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열차 안에서도 휴대폰 빵빵 터지니 여기저기서 통화하느라 난리다. 그다지 중요하거나 급한 용무도 아니다. 만일 입담 좋은 아주머니가 옆에서 통화라도 하게 되면 이건 완전 '멘붕'이다. 지난 가을 나는 김치 담는 법을 지하철에서 배웠다. 젊은 친구들은 와이파이 덕분에 게임을 하는 지, 카톡을 하는 지 출입구 막고 서서 '폰질 삼매경'이다. 당연히 내릴줄 알고 뒤에 서서 넋놓고 있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퇴근길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늦은 시간 지하철은 취객들의 놀이터다. 애 어른 할 것 없다.
시간이 약이라고 이 정도는 이제 익숙해졌다. 아직도 적응이 안되는 것은 지하철 내 '가방폭력'이다. 가방은 원래 손에 들거나 어깨에 메는 물건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등짝에 짊어지는 도구다. 그리고 그것은 무기다. 시위대 진압할 때 방패가 무기인 것처럼, 만원 지하철에서 등에 짊어진 가방은 방패 대용이다. 입구부터 뒤로 돌아서서 밀어붙이는 건 예사다. 키 작은 사람은 늘 가방 사이에 얼굴이 끼이기 일쑤다. 자기가 멘 가방 때문에 뒷사람이 아무리 불편해도 도무지 내려 놓을 줄 모르니 선반은 늘 텅텅 비어있다. 불쾌한 내색이라도 하면 물정 모르는 한심한 놈이 되고 만다.
도쿄 지하철은 아무리 북새통이라 해도 자기가 내려야 하는 역을 지나치는 일은 없다. 매역마다 출입구쪽 사람들이 내렸다 다시 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내리는 사람에 떠밀리지 않으려고 악다구니 쓰는 것은 상상 조차 하기 힘들다. 가방 같은 물건을 선반에 올리는 것도 기본 예의다. 상대방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우리나라에선 이른바 007 가방으로 불리는 브리프 케이스가 유행이었다. 하지만 일본에선 그런 가방을 드는 것 자체가 예의없는 행동이었다. 각진 모서리가 만원 지하철에서 민폐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지하철 안에서 전화 통화는 생각할 수 도 없을 뿐더러, 심지어 노약자석 근처에선 전원을 끄도록 하고 있다. 심장박동기를 찬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일본 지하철은 차량의 크기가 우리 보다 작다. 시설 면에서도 훨씬 열악하다. 하지만 예의와 배려가 있어 일상에 지친 서민들에게 나름의 휴식처가 된다. 반면 우리는 하루의 고단함에 짜증까지 가중되는 곳이어서 서글프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모두 알아주길 바라는 내가 이기적인걸까? 아무 말 하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이 무심한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