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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누가 오디션의 진정한 강자인가?

오디션의 원조, 할렘'아마추어 나이트'취재기

[월드리포트] 누가 오디션의 진정한 강자인가?
K 팝스타 시즌 2가 막을 내렸다. 뉴욕에 와있어도 인터넷으로 꼭 보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오늘은 누가 탈락할까? 신기에 가까운 가창력을 보여주는 실력파들의 대결은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저마다 사연을 가진, 거대산업으로 변해버린 연예인 시장에 평범한 이유로 끼어들지 못했던 진정한 강자들의 무대라는 점, 누구도 속일 수 없는 오직 실력 만의 승부라는 점이 엄청난 인기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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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동 뮤지션'과 앤드류 최, 그리고 '이천원', 방예담을 보면 이들을 일찍 발굴하지 못하는 연예기획사들의 사각지대를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누가 알았겠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이 자신의 꿈을 그토록 강하게 연마하고 있었다는 것을...오디션 프로그램의 큰 인기는 지름길과 이른바 '빽'의 장벽에 좌절을 겪은 바 있는 모든 약자들을 위안하는 힘에서 나온다.

뉴욕 할렘가의 중심에 있는 아폴로 극장, 잘하면 통과, 못하면 바로 탈락하는 아마추어 나이트는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미국내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34년에 시작된 아마추어 나잇은 극심한 가난 속에 노래로 희망을 찾으려는 흑인 가수들의 등용문이었다. 뮤지컬과 영화로도 만들어진 '드림걸즈'(Dream Girls)의 첫 장면이 바로 그 경연대회다.

아마추어 나이트는 매주 수요일에 열리는데 경연자들은 노래나 장기를 펼치기 전에 꼭 무대 오른쪽에 있는 나무토막을 진하게 만지고 나선다. 이 나무는 1930년대 아폴로 극장이 단지 극장으로 사용됐을 때 앞에 있던 밤나무인데, 당시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두둑한 팁을 받는 날엔 나뭇가지에 돈을 걸어놓기도 했다. 그 소문에 이 나무를 만지면 일거리를 얻는다는 전설이 생겼고, 주변은 배우들의 인력시장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희망의 나무는 도로 확장으로 베이고 말았는데 그 나무의 한 토막이 무대에 배치됐다. 아마추어 나이트 참가자들은 그 나무토막에 손을 대고 행운을 기원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어둡고 암울한 할렘의 오디션 쇼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이 무대를 거쳐간 가수들의 이름을 알아보자. 빌리 할리데이,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그리고 레이 찰스..우리도 익숙한 전설적인 가수들이다. 그리고 그 화룡점정은 바로 마이클잭슨, 역시 9살 때 이 무대에 섰다. 그가 숨졌을 때는 수천의 추모인파가 이곳으로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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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촬영에는 유난히 엄격하다. 30분 촬영만 가능하고 방송은 꼭 3분 이내여야한다. 나중에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다시 취재를 할 수 없다. 올해 첫 본선무대의 취재 허락은 한달 여에 걸친 이메일 교환과 신분증명을 통해 성사됐다. 무대는 열정적이다. 10살 꼬마의 탄탄한 고음처리에 박수가 터지고, 이웃 아줌마, 동네 총각같은 참가자가 놀라운 실력을 선보인다. 총 4단계를 통과해야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데 다음 단계 진출자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아닌 관객의 박수소리...야유가 나올 때는 가차없이 탈락이다. "Be Good or Be Gone"이란 표어는 그래서 생겼다. 잘하면 붙고 못하면 떨어지는 무대라는 뜻이다.

가장 놀라운 장면은 공개 예선전이 열리는 주말에 목격할 수 있었다. 새벽부터 몰려든 도전자들로 극장 앞은 장사진을 이루는데, 정말로 수천명이 몰려들었다. 카메라만 보이면 즉석 공연이 펼쳐진다. 노래 뿐 아니라 성대모사 코미디, 학교에서 배웠다는 북을 들고 나온 아이들도 있었다. 앨라배마에서 왔다는 레이나는 당당하게 말한다.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어요. 전 꼭 할 수 있어요. 엄마에게 큰 집을 사 줄 거예요"

하지만 그 긴 줄 속에는 꼭 연예인 지망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 만의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사람들 또 가난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랜 미국 경기불황의 그림자였다. 40대 가장인 래리는 4명의 자녀와 부인과 함께 가스펠을 부른다. 그는 말했다. "우린 더 나은 삶을 원해요. 세상에 전할 메시지가 있어요" Q: 더 나은 삶은 뭡니까? "살림살이 형편이 더 좋아지고 애들은 학교에 다니는 거죠. 태풍 샌디로 잃은 많은 것들을 다시 되찾고 싶습니다"
 
반나절을 기다린 예선심사는 긴장의 연속이다. 합격자는 백명 중에 한두명 대부분 쓸쓸히 짐을 싼다.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한마디에 오랜 준비와 꿈은 쉽게 물거품이 되고 만다. 심사위원이자 수석 프로듀서인 마리온 케피와 인터뷰를 했다. 내공을 지닌 사람이었다.

"재능과 함께 중시되는 것은 바로 무대 장악력, 카리스마입니다. 재능을 압도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죠. 카리스마가 사람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마이클 잭슨이 그만의 워킹을 보여줄 때,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그만을 바라보죠.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예요. 다이애나 로스가 그랬고, 퀸시 존스가 그랬어요. 그들이 방안으로 들어왔을 때, 방안의 공기가, 화학구조가 바뀝니다. 그것이 스타를 만듭니다"

미국에서도 이미 오래 전 스타의 꿈은 거대자본과 결합한 대형 산업이 된지 오래다. 80년째 계속되는 아마추어 나이트는 돈과 배경없이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는 다시 새로운 연예산업의 구조를 만들어 내는 느낌이다. 인터뷰로 만난 한 참가자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꼭 부와 명예를 위해서 아마추어 나이트에 참가한다고 보면 오해하는 겁니다. 진정한 예인들은 무대에 서는 것, 남에게 나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 자체를 기쁨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무대에 서고 싶은 겁니다. 더 많은 사람이 나의 노래로 위안받고 힘을 얻게 해주면 그것이 나의 행복인거죠"

그의 진지한 눈동자에 나는 적지않게 놀랐다. 긴 줄에 서있는 사람들을 얕보지 않았었나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깊고 넒은 꿈의 소유자이고 결과에 상관없이 모든 꿈은 소중하다. 나는 한단계, 한단계 겸손하게 최선을 다했던 K팝스타의 '이천원'을 순간 떠올렸다. K 팝스타와 아마추어 나이트는 그렇게 뉴욕 할렘에서 마주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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