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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타크래프트 2 통합 리그', 한국 게임시장엔 독(毒)?

[취재파일] '스타크래프트 2 통합 리그', 한국 게임시장엔 독(毒)?
지난주 게임업계 최대의 화두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2(이하 '스타2') 전세계 통합리그, 즉 스타2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 출범이었습니다.

블리자드의 마이크 모하임 CEO가 직접 한국으로 건너와서 협회, 중계방송사 관계자들과 함께 발표한 스타2 월드 챔피언십 시리즈는 그동안 세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됐던 스타2 리그를 한국·미주·유럽의 3대 지역 리그로 통합해 분기별 리그를 개최하고, 연말 블리자드 컨퍼런스에서 각 리그 상위 게이머가 통합 챔피언을 가리는 방식입니다. 블리자드는 새로 만들어진 통합 리그 체계 속에서 글로벌 랭킹 시스템을 운영하고, 각 지역의 중계방송사, 게임협회와의 협력을 통해 리그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블리자드의 스타2 통합리그 출범은 그동안 저작권 문제 등으로 전작인 스타크래프트1 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했던 스타2를 다시 살려 보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세계 게이머들이 모여드는 배틀넷(Battle.net)을 운영하고 있다는 일종의 '자존심'도 상당 부분 반영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게임 퍼블리셔가 직접 나서서 e스포츠 대회 시스템을 개편하는 현상에 대해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화려한 스타2 통합리그의 이면에 자리한 업계 각 구성원의 걱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스타크래프트 1 프로리그의 고속 성장으로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로 게임단과 프로 게이머가 활동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그동안 자유롭게 세계 대회와 국내 대회에 출전해 왔습니다. 그러나 새로 출범한 통합리그 체제 하에서는 한국/미주/유럽 가운데 한 곳의 리그를 선택해 출전해야 합니다. 또 통합 리그로 인해 기존의 자생적인 대회가 많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출전 기회의 총량에서는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GSL(글로벌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출전하다가 중도 탈락하면 일정이 맞는 3~4일짜리 해외 대회에 나가 입상할 기회가 있었지만 통합 리그에서는 해외 대회도 같은 일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출전 기회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거대 기업의 스폰서십을 받아 재정이 든든한 팀은 괜찮지만, 영세한 프로팀들은 출전기회가 곧 수입과 연결되기 때문에 선수들 연봉을 제대로 주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또 대회 주최사들의 경우, 그동안 해외 대회들의 흥행 여부는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한국 선수들을 얼마나 유치하느냐에 따라 결정됐는데 우수한 한국 선수들이 한 지역 리그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면 남은 리그는 스타플레이어 없이 운영해야 합니다. 유럽의 경우 비교적 자체적으로 선수 수급이 가능하지만 미주의 경우 선수의 '풀'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이런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 리그 자체의 인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입니다. 물론 인기있는 한국 선수들을 자기 지역으로 유치하려고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몇 달씩 해외에 머물면서 리그에 참여할 한국 선수는 극소수일테니 그만큼 관심과 인기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죠. 블리자드는 이 문제에 대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회사의 의도대로 해당 지역에서 선수의 기량과 스타성이 올라가 한국 선수들의 공백을 메꿔줄 수 있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거라는 게 업계의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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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가 만들어 낸 '세계 공통리그'는 선례가 있습니다. 바로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LOL)'의 라이엇게임즈가 만들어 낸, 철저히 게임사 중심의 통제된 e스포츠 시스템입니다. 스타2의 인기가 주춤한 틈을 타 급성장한 라이엇게임즈의 모델을 블리자드가 참고해서 다시 재기를 노리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이래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즉 게임사 중심의 e스포츠 리그가 시장에서 절대 권력을 잡고 주도적으로 리그 운영을 이끌게 되면 게임사의 투자와 관심이 지속되는 기간-이른바 '잘 나갈 때'-은 괜찮겠지만, 나중에라도 회사의 지원이 달리거나 더이상 e스포츠 리그 운영을 통한 마케팅에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뒤에는 게임 하나 뿐만 아니라 해당 종목의 리그 전체가 사상누각처럼 무너져 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려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게임 외적인 자본과 권력의 이동이 '게이머의 즐거움'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스타1의 인기를 이어보겠다며 야심차게 시장에 나왔던 스타2가 화려한 게임성과 향상된 그래픽에도 불구하고 초기 시장에서 외면받은 건, 게임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게이머들의 뜻과는 다르게 시장이 저작권과 중계 문제로 시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외부 요인'이 판을 흔들면 판을 지탱하는 게이머는 미련없이 다른 게임으로 눈을 돌린다는 교훈, 블리자드는 물론 게임업계 전부가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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