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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혜교 "난 타고난 배우가 아냐…연기는 항상 어렵다"

[인터뷰] 송혜교 "난 타고난 배우가 아냐…연기는 항상 어렵다"
송혜교는 봄 햇살처럼 눈부셨다. 인터뷰 자리에 다소곳이 앉아 걸어 들어오는 기자들의 눈을 하나씩 마주치며 눈인사를 건네는 그녀의 얼굴은 해사했다. 지난 겨울 내내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모습으로 시청자의 안타까움을 샀던 오영과 달리, 송혜교는 봄 햇살같이 따스했고 편안해 보였다.

송혜교는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스페셜 ‘그 겨울, 바람이 분다’(극본 노희경, 연출 김규태/이하 ‘그 겨울’)에서 시각장애가 있는 대기업 상속녀 오영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극중 오영이 아픔 많고 지독한 외로움을 겪고 있는 인물이었기에, 연기하는 송혜교도 같이 힘들었다. 그러나 이젠 그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이번 작품은 감정적으로 소모한 게 많아요. 제 나이대가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끝까지 다 가본 것 같아요. 그만큼 몰입했던 작품이라 그런지, 끝나고 시원섭섭하단 감정보다는 너무 힘들고 괴로웠던 그 시간마저도 행복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시간이 그립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엔 오영을, ‘그 겨울’을 떠나보내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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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타고난 배우가 아냐..연기는 항상 부담”

말 그대로 정말 ‘열연’이었다. 송혜교란 배우가, 한국 미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녀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 싶을 정도로. 그렇게 송혜교는 완벽하게 오영으로 거듭났다. 작은 단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송혜교는 온 몸, 온 마음을 다해 오영을 연기했다.

“전 타고난 배우가 아니에요. 그래서 저한테 연기는 항상 어려워요. 노력을 해야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만큼 쫓아갈 수 있기 때문에 연기에 대해선 항상 부담감을 갖고 있죠. 이번엔 시각장애인 역을 하다보니 더 스트레스를 받고, 막막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항상 물음표였죠. 다행히 방송 이후 복지관에 계신 분들도, 언론도, 시청자들도 칭찬해주시니 한시름 놨어요. 나중엔 몸에 베이니 자연스럽게 연기가 되더라고요.”

송혜교는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은 감정연기는 물론, 시각장애 연기까지 훌륭히 소화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송혜교가 그 어느 때보다도 칭찬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각장애 연기는 베테랑 연기자들도 꺼리는 캐릭터다. 시선처리 한 번 잘못했다가는 자칫 캐릭터 자체의 몰입도가 깨지고, 나아가 극 전체의 몰입도마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혜교는 ‘그 겨울’ 16부 내내 단 한 번도 허투루 시선처리를 한 적이 없었다.

“초반에는 촬영하고 집에 돌아오는 게 항상 찝찝했어요. 제가 연기하는 게 맞나 안 맞나, 제가 연기를 잘못해서 괜히 시각장애인 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근데 나중에는 시선처리가 자연스럽게 되면서, 오히려 사람들 눈을 보고 연기하는 게 어색하더라고요. 습관이 무서운 것 같아요. 6개월정도 그렇게 연기하니, 지금은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며 연기하는게 이상해요. 되게 웃기죠?”

“혼자 연기하는 기분, 외로웠다”

배우는 맡는 역할에 따라 그때그때 분위기나 성격이 바뀌곤 한다. 송혜교도 마찬가지다. 오영이 시각장애인에 가족 없이 자라 극심한 외로움을 겪는 캐릭터이다보니 송혜교도 오영의 외로움을 절실히 공감했다. 또 사람의 눈을 보지 않고 연기한다는 게, 배우로서의 외로움도 더욱 배가시켰다.

