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병헌은 국내 무대에서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데 만족하는 것과 할리우드라는 꿈의 공장에서 새로운 도전에 임하는 것 중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두 번째 할리우드 영화 '지아이조2'(감독 존추)를 완성했다.
2009년 제작된 '지아이조1'은 전 세계에서 3억 달러(약 3,295억 원)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게다가 '지아이조1'은 미국 블록버스터 중에서도 특이한 수익 비율을 보였다. 국외 시장에서의 수익이 자국의 수익을 능가한 것이다. 특히 아시아 시장 그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흥행성적이 높았다. 이는 영화 속 유일한 동양계 배우였던 이병헌의 인기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지아이조2'편은 아시아에서 이병헌이 확보한 입지를 반영한 듯 월드 프리미어 행사를 한국에서 열었다. 존추 감독을 비롯한 드웨인 존슨, 애드리안 팰리키, D.J. 코트로나 등의 출연진과 함께한 이병헌은 행사를 끌고 가며 호스트다운 면모를 보였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 응한 이병헌은 밝은 기운이 넘쳤다.
"두 번째 할리우드 영화지만, 여전히 신인에 가깝다. 그러나 이제 시스템 적인 면에서 아침 7시에 출근하고 저녁 7시에 퇴근하는 회사원 마인드는 좀 더 익숙해진 것 같다. 또 사람들하고 친숙하게 지내는 법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힘든 건 정해진 시간안에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야 'NG 몇 번 더 나는 게 뭐가 중요해. 좋은 연기를 펼치는 게 중요하지'라고 하겠지만, 촬영 지연 자체가 제작비 상승으로 직결되는 할리우드 환경은 다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촬영하다 보니 아직도 완전히 편안한 환경은 아니다"
이병헌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캐릭터 '스톰 쉐도우' 역할을 맡았다. 다소 평면적인 '지아이조2'의 캐릭터들 사이에서 '스톰 쉐도우'는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전편에서는 '스톰 쉐도우'의 존재감과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면 2편에서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의 근원이 밝혀진다. 극 안에서 중요 인물로 주목받으면서 이병헌이 역량을 발휘할 공간은 넓어지고, 분량도 많아졌다.
"1편에서는 대부분 복면이 많이 쓰고 등장해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는 데 있어 조금은 답답했다. 하지만 2편에서는 복면 없이 연기하는 신이 많아서 내 감정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어서 편했다. 내가 스톰 쉐도우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은 선과 악이 공종하는 캐릭터라는 점이었다. 그는 지아이조 군단과 코브라 군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시종일관 쿨함을 유지해왔다.
2편에서는 그를 지배하고 있던 트라우마의 근원이 드러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그 장면들에서 쌓여있던 한 같은 것이 울컥 해소되는 느낌으로 연기하고 싶었다. 감독과 제작진이 내 연기를 보더니 '그렇게 해석할지 몰랐다'고 하면서 굉장히 좋아하더라"
'스톰 쉐도우'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액션 스타로서의 이병헌의 진가도 제대로 드러났다. 이병헌은 이번 작품에서 정두홍 액션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충무로 최고의 무술 감독으로 통하는 정두홍 감독은 스턴트 더블로 이병헌의 액션을 담당했다.
"할리우드의 액션과 충무로의 액션 스타일은 아주 달랐다. '지아이조1'만 보더라도 딱딱 끊어지는 전형적인 동양 무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2편에서는 정두홍 감독의 색깔을 많이 투영해 지저분해보이지만 거칠고 역동성 넘치는 액션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다. 정두홍 감독이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직접 내면 월권으로 보일 수 있어 마치 내 아이디어인 것처럼 감독한테 제안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 감독의 아이디어를 할리우드 제작진이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이병헌은 한국 액션의 우수성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히어로라고 해도 싸우는 과정에서 맞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지 않나. 정두홍 감독 특유의 비틀기 액션은 그런 사실성을 잘 표현해줬다"면서 "영화 속에서 '스톰 쉐도우'가 칼을 연결해 싸우는 것도 정두홍 감독의 아이디어다. 정 감독은 액션이 화려한 것 보다는 그안에 감정을 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나도 그 부분에 중점을 둬 액션 연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병헌, 배두나 같은 배우들의 활약뿐만 아니라 박찬욱, 김지운 같은 충무로 일급 감독들도 할리우드에 데뷔작을 내놓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경우 과거 이병헌과 '공동경비구역 JSA'와 '달콤한 인생'을 찍으며 환상적인 앙상블을 선보인 바 있다. 세 사람은 동시기에 할리우드에서 각각의 영화 촬영에 임했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지아이조2'를 촬영하고 있을 무렵 박찬욱, 김지운 감독도 미국에서 촬영 중이었다. 촬영 틈틈이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신세 한탄을 했었다. 그러다 각자 촬영이 끝나고 LA에서 다 같이 만나 수다를 떨었다. 누가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중에 우리끼리 여기서 제대로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은 통했던 것 같다. 생소한 사람들하고만 일하다가 아는 사람들이 뭉쳐서 뭔가 하면 재밌기도 하고, 시너지도 날 것 같다"
'지아이조' 시리즈는 이병헌이 할리우드의 중심으로 가는 발판이 될 작품이다. 실제로 이 블록버스터는 액션스타로서의 이병헌의 가능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제 갓 할리우드에 얼굴을 알린 이병헌의 꿈은 "감독의 선택을 받는 처지가 아닌 스스로 작품을 선택하는 위치에 오르는 것"이다. 비록 현재는 전자의 위치에 있지만, 지금과 같은 열정과 패기가 있다면 그 꿈의 실현은 머지않아 보인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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