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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사받던 수갑사건 미군 슬그머니 출국

대한민국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소파'

[취재파일] 수사받던 수갑사건 미군 슬그머니 출국
 지난해 7월,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미군이 민간인에게 강제로 수갑을 채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현장의 생생한 모습이 담긴 SBS의 보도가 나간 이후 미군은 다음날 즉각 공식 사과했습니다. 미 7공군 사령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고, 주한민군 사령관도 성명을 통해 사과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강한의지를 보였습니다. SBS보도 다음 날 당시 소파 합동위원회 우리측 위원장인 이백순 외통부 북미국장이 미측 위원장인 잔 마크 주아스 주한 미군 부사령관을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여 항의 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한미 양군은 SOFA 합동위원회 산하 법집행 분과위원회에서 미군의 영외순찰 문제 개서방안 협의하기도 했습니다.  

 뭔가 달라질 것만 같았습니다. 미군 범죄에 대한 미온적 처벌에 대해 이번에는 좀 다른 결과가 나울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분주한 움직임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아쉬움만 남습니다. 경찰은 미 헌병 7명을 '불법체포죄'를 적용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검찰은 이 사건을 넘겨 받은 지 7개월동안 기소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수사를 받고 있는 미 헌병 7명 중 일부가 '피의자'신분임에도 한국을 떠나버렸습니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한민국 법 울타리에서 슬그머니 몸을 빼버린 겁니다.

 이들은 한국 복무기간이 끝나거나 아내 병 간호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한국을 떠났습니다. 우리나라 군 관계자는 우리나라 군인은 수사중이면 전역과 전출 등 모든 인사조치가 중지된다고 합니다. 미군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아니면 외국에 주둔하고 있는 자국민에 대해서는 예외규정이라도 있는걸까요. 검찰 수사중인데도 단지 한국 복무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출국 시킨 미군의 행동은 실망스럽습니다. 미군에 부정적인 국내 여론이 들끓던 사건 발생 당시 신속하게 카메라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하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모습의 진정성이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미군은 미군 수갑 사건 당시 미 헌병 7명에 대해 '정직'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찰과 검찰의 소환에 응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미군이 말한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게 소환에 응하고 눈에 보이는 징계를 내리는 게 전부였던 건지 궁굼합니다. 미군 입장에서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자국민을 보호해야하는 명분만큼 최소한 '동반자'로서 우리나라의 법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법에 의해 조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의 출국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사건을 종결짓고 인사처리를 했어야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요. 과연 미국의 법은 이런 기본에 대해서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궁굼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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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우리정부는 뭘 했을까요. 검찰은 공식적으로 "출국 정지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확인서와 보증서를 받아 출국에 동의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수사중인 피의자라 할 지라도 죄에 경중에 따라 출국금지를 할 수 있고, 굳이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범죄가 확실히 규명되지도 않았는데 개인의 신분을 과도하게 구속하지 않는 게 법의 원칙이기 때문일겁니다. 그래서 언제든 국내 사법절차에 응하고 협조하겠다는 확인서와 보증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법률 전문가들은 이 확인서와 보증서는 의미가 없다고 선을 긋습니다. 확인서나 보증서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에 불과할 뿐이고 지키지 않았을 경우 아무런 강제조항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력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한국을 떠난 미군이 돌아올리 없다는 게 전반적인 의견입니다. 

 감정적인 부분은 접어두겠습니다. 냉정하게 따져보겠습니다. 우리 검찰이 미군들이 출국하는 과정에서 현행 법의 테두리 안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백번 양보해서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도 아쉽습니다. 의지가 없어 보여서 아쉽습니다. 물론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서 법을 따르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국민에게 피해를 주고 현행법을 어긴 혐의가 있는 미군들을 잡아놓고 우리가 처벌해 보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검찰은 7개월이나 이 사건을 잡고 있었지만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입니다. 물론 사건에 따라 수년동안 검찰이 수사를 해야 하는 사건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봤을 때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이 명확히 있고, CCTV와 현장에서 주민들이 찍은 생생한 증거 영상도 있습니다. 여러사람들의 진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복잡한 계좌를 추적해야 하는 사건도 아닙니다. 우리나라 경찰도 열심히 수사해서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습니다. 경찰의 수사가 많이 부족했을까요. 아니면 법을 잘 모르는 일반 시민들의 치기어린 투정일까요. 대체 왜 검찰은 7개월 동안 사건을 잡고서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까요. 

