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대형마트 판매제한 품목에 대한 입장을 한달 만에 내놨습니다.
지난해엔 대형마트 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영업 시간 제한이 쟁점이었습니다. 진통은 있었지만 유통산업법 등 관련법 개정과 자치구의 조례 개정 등으로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는 등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정착이 됐는데 이번에는 판매품목을 제한하는 문제입니다.
지난해 11월 한국 중소기업학회에 연구용역을 맡긴 결과, 51개 품목이 선정됐다며 한 달 전인 3월 8일에 발표했습니다.
아래는 당시 보도자료의 일부입니다.
...
□ 서울시는 이번에 선정된 리스트를 토대로 4월 초에 이해관계자들과 일반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개최, 그 의견을 토대로 국회 법 개정 건의를 포함한 향후 방향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 아울러 서울시내에 SSM이 출점해 인근 중소상인으로부터 사업조정 신청이 들어올 경우 이 51개 리스트를 놓고 SSM이 판매하는 품목의 범위를 조정하는 상생리스트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
유통업계는 잔뜩 긴장했습니다. 서울시 발표에 앞서 리스트를 미리 입수해서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반대여론을 조성하는 데도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경련에서 지난달 말 발표한 "서울시민 74%, 판매품목 제한 반대"라는 여론조사가 한 예입니다.
대형유통업체 등에 납품하는 농어민, 업체 등은 이 품목이 확정될 경우 수입이 급감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반대 기자회견 개최, 서울시 항의방문에 이어 4월 9일에는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를 계획했습니다.
소비자 반응도 그리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골목상권 보호'라는 취지 자체엔 공감하지만 필요한 상품을 사기 위해 마트와 전통시장 둘다 가야한다면 불편하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발표 뒤 한 달, 서울시는 4월초 의견 수렴을 위해 개최하겠다던 공청회 날짜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관련 법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문제도, 판매제한 품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지난해 11월 폐기됐기에, 현재 상황에서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여론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명확한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어제 서울시 발표내용입니다.
...
서울시가 지난 3월 8일 발표한 ‘대형마트·SSM 판매조정 가능품목’은 ...「특정품목 판매제한 권고」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로서 이를 판매제한 품목으로 확정한 바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품목이 확정되어 모든 대형마트 등에 적용되는 것처럼 비춰져 시민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초래한 점에 대해 유감의 말씀을 드리며...
「특정품목 판매제한 권고」정책은 우선 대형유통기업 신규출점(또는 영업확장) 등으로 기존 상권과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로 한하여 적용하고,
권고품목의 경우 연구용역 51품목을 포함한 지역적 특수성이 고려된 품목 중에서 분쟁이 발생한 지역적 여건 등을 감안해 그 중 일부를 선택해 활용하며, 앞으로 서울시 전 지역의 대형유통기업 등에 대해 51개 품목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특정품목 판매제한 권고」정책의 내용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힘.
----------
한달 전 발표는 "정책 입안 과정에서 진행한 연구용역 결과로 확정한 바 없"는데 "모든 마트 등에 적용되는 것으로 비춰져 유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는 판매제한 권고 정책이 적용되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대단히 까다롭습니다.
'신규출점(또는 확장)'이기에 기존 대형마트나 SSM에는 해당 안됩니다. 또 '기존 상권과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이기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거나 당사자간 합의가 이뤄지면 해당되지 않습니다.
이런 설명을 하면서 서울시가 제시한 예는 합정 홈플러스와 광명 코스트코입니다. 합정 홈플러스의 경우 지난 2월 말 중소기업청의 중재로 홈플러스 측과 주변 시장 상인들과의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15개 품목은 오징어·떡볶이·석류·알타리·아귀·코다리·임연수·국거리 한우·우족·소등뼈 등입니다.
이 품목을 홈플러스에서 판매하지 않아 인근 망원시장 등에서 보는 이익이 어느 정도인지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그 합의과정이 참으로 지난했습니다. 2011년 말 합정 홈플러스 입점 계획이 알려졌고 인근 상인들은 1년 넘는 기간 동안 다섯 차례 철시와 천막농성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15개 품목 판매 제한이라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광명 코스트코와 인근 상인들도 6개월 동안 갈등을 빚은 끝에 6개 품목 판매 제한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례는 서울시의 판매제한 권고가 적용될 수 있는 경우가 아닙니다. "신규 출점으로 인한 분쟁이 발생"하긴 했지만 "당사자간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서울시의 조건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1년 동안 분쟁을 겪은 합정 홈플러스 사례도 해당하지 않는다면 과연 서울시 권고가 적용될 수 있는 사례는 얼마나 될까요? 이렇게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서울시의 판매제한 권고가 가능하다는 한 상황인데 이 까다로운 조건에 대해서는 왜 그동안엔, 한 달 전 발표 당시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을까요?
박원순 시장은 이 문제와 관련해 "처음부터 확정되지도 않은 걸 가지고 언론이 야단한 겁니다. 여론 수렴해 하겠습니다"라고 트위터에 적었습니다.(3/31)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서울시도 51개 품목 발표를 통해 일종의 간을 본 뒤 '명확한 입장'을 정한 것 아닌가요. 품목 선정 당시엔 서울시 입장이 아직 불명확했던 것이겠죠. 그런 게 아니었다면 확정되지 않은 걸 발표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래놓고 '혼란의 책임은 언론'이라는 식으로 떠넘기는 건 좀 이상합니다.
결국 서울시는 여론 수렴을 통해 판매제한을 아주 제한적으로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골목상권 보호, 이해관계 조정해 적절한 해법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서울시가 다음 발표에서는 이해관계자와 충분히 논의하고 협의해 적절한 상생방안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