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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를 사고의 공포

낙석, 봄철 산행의 복병

[취재파일] 언제 어디서 덮칠지 모를 사고의 공포
봄이 찾아오는 요즘 설악산은 온통 무채색 풍경이다. 고지대나 응달에 남아있는 잔설을 제외하면 겨울철 온 산을 뒤덮었던 흰 눈은 대부분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를 채워야할 초록의 새순과 새싹은 아직 움트지 못한 과도기의 모습 말이다. 생강나무, 목련 같은 몇몇 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렸지만 크게 본다면 아직 설악산은 거대한 수채화에서 초록, 빨강, 노랑 빛깔의 채색이 빠진 밑그림 상태에 가깝다.

겨울의 설경,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이런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겠지만 그렇다고 이 시기의 설악산에 전혀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봄을 부르는 계곡의 물소리, 새싹을 움틔우는 수목의 미세한 떨림, 여름에는 무성한 초목에 겨울에는 흰 눈에 가려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 기암괴석의 웅장함은 이 시기에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탐방객 수도 줄어 여느 계절보다 호젓한 분위기에서 구석구석까지 들여다보고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이것이 요즘 같은 때에도 설악산에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이런 한가로운 운치 이면에는 아찔한 사고 위험이 함께 도사리고 있다. 바로 낙석이다. 높은 산꼭대기와 절벽에서 돌과 바위가 자주 떨어지는 시기가 바로 봄이 찾아오는 요즘 같은 시기이다. 눈과 얼음 녹은 물이 바위나 돌 틈으로 스며들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바위를 수축 팽창시키는데,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바위의 작은 틈을 점점 키우게 된다.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만큼 틈이 커지면 바위가 갈라지거나 미세한 무게중심의 이동으로 돌이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철 안전사고가 어느 정도 사전 예측이 가능하다면 낙석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사고 위험 때문에 국립공원의 안전관리 요원들은 요즘과 같은 시기에도 한가로이 쉬지 못하고 공원 내 절벽을 누비고 다닌다. 사전에 위험 요소를 발견해 제거하기 위해서다. 바위틈으로 물이 스며드는 곳 위주로 위험해 보이는 바위는 혹시 없는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돌멩이는 없는지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가파른 절벽 위를 샅샅이 누비고 다닌다. 위험한 바위와 돌을 발견하면 현장에서 바로 제거한다. 아래로 굴려버린 돌과 바위는 수십 미터씩 아래로 떨어지면서 몇 조각으로 나뉘어져 탐방로 시설물을 덮치거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튕겨가기도 한다.

크기가 수십 센티미터의 그리 크지 않은 돌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위치에너지 때문에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다. 두꺼운 철조망이 힘없이 찢어지게 만들고 철제 난간도 부셔버린다. 만약 이 돌과 바위가 등산객 머리 위로 떨어졌다면 치명적인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런 낙석 사고는 해마다 끊이질 않고 있다. 다행히 대부분 탐방객이 없는 시간대에 발생해 국립공원 내에서 최근 몇 년 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탐방로의 시설물이 훼손되는 크고 작은 낙석 사고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만약 탐방객이 지나는 그 시각 돌이 떨어졌다면? 상상하기조차 싫겠지만 끔찍한 인명사고가 났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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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는 이런 낙석 위험 구간이 10곳이다. 전국의 국립공원 전체로 범위를 넓혀 보면 153곳의 급경사지가 존재한다. 이 가운데 57곳이 낙석 위험 구간으로 지정돼 공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 단순히 수치만 봐서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방심하면 오산이다. 낙석 위험 구간 하나 하나의 길이가 작게는 수km에서 많게는 10여 km에 달하기 때문이다. 설악산의 경우 소공원 비선대에서 대청봉을 지나 다시 오색골로 이어지는 구간을 하나의 낙석위험구간으로 잡아 놨는데, 이 구간의 길이가 무려 14km를 넘는다. 때문에 설악산에서의 낙석 위험 구간은 단순히 10곳이 아니라 거의 모든 구간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이런 낙석의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중장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올해 4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가장 시급하게 정비가 필요한 20개 구간에 대해 정비 사업을 벌이고 있다. 또 153곳의 급경사지에 대해서는 용역을 시행중인데, 오는 2017년까지 전체 위험지역의 80%까지 위험 요소를 제거해 나간다는 게 공단의 계획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실제 사업을 추진하다가 보면 예상치 못한 더 많은 위험요소가 발견될 수 있고, 그에 따른 비용과 시간도 크게 증가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정비 계획은 국립공원에만 해당될 뿐, 각 지자체가 관리하는 도립공원과 관리주체가 아예 없는 여느 평범한 산에서는 낙석 위험 조사와 위험 관리가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낙석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고, 사고에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는데다 피해는 아주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여느 사고 보다 더욱 공포스럽다. 때문에 낙석 사고는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줄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우선 산행의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선 요즘과 같은 해빙기와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 또 강풍이 부는 날에는 낙석 위험이 아주 크기 때문에 산행을 자제해야 한다. 해빙기와 집중호우 때는 그렇다 치더라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왜일까? ‘돌의 무게가 얼마인데 바람이 낙석을 일으킬까’ 생각하겠지만 전문가들 생각은 다르다. 강하게 부는 바람이 돌을 직접 움직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나무에 의한 영향 때문이다. 바람이 나무를 심하게 흔들면 나무의 줄기와 뿌리에 걸려 있던 돌과 바위도 함께 흔들려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산행할 때 탐방로 선택과 산행 습관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급적 암석이 길게 늘어져 있는 구간은 피하고, 특히 더 좋은 경치를 보기위해 정해진 정규 탐방로를 벗어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규 탐방로는 국립공원 직원들이 수시로 위험성을 모니터하고 안전시설물을 보강하지만 비정규 탐방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너무 주변 경관에 푹 빠져 구경에만 몰입하지 말고 주기적으로 주변을 살피며 이동하는 습관도 중요하다고 한다.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수많은 우리의 아름다운 산들을 오늘 하루만 보고 말 것도 아닌데 조급할 필요도, 과하게 욕심을 부릴 이유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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