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표가 매진되기 직전까지 남아있다는 건 그만큼 사람들이 기피하는 자리라는 뜻이겠죠. 사람들이 기피한다는 건 그만큼 영화 관람환경이 열악하다는 의미일 테고요. 그런데 그런 자리밖에는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입니다.
지난 달, 취재를 위해 휠체어 장애인 두 명과 함께 서울 시내 영화관 몇 곳을 둘러봤습니다. 일단 영화관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더군요. 영화관까지 엘리베이터가 연결된 곳은 입장이 어렵지 않았지만, 이동하는 경로에 계단이라도 하나 있으면 여지없이 10분 넘게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비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춰진 매표소, 장애인이 들어갈 수 없는 화장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도 한 두 개가 아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표를 샀습니다. 매표소 직원은 장애인 관람석이 있다며 자신 있게 저희를 안내했습니다. 의자를 옮기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상영관 안에 들어가니 말이 달라졌습니다. 의자를 옮겨도 턱이 있어 진입할 수 없는 공간, 두 명 분 티켓을 사고 들어갔지만 휠체어 하나만으로도 꽉 차는 공간, 모두 유명무실한 장애인 관람석이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자리는 상영관 맨 앞 줄 가장자리에 있는 빈 공간에 한한 얘기였습니다.
제가 직접 맨 앞자리에 앉아 영화를 봤습니다. 잠깐만 앉아있어도 뒷목이 뻐근해지기 시작하더군요. 스크린과의 거리는 불과 다섯 걸음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아무리 쳐들어도 한 눈에 스크린이 다 들어오지 않는 가까운 거리. 뒷좌석은 텅텅 비어있었지만 장애인들은 그 곳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짧게는 한 시간 반에서 길게는 세 시간 넘게, 불편한 자세로 스크린을 코앞에 두고 영화를 봐야 하는 겁니다.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가 지난해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으로 전국 영화상영관 천 백여 곳을 조사한 결과, 장애인 관람석을 설치하지 않은 상영관이 전체 상영관의 21%에 달했습니다. 장애인 관람석을 설치했다 하더라도, 다섯 곳 중 네 곳은 스크린 가장 앞줄에 장애인석을 마련해 영화 관람이 실질적으로 어려운 실정입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가장 좋고 시야가 확보되는 위치에 장애인용 좌석을 설치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가장 나쁜 위치에 장애인석을 마련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석을 어디에 설치해야 할까요? 상영관 내 어느 좌석이든 접근 가능하도록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요구입니다. 장애인들이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진 않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관람환경을 갖춘 상태에서 어느 정도 선택의 다양성은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좌석 중간이나 뒤쪽에 장애인석을 마련하고 진입로를 만들면 되는겁니다. 실제로 이를 실천하는 상영관들도 있고 장애인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입니다.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서울시는 지난해 ‘장애인 최적관람석 설치·운영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장애인석을 좋은 위치에 설치하도록 의무화한 것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조례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공연장에 한해 적용됩니다. 민간 사업자에 대해서는 ‘권고’수준에 머물 뿐 강제적으로 이 조례를 적용할 수 없는 겁니다.
결국 민간 영화관들은 ‘비용’을 핑계로 장애인 관람 환경을 개선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높은 진입장벽으로 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영화 관람을 막고 있을 뿐이죠. 장애인들에겐 그저 입장료 할인만 해주면 된다는 시혜적인 마음. 보이지 않는 문턱에 오늘도 많은 장애인들이 상영관 앞에서 허무하게 휠체어를 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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