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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년 만에 밝혀진 두 몽골 여성의 의로운 죽음

[취재파일] 2년 만에 밝혀진 두 몽골 여성의 의로운 죽음
2011년 7월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의 무서움을 알게 된 때로 기억됩니다. 사회부 막내기자로 수해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하늘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는 폭우에 우산을 드는 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잠기고 떠내려가고 무너진 곳을 찾아 돌아다녔지요. 하루 종일 흠뻑 젖은 채로 생활하던 그때 대형 사고가 났습니다. 서울 우면산이 무너져 내렸지요.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늘어난 사상자 수는 어느덧 16명으로 불어났습니다. 불은 태워 없애지만 물은 모든 걸 집어 삼켜 피해를 남긴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우면산이 무너진 7월 27일, 경기 광주 곤지암에서 두 명의 몽골 여성이 숨졌습니다. 서울의 중심 강남에서 일어난 우면산 사태로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했지요. 두 여성은 거센 물살에 휩쓸려 입은 옷이 다 벗겨진 채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결혼한 어머니를 따라 지난 2007년 한국에 온 18살 오강거 양과 이모 32살 다와 씨입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던 그날, 이웃집 할머니가 오강거 양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집 바로 뒤 배수관에 장판이 끼어 집 안으로 물이 흘러 넘치는데 다른 이웃들은 각자 자기 집 피해를 처리하느라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하며 “제발 좀 장판을 빼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몽골 출신이라 물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두 여성은 그렇게 할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30분 뒤 두 여성은 1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이 지난 뒤 마을 이장이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의사자로 지정돼야 한다”고 유가족에게 말했습니다. 남을 돕다 희생된 두 몽골 여성의 의로운 죽음을 누군가는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의사자 심사를 위해 보건복지부가 실태조사를 나왔을 때 일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가 “도와달라고 한 건 사실이지만 장판을 끝내 못 빼내고 두 여성이 집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진술한 것이지요. 경찰 조사 때만 해도 할머니는 “이들이 장판을 빼고 있는 사이 자신은 앞마당을 정리하고 있어서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진술이 바뀐 것입니다.

보건복지부는 “두 몽골 여성이 할머니를 적극적으로 도우려 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의사자 신청에서 두 여성을 탈락시켰습니다. 유가족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됐지요. 화물차 기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일도 제대로 못하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내고 복지부에 항의도 했습니다. 번번이 실패했지요. 어머니의 눈물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울고 자다가 깨어나서 울었습니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20만원의 좁은 집에서는 숨진 딸의 흔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아예 인근의 다른 빌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의로운 죽음은 외로운 죽음이 돼 1년이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숨진 두 몽골 여성과 할머니만 알고 있던 그 날의 행적을 지켜본 목격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32살 다와 씨의 신발이 할머니 집에 있었던 걸 본 겁니다. 할머니는 “둘이 집으로 돌아가는 걸 봤다”고 말했지만 목격자는 “이들의 신발이 할머니 집에 그대로 남아있던 걸 봤다”고 한 것이지요. 아버지는 목격자의 증언을 토대로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의사자 지정 심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금요일, 1년 9개월 만에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진술이 경찰 조사 때와 달라졌고, 목격자의 증언대로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장판을 빼내려다 물살에 휩쓸려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어미니는 2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딸이 입던 옷과 노트, 사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업을 위해 2살, 4살 된 자식과 한국에 들어왔다 변을 당한 동생의 사진도 보관하고 있었지요. 한국말이 서툰 어머니는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소중한 딸과 동생의 의로운 죽음이 언젠가는 세상에 알려질 거란 믿음을 가지고 버텨왔던 겁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통과해 이제는 대학에 가 디자이너의 꿈을 펼치려 했던 10대 소녀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제2의 인생을 희망한 30대 주부. 이 두 의로운 여성은 현재 고국인 몽골에 안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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