“혼자 연기하는 기분이었어요. 눈을 보면 안 돼서 상대방의 목소리만 듣고 연기하니 왠지 저 혼자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 저만 공유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은데, 저 혼자 그런 생각에 빠지고 왕따 같다는 느낌에 많이 외로웠어요. 그래서 오영이란 캐릭터가 갖고 있는 외로움이 연기로 더 잘 나타난 것 같아요. 또 그런 이유로 드라마를 보신 분들이 영이의 외로움을 더 동정하고 알아주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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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교가 연기한 오영은 그동안 여느 드라마나 영화에 나왔던 시각장애인 캐릭터들과는 달랐다. 드라마 속 오영은 혼자 화장을 할 줄 알았고, 때론 하이힐을 신고 외출도 했다. 시각장애인은 그런 것을 못할 것이라 여겼던 우리의 편견은, ‘그 겨울’ 속 오영을 통해 완벽히 깨졌다.

“전 오영을 준비하기 위해 복지관에 다니면서부터 편견이 다 깨졌어요. 그들은 눈이 안 보일 뿐이지, 정안인(正眼人)과 똑같이 행동해요. 시각장애인은 하이힐도 못 신고 메이크업도 못 하겠거니 하는데, 다 할 줄 알아요. 제가 만난 어떤 여자는 풀메이크업에 머리스타일도 혼자 바꿨고, 어떤 남자는 정장을 입고 행커치프까지 했어요. 또 어떤 친구는 막 뛰어다니다가 거울 앞에 딱 멈춰서 머리를 만지기도 했고요. ‘그 겨울’을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라도 깨주는 게, 제겐 또 하나의 숙제였어요. 방송 이후 많은 분들이 시각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좀 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기분이 좋아요.”

“‘그 겨울’ 호평, 나 혼자 한 게 절대 아니다”

‘그 겨울’은 작품성, 영상미, 배우의 연기력까지 모두 대중의 인정을 받으며 ‘명품 드라마’란 호평을 얻었다. 그 중심에 선 송혜교는 칭찬의 공을 주변에 돌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저 혼자 한 게 절대 아니에요. 반 사전제작 드라마이고, 노작가님이 대본을 일찍 탈고하셔서 시간적 여유가 많다보니 1부부터 16부까지 모두가 모여 대본 연습을 할 수 있었어요. 각자 해석이 다를 텐데 대본 연습을 하며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누고 공유하니 캐릭터의 감정 연결이 잘 됐죠. 오영이 시각장애인이라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는데, 감독님이 얼굴 클로즈업을 많이 잡아 제 미세한 얼굴 떨림까지 잘 보이게 해서 시청자에게 감정적인 부분이 잘 전달된 거 같아요. 또 제가 정적으로 연기한다면, 조인성 씨는 역동적으로 연기해서 자칫 저 때문에 지루할 수 있는 게 사라졌죠. 그 모든 것들이 다 감사해요.”

송혜교는 오수 역 조인성과의 연기호흡은 “정말 좋았다”라고 자평했다. 둘 다 연기 경력이 짧지 않은 만큼 어디서 힘을 주고 빼야하는 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 힘들이지 않고 촬영을 소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찰떡호흡 때문에 ‘그 겨울’ 속 아픈 관계인 오영과 오수를 연기하는 게 그나마 조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 연기한 걸 생각해보면, 제 연기만 하려했어요. 이 신이 제 것인지 상대방의 것인지 구별 못하고 무조건 저만 잘 하려 했죠. ‘그들이 사는 세상’을 하면서부터 달라졌어요. 신을 해석하거나, 이 신은 누구 것인가를 파악할 수 있게 됐죠. 저도 그걸 알고 인성 씨도 그걸 확실히 알고 있어서, 서로 힘을 주고 뺄 때를 알아 잘 지켜주니 호흡이 더 살아났어요. 또 제가 연기가 잘 안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인데, 인성 씨는 옆에서 짜증 한 번 안내고 그걸 다 받아줬어요. 호흡이 정말 좋았어요. 고마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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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선생님을 믿었다. 그리고 칭찬을 받았다”

사실 송혜교는 ‘그 겨울’이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리메이크하는 것이라 처음에는 부정적인 생각이었다. 특히 한국 최고라 불리고, 인간의 고뇌와 감성을 어루만질 줄 아는 작가인 노희경이 리메이크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노희경이라 못마땅했던 것을, 노희경이라 믿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 겨울’을 선택했다.

