 칭한다고 합니다. 뜻풀이를 하자면 ‘최고급품’, ‘고급품’ 정도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 이 표현은 우리가 쓰고 있는 ‘명품’과 뜻이 다른 것은 명확합니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에 ‘masterpiece'라는 개념을 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은 어떨까요? 역시 일본도 고가의 해외 브랜드를 명품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의 루이비통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은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명품’이라고 쉽게쉽게 부르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장인들이 정성을 쏟아 만든 물건들을 명품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래도 가내수공업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전통 때문으로 보입니다. 비싼 제품이 고급 제품이긴 합니다만 대량으로 생산되는 제품은 명품이라고 부르지 않는 문화라고 합니다.

  중국은 우리와 조금 비슷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브랜드를 명패(名牌)라고 부르는데 고급 제품들은 고당명패(高當名牌)라고 한다고 합니다. 따로 우리처럼 명품이라는 별도의 개념을 부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고급 브랜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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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어떤가요? 명품하면 저부터도 우선 루이비통과 샤넬이 먼저 떠오릅니다. 가방하면 한 개에 몇 천만원씩 하지만 몇 달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는 에르메스도 생각나고요. 그리고는 구찌, 프라다 등등 이런 브랜드 이름부터 생각납니다. 대부분의 주변 사람들도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명품’ 브랜드들이 우리 소비자들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은 또 막강합니다. 없는 돈 쪼개가면서, 심지어 빚을 내가면서도 ‘명품’ 구매에 열을 올립니다. ‘명품’이라는 루이비통 가방은 길을 가다보면 3초마다 눈에 띈다고 해서 ‘3초백’으로 불릴 정돕니다. 길거리에 그야말로 ‘명품’이 넘쳐나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이른바 명품 시장은 5조원이 넘었고, 세계 고가품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위치는 5위에 달합니다.

  가방이나 액세서리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전자제품에도 먹는 음식에도 ‘명품’이라는 말들은 흔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명품’이 잘 팔리니 너도나도 ‘명품’을 내걸고 ‘명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제품이라고 이름 바꾸고 내용물은 별로 바꾸지도 않으면서 값을 올리는 업체들의 마케팅도 '명품‘ 마케팅의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프리미엄‘, '명품' 마케팅은 시장에서 제법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차고 넘치는 ‘명품’들, 과연 ‘명품’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소비자원이 교수와 소비자 단체 등 전문가 10명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7명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것처럼 ‘명품’이라고 부르는 개념은 잘못됐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안을 제시했는데, ‘유명 브랜드’, ‘해외 고가 브랜드’, ‘고가 사치품’ 등 높은 가격과 생산되고 있는 지역 등에 근거해 사전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을 덧대자면, 일본식 표현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명품’이라 함은 가격대와 상관없이 만든 사람의 정성과 혼이 담겨있는 물건이라고 봅니다. 그야말로 ‘한땀한땀’ 장인 정신이 묻어나오는 물건이어야 명품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봅니다. 대량 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과 마케팅의 힘을 빌어 비싸게 팔리고 있는 물건들은 ‘고가 유명 제품’일 뿐입니다. 물론 장인들이 정성을 다해 만드는 물건들은 비쌀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지금 일부 고가 ‘명품’들도 그런 장인 정신에 따라 만드는 제품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명품’에 대한 개념을 다시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명품'이라는 표현만 아껴 쓸 수 있게 되더라도 지금처럼 '명품'이 판을 치고 넘쳐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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