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반년 만에 이들은 거친 시련을 맞았습니다. 사기를 당했지요. 지난 6개월 간 착실하게 거래한 업체였습니다. 일단 납품만 하면 꼬박꼬박 결제대금을 입금했던 업체여서 너무 믿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3일 만에 모니터 8백여 개를 주문한 뒤 대금 3억 원 가량을 주지 않고 물품만 갖고 잠적해버린 겁니다. 전자상가에 입점한 업체 대부분이 영세해 사기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면 “이제 곧 망한다”는 말이 퍼져 피해를 봐도 쉬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취재를 위해 용산에 갔을 때 두 청년 말고도 다른 여러 명의 피해자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요.
대전에 내려가려 한 당일, 사기꾼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찰에 자진 출두한 것이지요. 대전을 향하던 차를 돌려 다시 용산으로 달려가 사기꾼을 만났습니다. 초췌한 모습을 한 이 30대 남성은 “3살 난 자식이 자꾸 눈에 밟혀 잠적을 포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상세히 말했습니다. 돈이 필요해 한두 번 했던 이른바 ‘무자료 거래’가 끝내는 목줄을 쥐었다는 겁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사기꾼을 추적하기 위해 거래한 명세서를 보여 달라고 하자 업주는 화부터 냈습니다. “내가 그걸 보여줄 의무가 있느냐. 당신들이 경찰인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러는건가.” 애초부터 저희에게 보여줄 세금계산서는 아예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흥분한 업주의 말을 듣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이 업주는 경찰 등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직원 명의의 계좌를 이용해 무자료 거래를 해왔습니다. 한번에 주고받은 금액이 천만 원이 넘으면 의심을 받을까봐 9백만 원, 8백만 원 식으로 소액으로 결제대금을 나눠 거래하는 치밀함도 보였지요. 사기꾼은 이 업주와 이런 무자료 거래를 이미 수년 전부터 해왔다고 고백했습니다.
보도 당일 찾아간 33살 두 청년의 사무실은 며칠 전 갔을 때보다 휑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망했다는 소문이 퍼져 거래처에서 납품을 끊고 한 가득 있던 모니터 상당수를 가져간 겁니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을 상대로 세금도 탈루해가며 싼 값에 물품을 받아내는 무자료 거래 때문에 이 애먼 두 청년이 결국 사기를 당해 시련을 겪고 있는 겁니다. 사기꾼의 등장 이후, 경찰은 무자료 거래에 대한 수사에 나섰습니다. 무자료 거래가 만연한 현실, 그리고 그것이 갖는 폐해를 생각한다면 수사를 더욱 확대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