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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발신번호 찍힌 전화 받아보니 '보이스피싱'

아들 발신번호 찍힌 전화 받아보니 '보이스피싱'
"아들을 데리고 있는데 5천만원 안보내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광주에 사는 이모(43·여)씨는 14일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경험을 했다.

직장에서 일하던 이씨의 휴대전화가 울린 것은 이날 오후 2시께였다.

이씨는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의 발신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지만 뜻밖에도 경상도 말투의 중년 남성 목소리를 듣게됐다.

"아들이 다쳤어요. 지금 같이 있으니 바꿔줄게요." "엄마 앞이 안보여." 놀란 이씨는 목소리가 낯설었지만 말을 제대로 못할 만큼 아들이 큰 사고라도 당한 것 아닌지 걱정이 앞서 의심할 겨를도 없었다.

그 순간 "울지 말고 똑바로 말해 XX야"라고 아이를 위협하는 소리도 들렸다.

이 남성은 곧바로 전화기를 넘겨받아 "아들을 데리고 있으니 5천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이씨는 시간을 벌 심산으로 "지금 시골에 있어 인터넷도, 은행도 이용하기 힘들고 가진 돈도 몇백만원 뿐"이라고 말하며 주변에 있는 지인에게 아들의 학교와 이름을 연필로 적어 확인을 부탁했다.

그 사이 협박범은 7분여간 승강이 끝에 "안되겠다. 죽이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씨의 아들은 학교에 무사히 있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협박에 넘어가지 않았지만 이씨는 찜찜함을 떨칠 수 없었다.

발신번호까지 아들 번호로 조작해 전화한 것으로 미뤄 이씨와 아들의 휴대전화 번호, 모자 관계인 사실을 협박범이 모두 파악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진화한 '보이스피싱'이 학교 안팎에서 잇따르고 있다.

이씨는 "아들의 담임교사와 통화했더니 지난해에도 똑같은 일을 겪었고 학교에서도 종종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며 "번호 조작은 할 수 있다 쳐도 가족 관계까지 알려졌다 생각하니 불안하다"고 말했다.

112 신고를 받은 경찰의 대응은 분통을 터뜨리게 했다.

이씨는 "지인을 통해 112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그럴 때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화를 받지 말라'고 했다더라"며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지 말라니 너무 무성의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이동통신의 한 관계자는 "발신번호 조작은 금지됐고 정상적으로 할 수 없지만 특정 장비 등을 이용하면 가능한 실정"이라며 "인터넷에 저장된 휴대전화 연락처를 해킹해 가족의 번호를 파악한 뒤 원하는 발신번호로 조작해 전화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광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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