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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감정 싸움만 하다 무산된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취재파일] 감정 싸움만 하다 무산된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파행을 겪고 있습니다. 북한의 위협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정부조직개편 협상이 어렵사리 타결돼 여야의 갈등 요소는 감소했고 남내준 내정자 본인이 비교적 청렴한 군인 출신이어서 수월하게 청문회가 끝날 것이란 예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남 내정자 인사 청문회는 새 정부 인사청문회 중 중도에 파행을 겪은 첫 사례가 됐습니다.

남 내정자 인사청문회는 어제(18일) 오전 10시부터 공개로 시작돼 여야 의원들은 내정자의 개인신상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청문회가 시작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습니다. 시작한 지 30분정도 지났을 무렵 네번째 질의자인 민주통합당 김현 의원이 남 내정자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사단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남 내정자가 과거에 제주도 4.3 사건을 무장폭동 반란으로 규정한 적이 있지 않느냐, 또 전교조를 친북좌파세력으로 통칭하지 않았는냐고 질의했고 그러자 이 발언에 대해 진행을 맡고 있는 서상기 국회정보위원장(새누리당)이 다음과 같이 제한한 것입니다.

서상기:도덕성하고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도덕성과 개인신상에 관한 것만 질의하세요. (자꾸 이러면) 어쨌든 간에 약속대로 정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현:아니 위원장님 이것은 강연료를 받은 강연에서 한 이야기를, 인터넷에 떠있는 것을 물어봤는데 이게 신상에 관한 것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서상기:도덕성하고 신상정보하고 관계 없는겁니다.
(다른 의원이) 그것을 왜 위원장이 판단합니까?
서상기:그것은 위원장이 판단할 일입니다.
(다른 의원이)국회 의원의 발언을 사전 검열하겠다는 겁니까?
서상기:국회의원이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겁니까? 합의했잖아요?
유인태:위원장 지금 뭐하는 거야?
서상기:어디다 대고 소리치는거야?
유인태:뭐하는거야 위원장!
김현:아니 위원장님 이거는 2008년도에...
서상기:도덕성 관련된 것만 하세요. 개인 신상에 대한 것만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정회 선포하겠습니다.
김현:내참...정회하세요 그럼.
서상기:정회를 선포합니다. 땅땅땅.

사흘전인 지난 15일 여야 의원들은 정보위 전체회의를 열어 어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공개 청문회를 열어 남 내정자의 도덕성을 비롯한 신상 문제를, 4시 이후에는 국정원장 내정자이니만큼 비공개로 정책 분야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한 바 있긴 합니다. 그런데 어떤 내용이 '도덕성과 개인 신상'에 관한 질의인지, 여야 의원들이 완전히 다르게 판단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상이한 잣대를 가진 여야 의원들이 청문회 시작부터 감정 싸움을 벌인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당시 녹취를 자세히 풀었습니다. 대체로 청문회 당사자와 야당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는 것이 국회 인사청문회인데 어제 인사청문회는 드물게 진행자와 야당 의원들이 감정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됐습니다. 가뜩이나 야당 의원들은 사전에 요청했던 자료를 남 내정자가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작심을 하고 인사청문회에 임했는데 여기다가 진행자인 정보위원장까지 질의 내용을 문제삼으며 지적을 하니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것입니다. 감정이 격해지면서 결국 민주당 유인태 의원은 청문회 도중 퇴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오후에까지 이어져 야당 의원들은 남 내정자가 제출한 자료가 미비하다고 집중적으로 문제 삼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후 4시부터 열기로 했던 남 내정자에 대한 비공개 청문회는 50분 정도 '자료 제출'에 대해 여야가 옥신각신하다가 5시 20분에 정회되고 말았습니다. 일단 저녁 8시에 속개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은 내렸지만 막상 8시가 되고 나니 여야의원들은 '제출된 자료가 미비하다' '이 정도 제출했으면 충분하지 않느냐'며 다시 공방을 벌였습니다. 여야 간사들은 협의를 통해 밤 늦게라도 청문회를 열어보려고 했지만 양측의 대립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밤 10시 쯤 결국 청문회 파행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남 내정자는 저녁 8시부터 혼자 멍하니 청문회장에 앉아 있었고, 귀에 무전기를 착용한 국정원 직원 수십명이 그 앞을 서성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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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브리핑을 통해 청문회 파행 이유로 청문회 대상자의 자료 제출을 핑계 삼지만, 가까이서 취재한 바로는 청문회 진행자(여당 의원)와 야당 의원들의 감정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여당 의원은 도덕성과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만 하라고 훈계하듯 지적했고, 야당 의원들은 어디 감히 국회의원의 발언을 검열하냐며 제출 자료를 꼬투리 잡았던 것이 국정원장 내정자 인사청문회 파행의 근본 원인이었습니다. 문제는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질 법한 이런 대립의 피해를 결국 국민들이 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당초 오늘(19일) 채택하기로 했던 청문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고 그만큼 국정원장의 임명이 늦어지기 때문입니다. 핵실험 이후 갈수록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이때에, 국정원장의 공석이 길어질수록 안보 불안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여론을 인식한 여야는 오는 6월까지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해 청문회 제도를 손질하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의 구태는 이번 국정원장 내정자 인사청문회에서 반복됐습니다. 앞으로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권력기관장의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뒤이은 인사청문회는 여야가 감정싸움에 휘둘리지 않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이들이 진정 국민을 위한 인물인지 확인하고 검증하는 그런 청문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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