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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담뱃값 인상의 조건

[취재파일] 담뱃값 인상의 조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 담뱃값 인상 필요성이 제기됐다. 정부 관계자들도 일단은 긍정적인 입장이다. 담뱃값 인상은 역대 정권에서도 수차례 시도됐지만 그 때마다 번번히 실패했다. 표면상 이유는 물가 부담 때문이었지만 담뱃세가 갖는 역진성이 더 큰 문제였다.

담배 소비는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에서 더 많다. 따라서 담배 관련 세금이 오르면 저소득층의 부담이 그만큼 더 커진다. 더구나 담뱃세는 소득에 관계없이 제품에 일괄적으로 붙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게 더 불리하다.

담뱃값 오른 김에 담배 끊으면 건강에도 좋고 돈도 절약되지 않느냐고 말할 지 모르지만 그랬다가는 뺨맞기 십상이다. 건강 생각해 스스로 끊는다면 모를까 돈이 없어 강제로 끊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박탈감만 더 크게 만들 뿐이다.

실제로 이런 상대적 박탈감 때문인지 담뱃값을 인상할 때마다 여당은 번번히 선거에서 패했다. 물론 전적으로 담뱃값 인상 때문에 졌다고 할 순 없지만 담뱃값 인상이 서민들의 표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는 걸로 보인다.

◈ 담뱃값 인상 최적기?

담뱃값은 2004년 2천원(국산 기준)에서 2,500원으로 오른 뒤 9년째 동결된 상태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이제는 올릴 때가 됐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특히나 올해는 소규모 재보선을 제외하면 전국 단위의 대형 선거도 없는데다 지금은 정책 집행에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권 초반이다.

담뱃값 인상의 최적기인 셈이다.

문제는 정부와 국회, 언론, 시민단체 가운데 누가 여론을 설득하느냐다. 먼저 총대를 멘 건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최근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2,000원 올리는 내용의 지방세법과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진 뒤 김 의원은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고 할 만큼 강한 항의에 시달렸다고 한다. 물론 발끈한 건 대부분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이었다.)

정부에서는 세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보다 국민 건강을 책임진 보건복지부가 주도하고 있다. 같은 일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하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한 조치가 되지만 기재부가 하면 서민 손목 비틀어 세금 더 걷는 게 된다.

진영 복지장관 내정자는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주류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부과하는 방안에 대해 "개인적으로 무조건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문회에 앞서 제출한 서면답변에서 담뱃값 인상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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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뱃값 오르면 흡연율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담뱃값이 가장 싸다. 한갑에 2,500원이다. 반면 노르웨이는 15,000원이 넘어 무려 6배다. 호주와 영국도 10,000원이 넘고 독일이 7,000원, 미국이 6,000원, 일본이 4,000원대다. 담뱃값이 싸니 그 만큼 흡연율 높다. 15세 이상 남성 흡연율 40.8%, OECD 중 최고 수준이다.

'없는 사람 주머니 턴다'는 반발이 있긴 하지만 담뱃값이 오르면 흡연율은 떨어진다. 여러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04년 담배값 인상 후 고등학교 2곳을 표본 조사했다. 반년 만에 30% 가까운 학생들이 담배를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담뱃값을 10% 올릴 때 성인 흡연율이 5%, 청소년 흡연율은 7%가 감소한다는 미국 '청소년 금연 캠페인'의 조사 결과도 있다. 프랑스의 경우 지난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매년 5%씩 담배 가격을 올렸는데 이 동안 남성과 여성 흡연자가 각각 6.5%, 5.8%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올해부터 담배 가격이 1,000원 오른다면 현재 40% 이상인 성인남성 흡연율이 2020년에는 38.9%로, 2,000원 인상되면 37.4%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 담뱃값 인상의 조건

앞서 살펴봤듯이 담배값이 오르면 흡연율은 떨어진다.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최소한의 명분은 갖춘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물가부담이다. 국산 담배가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가중치 비중은 0.5%, 외산 담배는 0.35%다. 담배의 가중치는 481개 소비자물가 조사품목 가운데 20번째로 높다.

또 저소득층의 구매 비율이 높아 서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만약 국산 담배가 2,500원에서 4,500원으로 가격이 80% 오르고 외산 담배의 가격도 똑같은 비율로 오른다고 가정하면, 이것만으로도 물가가 0.5%포인트 이상 오르게 된다.

또 담뱃값 인상이 다른 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물가에 미치는 파급력은 더 크다. 지금처럼 체감 경기가 어렵고 물가도 불안한 상황에서 담뱃값을 올릴 경우 엄청난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물가부담 만큼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정책의 순수성이다.

여권은 담뱃값 인상이 현실화되면 이를 통해 거둔 세금으로 4대 중증 질환 보장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 공약 이행에 사용한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이 증세없이 복지 공약을 집행하겠다고 공언해놓고, 돈 나올 구멍이 없자 국민 건강을 핑계로 담뱃값 인상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비난 여론을 막고 흡연율도 낮추기 위해서는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나는 세금의 사용처를 명확히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담뱃값 인상의 목적이 여권의 공약 이행 등 정치적 이해 타산과 연계돼 있다면 반발은 불보듯 뻔하다. 특히나 국민적 저항이 심한 증세를 피하기 위해 꼼수로 담뱃값을 올린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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