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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민주당 대선 평가…내 탓이요? 네 탓이요? ①

[취재파일] 민주당 대선 평가…내 탓이요? 네 탓이요? ①
4월 9일 오전 11시 30분 민주당 당대표실. 기자들은 저마다 노트북 자판에 손을 대고 받아 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기자들은 대선평가 보고서를 발표할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일순 대표실의 정적을 깼습니다. 한상진 위원장과 김재홍 간사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약간의 긴장감이 한상진 위원장의 날카로운 턱 선을 따라 흘러내렸습니다. 한두 번 뜸을 들인 뒤 한상진 위원장은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취재 기자들의 노트북 자판을 치는 소리가 방을 가득 메웠습니다. 셔터 소리와 타자 소리를 뚫고 나오는 한상진 위원장의 목소리는 지난 번 기자들을 만나 중간발표를 할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목소리 톤은 조금 낮았고 말을 하는 속도는 기자들이 받아치기 편할 정도로 조금 느렸습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대단히 신경 쓰며 하는 듯 했습니다.

“1월 21일부터 80일 동안 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했습니다. 대선 평가 위원회는 어제 새벽 5시경 합의를 봤습니다.”

한상진 위원장은 그간의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선 패배의 원인 분석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그의 말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기자들이 자판을 치는 소리도 그의 말 속도에 따라 점점 커져 갔습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후보가 매우 중요합니다. 문재인 후보의 개인적 매력은 박근혜 후의 개인적 매력과 유사합니다. 후보로서는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교 관점에서 보면 분석 결과, 문재인 후보보다 박근혜 후보가 더 우월하다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두 분의 매력은 비슷하지만 비교 관점에서는 격차가 벌어졌다는 게 현실입니다”

한상진 위원장은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보다 개인적 매력에서 비교 우위를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안철수 후보와 비교한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 하지 않았습니다. 한상진 위원장의 부연 설명이 더 보태지면 말은 더 길어졌습니다. 말이 길어지면서 점점 그가 하는 말의 뉘앙스는 더욱 더 분명해져 갔습니다.

“대선 패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계파 갈등입니다. 민주당은 긴 역사를 갖고 있고 능력 있는 분들도 많지만 심각한 문제는 계파 갈등입니다. 정치와 사회 운동을 혼동한 착오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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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은 카메라나 기자들은 보지 않았습니다. 약간 아래로 향한 그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왼쪽으로 잠깐 고개를 돌렸다 이내 다시 돌아오곤 했습니다.  

“우상호 의원을 포함해서 486들이 자성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결실을 맺어서 민주당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내 탓이요 라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멘붕에 빠진 당원들과 지지자들을 추스를 수 있습니다. 정치적 책임을 생각하는 것은 처벌의 관점이 아니라 조직에 활력을 넣는 귀중한 덕목입니다”

한상진 위원장의 긴 설명의 끝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대선 패배의 책임자로 민주당내 친노 주류 진영을 지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책임을 질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의 말은 신중하고 느렸지만 의미만큼은 또박 또박 전달됐습니다.

“한국 정치에서 정치적 책임을 지는 모습이 척박합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희망을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한상진 위원장의 말이 끝나면서 취재 기자들의 노트북 자판을 내려치던 소음도 함께 잦아들었습니다. 다시 방안에는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상진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은 360여 쪽 분량의 두꺼운 대선평가보고서를 당 비대위에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그 평가 보고서에서 당내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대선 패배 책임자 순서를 매겼습니다. 한명숙, 이해찬, 박지원, 문재인, 문성근 순서였습니다. 언론들은 이 순서를 점수와 함께 보도했고, 민주당내 친노 주류 진영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민주당내 비주류로 분류되는 문병호 의원은 YTN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 후보가 의원직을 사퇴했어야 맞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의원에게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것이냐라는 질문에 문병호 의원은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그것은 얘기하기가 곤란하다. 국회의원 사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정계 은퇴를 하라는 그런 말씀이 아니고 한 발 물러서고 제2의 도약을 준비하시라는 그런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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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살아있는 생명체인가 봅니다. 지난 대선 때 나왔던 문재인 후보 국회의원 사퇴론, 대선 패배 후 조용히 사라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문재인 의원 사퇴론은 잠시 수면 아래서 숨을 죽이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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