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인터뷰는 끝끝내 사양했습니다. 남아 있는 농가들을 생각하면, 잠깐 창피하더라도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이 한사코 말렸습니다. 무슨 자랑거리도 아니고, 서울에 남은 친구들은 귀촌해 잘 사는 줄로만 아는데 전국 방송이 웬 말이냐고 했습니다.
남들은 남은 돼지 팔아 야반도주라도 하지 그랬냐고들 합니다. 농장까지 경매에 들어가 빚잔치를 하고 나면 제 수중에는 돈이 얼마 안 남을 겁니다. 하다못해 몇 천만 원이라도 있어야 구멍가게라도 하지, 왜 그렇게 앉아서 당하고만 있느냐며 원망 아닌 원망을 합니다. 하지만 묵묵히 돼지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듯, 정리할 때도 묵묵히 다 감내하려 합니다.>
정식 인터뷰는 아니었지만, 텅 빈 돈사 앞에서 잠시나마 얘기를 나눈 농장 주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였습니다. 제가 감히 그 분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마는, 사실 위주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보면 위와 같은 내용일 거라 짐작됩니다.
다 키워서 출하를 하면 마리당 10만 원의 손해를 봤습니다. 2년마다 한번 씩 으레 겪는 파동이려니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너무 길었습니다. 결국 돼지는 외상값이 3억 원이 넘는 사료 회사에 헐값에 넘기고, 농장은 경매 처분하기로 했습니다. 고철이라도 팔기 위해 돈사 내부는 쇠붙이를 뜯어내는 작업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20년 넘게 돼지를 키운다는 대한한돈협회 전병열 거창 지부장도 이렇게 장기간 돼지 값이 반등을 못 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아직도 회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대한한돈협회는 이 상태로 가다가는 3개월 안에 전국 양돈농가의 80%가 도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료 회사에서 주는 외상 한도는 이미 넘어선 지 오래고, 지금은 말 그대로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돈을 빌려서 사료 값을 막아내고 있다는 겁니다. 3개월 안에 돼지 값이 반등하지 않으면, 대부분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거라는 예상입니다.
현명하다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남은 돼지를 모두 처분하고 잠정 폐업하는 농가도 늘고 있습니다. 어차피 키워서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한다면 당분간 돼지를 키우지 않겠다는 겁니다. 사료 값 입금이 늦어져 사료 공급이 한 때 끊긴 경험을 했다는 농민은 돼지들을 굶겨 죽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돼지를 모두 처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상황이 그만큼 절박한 겁니다.
단순 계산으로도 13% 가량 생산량이 늘어난 건데, 그 뿐 아니라 구제역 파동 직후 크게 늘어났던 수입 물량도 그 당시 증가세만큼 줄어들지 않았다는 게 문제입니다. 구제역 때문에 우리 돼지의 수출 길은 막혔고, 한 번 늘어났던 수입 물량과 수입산에 대한 소비는 줄지 않자 우리 돼지에 대한 소비마저 예전만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어미 돼지의 생산성 향상이라는 것도 구제역 때 매몰처분을 하거나 운 좋게 영향을 받지 않아 마련한 돈으로 축사 환경을 개선한 데서 비롯됐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 때만 해도 금겹살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농가에서는 급격히 두수를 늘려왔고, 적정한 선에서 브레이크를 잡지 못 한 겁니다. 물론 시장에 맞기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구제역 때는 관세 인하까지 해가며 수입 물량을 급히 들여온 정부가 이런 부작용은 예상하지 못한 채, 지금은 결국 공급량을 줄이는 방법 밖에 없다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먹을 수는 없겠지만, 오늘 저녁 돼지고기 보쌈 어떠신지요? 가급적 삼겹살 보다는 다릿살 처럼 삼겹살에 비해 비선호 부위로 분류되는 고기를 드셔주세요. 공급이 늘어난 만큼까지는 아니어도, 소비가 어느 정도 받쳐주면 우리 돼지 농가가 조금 덜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줄도산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제 기사가 틀려도 좋으니, 농민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기를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