“이번 작품은 솔직히, 이미 만들어진지 오래 된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리메이크를 한다는 게 전 부정적이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왜 노희경 선생님이 리메이크를 하는 지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선생님한테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만들겠다’라는 자신감이 보였어요. 리메이크는 싫었지만, 선생님을 믿고 가보기로 했죠. 선생님도 저한테 약속하셨어요. ‘네가 하지 않았던 캐릭터를 확실히 만들어 주겠다’라고. 결국 그렇게 만들어주셨죠.”

‘그 겨울’은 송혜교가 노희경 작가와 함께 한 두 번째 작품이다. 두 사람은 지난 2008년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먼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노작가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은 다른 노작가의 작품에 여러 번 출연하곤 한다. 작가는 배우의 연기가 마음에 들어서, 배우는 작가의 작품이 좋아서 일 테다. 송혜교는 최근 5년 사이 노작가의 작품 중 두 번이나 여주인공을 맡았다. 송혜교는 어느새 배종옥, 윤여정과 같이 ‘노희경 사단’ 하면 떠오르는 배우들 중 하나가 됐다.

“‘그들이 사는 세상’을 할 땐 노희경 선생님께 칭찬을 한 번도 못 들었어요. 이번 ‘그 겨울’ 때는 중간중간 모니터를 해주면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죠. 어떤 게 좋았는지를 세세하게 짚어서 칭찬해주시는데, 갑자기 칭찬을 많이 받으니 제가 정신이 없더라고요.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내가 너한테 요구한 감정이 3가지였는데, 넌 그걸 4~5가지로 연기하더라.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라고요. 전 칭찬을 많이 받는 배우가 아니라 이런 칭찬이 어색하게 느껴지는데, 칭찬도 받을 줄 알아야 한 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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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캐릭터로 굳혀지는 게 싫다. 모험하고 싶다”

‘그 겨울’을 훌륭히 마친 송혜교는 이제 오우삼 감독의 영화 ‘생사련’ 촬영을 준비한다.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에 출연했던 송혜교는 또 다른 중국의 거장과 호흡을 맞춘다. 송혜교가 한국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장르, 새로운 캐릭터에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것에 모험하고 싶어요. 제가 독립영화를 찍고, 중국에 가서 영화를 찍고 하는 것들이 다 저한텐 도전이에요. 한국에서 귀여운 캐릭터로 자리잡히면 그런 캐릭터밖에 안 들어와요. 전 그게 싫어요. 돈 버는 데는 도움이 될지언정, 길게 봤을 때 배우한테는 안 좋죠. 영화 ‘오늘’ 같은 경우도, 이정향 감독님의 팬이기도 했고 그 분과 작업하면 또 다른 절 발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선택했어요. ‘그 겨울’이 잘 돼서 다행이에요. 이게 안됐으면 모험의 기회가 없어졌을 테니까요. 앞으로 당분간은 주변 눈치 안 보고 더 모험할 수 있게 돼서 좋아요.(웃음)”

송혜교는 오우삼 감독의 영화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6월쯤 출국해 본격적으로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1930년대 중국 상하이의 금융가 집안에서 태어나 시대의 아픔과 함께 성장하는 강인한 여성 주온분 역이다. 캐릭터의 설명만 들어도 송혜교의 또 다른 연기변신이 기대된다.

“오우삼 감독님의 영화는 촬영 전에 왈츠, 피아노 등 배울 게 많아요. 그런 것들을 배우다가 여름에, 6~7월쯤 넘어가서 집중적으로 촬영할 것 같아요. 전 기존에 하지 않았던 걸 하고자 해요. 작품은 재미가 없어도, 캐릭터가 확실한 색깔이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4년이나 걸려 왕가위 감독님의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거고요. 흥행성만 노리고, 사랑받을 작품만 선택하진 않을 거에요.”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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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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