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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22억 짜리 공사, '단가 후려치면' 2억 8천만 원으로

[취재파일] 22억 짜리 공사, '단가 후려치면' 2억 8천만 원으로
단가 후려치기, 어음결제… 일부 대기업들이 중소 하청업체에게 자주 써먹는 방법이죠.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를 비롯해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의 불공정관행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부분도 있습니다. 바로 중소기업간의 불공정관행입니다.

중소기업하면 일단 피해자라는 느낌이 강하죠. 하지만 그 속에서도 더 큰 중소기업과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기업간 갑을관계가 존재합니다. 아니 오히려, 하도급 분쟁조정위에 접수된 불공정 거래의 80%는 중소기업간 분쟁일 정도로, 대기업보다 불공정 관행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중소기업간 갑을관계에 대해서 풀어보려 합니다.

제가 찾아간 중소기업 C사는 부두 항만 시설이나, 배 부품을 만드는 영세한 회사입니다. 지난해말 전남 여수산단 부두의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었습니다. 이 컨베이어 벨트 공사를 처음 수주한 곳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입니다. 이후 4단계에 걸쳐 재하청이 이뤄졌는데 편의상 1차 하청업체를 A사, 2차 하청업체를 B사, 3차 하청업체를 C사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대기업은 22억여원에 공사를 수주했습니다. 직접 공사를 안하고 협력업체인 A사에 7억원에 공사를 맡겼는데요, 당초 A사는 이 공사를 C사에 맡기기로 약속했다가 중간에 계획을 바꿔 B사에 6억원에 맡겨버렸습니다. 이른바 '닭 쫓던 개' 형국이 되버린 C사는 항의를 했고, A사의 중재로 겨우 B사로부터 재하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주한 공사대금은 2억 8천만원, 대기업에서 A사를 거쳐, B사, C사까지 가는 동안 공사대금은 22억원이 2억 8천만원이 됐습니다. 전형적인 '단가 후려치기'가 이뤄진 거죠. 매우 적은 금액이었지만, 아예 공사를 수주 못할 뻔한 위기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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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였습니다. 컨베이어 벨트 설계 도면을 전달받아 공사에 들어갔는데 설계 치수가 제대로 맞지 않은 겁니다. 결국 원료가 되는 철강을 버리고 다시 사오기를 반복하면서 2억원 정도 추가 공사대금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고민에 빠진 C사에 하청을 준 A사 관계자는 "일단 공사만 마무리해라. 추가대금은 모두 보전해주겠다"라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추가대금은 8천만원 정도 밖에 받지 못했고, 1억2천만원은 보전받지 못했습니다. 이후 A사는 거의 연락이 두절되버렸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C사는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못주는 바람에 부도 위기에 빠졌습니다. 130여명에 달했던 직원들은 다 뿔뿔이 흩어지고 4명만 남았다고 합니다.

원청업체인 A사는 무자비했습니다. 전화도 거의 받지 않았고, A사의 임원은 도리어 수주 당시 B사를 소개해준 소개비로 천만원을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 최초 원청업체인 모 대기업의 임원을 접대해야한다며 5백만원을 요구하기도 했답니다. 속된 말로 '등골을 빼먹었다'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기업보다 더 한 것 같습니다. 덩치 큰 중소기업이 작은 중소기업에 부린 횡포죠. 아무리 경쟁에,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하는 시장경제 사회라지만, 왜 중소기업끼리 이래야할까요? 서로 힘을 뭉쳐 상생하는 방안은 없을까요?

현재 해당 건은 C사의 제소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조사중입니다. 하루빨리 원만히 해결됐으면 합니다. 힘없는 영세업체라고 억울한 피해를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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