 이런 검찰의 모습을 놓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는 온갖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일부러 시간을 끈 건 아니냐, 이렇게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시간을 끌다가 피해자와 합의를 통해 기소유예로 사건을 마무리 하려는 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범죄내용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피해자와의 합의나 가해자의 반성여부 등을 판단해 검사가 기소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실제로 수갑사건 피해자인 양씨에게 미군측에서 합의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미군 범죄가 여러가지로 부담스러울 겁니다. 미군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잘 마무리하고 싶을 겁니다. 시간을 끌면서 여론을 잠재운 다음, 피해자와 합의하고 미 헌병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기소유예처분으로 사건을 종료하면 검찰과 미군, 모두 부담없는 결과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는 합의를 원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의 본질입니다. 피해자 양씨는 무기력한 현실에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국민을 향해 머리를 숙였던 미군은 정작 피해자인 양씨에게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습니다. 양씨를 찾아와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합의'라는 단어만 던지고선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책임있는 사람이 와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조차 없었습니다. 피해자인 양씨를 누가 보호해야 할까요. 누가 억울한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 줘야 할까요. 바로 우리나라 법입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을 어겼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게하는게 피해자인 양씨가 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 합니다. 그 현실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7개월동안 기소조차 못한 검찰의 탓으로만 돌릴까요. 아니면 미국의 눈치만 본다고 정부를 비판할까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소파'가 핵심입니다. 일단, 주한미군과 관련된 모든 일은 '소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양국간 합의를 통해 만들어진 조약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지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겠습니다. 이 전제하에 가장 중요한 건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부분이 있으면 양국이 조율해 바꿔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소파 규정들을 하나씩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미측의 피의자 신병 관리가 허술하여 피의자 도주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파에는 이와 관련된 규정이 없습니다. 미군은 통상 피의자의 여권을 압류하여 재판 종결시까지 출국할 수 없도록 하지만, 명문화가 돼 있지 않다보니 이번과 같이 피의자 신분임에도 자유롭게 한국을 떠날 수 있습니다. 소파 규정에 미군측의 출석보장 의무규정이 마련된다면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한국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우리 검찰도 이 규정을 근거로 출국금지 사유가 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출국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근거'가 필요한 겁니다.

 다음으로는 소파에는 공무수행중에 일어난 범죄에 대해서는 미군이 재판관할권을 가지도록 돼 있습니다. 재판관할권이란 범죄행위에 대해서 누가 누구의 법에 따라 수사를 하고 재판을 할 지 결정하는 권한입니다. 소파 제3항 (가) (2)에는 공무집행 중 작위 또는 부작위에 의한 범죄의 재판관할권을 행사할 1차적 권리를 미군이 갖는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결국 공무수행중이었다면 수사부터 재판까지 미군이 처리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수갑 사건에 있어서 미 헌병 7명은 경찰 수사에서는 '공무수행'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보다는 진술거부권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는 '공무수행'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결국, 공무수행중임을 강조하면서 검찰을 괴롭혔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군들이 공무수행을 강조하면 우리 검찰의 기소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앞서 설명드렸듯이 소파에 따르면 공무수행이면 재판관할권이 미군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미 헌병들이 주장하는 공무수행에 대한 최종 판단은 우리 법관이 아니라 미군 장성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파 합의의사록 제3항 (가)에는 미군 장성이 발급한 공무증명서가 1차적 재판관할권을 결정하기 위한 사실의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규정돼 있고, 소파 양해사항 제3항 (가)에는 공무증명서는 미군 장성급 장료만이 발급할 권한이 있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우리 검찰이 미 헌병들을 기소해도 미군이 공무수행증명서를 발급해 버리면 이 문제는 공무수행중에 발생한 일로 재판관할권이 다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 되는 겁니다. 물론, 그 이후에 우리나라가 미군에게 다시 재판관할권을 포기해 달라고 요청할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받아들여진 적이 없습니다. 

 미군이 공무수행을 주장하지 않더라도, 소파의 한계 때문에 우리가 재판을 하지 못할 가능성도 큰 게 현실입니다. 소파 합의의사록 제 3항에는 "대한민국은...합중국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재판권을 행사할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그리고 3항 (나)에는 "대한민국 당국은....특히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재판권을 행사할 1차적 권리를 포기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따라서 살인이나 성폭행, 마약 등의 중대한 범죄가 아닌 이상, 미측의 요청이 있을 경우 우리측이 재판관할권을 넘겨줘야 하는 부담을 항상 안고 있는 겁니다. 폭행죄나 교통범죄에 대해서는 우리측이 재판권을 포기하고 미군이 재판권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번 수갑 사건의 경우도 불법체포죄가 적용됐는데, 비난 여론은 뜨겁지만 정부나 검찰 입장에서는 강력범죄로 보고 우리가 재판하겠다고 계속 주장하기도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일본은 이런 재판권 포기 요청 규정 자체가 없습니다. 

 최근들어 주한 미군 범죄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더 거세지는 거 같습니다. 범죄에 대해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유독 주한 미군 범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는 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할 문제임은 자명합니다. 1960년대 한미 양국이 소파규정을 만들당시, 솔직히 우리나라 법체계와 치안상태 등 모든 것들이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렀고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치안, 사회적 의식 수준은 모두 미국 못지 않게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50년이 넘은 기준으로 만들어진 합의는 환경이 변했다면 변화된 환경에 따라 개정돼야 합니다. 그래야지 공감대가 형성됩니다. 그 공감대위에 항상 한미가 주창하는 '동반자'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까요. 우리 국민은 잘못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외없이 똑같이 기준과 조건으로 법에 따라 처벌을 받는 '기본'을 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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