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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가 휩쓴 시골마을…남은 건 '살아갈 걱정'뿐

울산 울주군 신화마을 민가 7채 전소…집주인은 넋두리만

화마가 휩쓴 시골마을…남은 건 '살아갈 걱정'뿐
10일 낮 12시.

전날 밤 화재로 이튿날 새벽까지 불길이 치솟던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직동리의 신화마을.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생경한 상황에 바짝 긴장이 됐다.

나무줄기만 남은 야트막한 야산은 전체가 검게 변했다.

멀지 않은 하늘에 헬기 5대가 동시에 떠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프로펠러가 앞뒤로 달린 군용헬기도 섞여 있었다.

공중에서 교차하던 헬기들은 연기가 나는 곳을 지나면서 하얀 분말 같은 물을 뿌려댔다.

헬기 소음 때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각과 청각이 낯선 상황에 압도당했을 때, 후각은 유달리 예민하게 반응했다.

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냄새는 뚜렷하고 생생했다.

잿더미에서 맡을 수 있는 그 냄새였다.

마을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한때 지붕이었을 양철판이 마구 구겨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불이 꺼진 지 한나절이 훨씬 지났을 때지만, 양철판 아래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올랐다.

헬기의 프로펠러 소음, 잿더미의 냄새, 폭삭 내려앉은 집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등은 전쟁통에 폭격을 맞은 마을의 풍경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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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집가량을 지나치자 야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이태종(60)씨 집이 나왔다.

지붕이 어디 갔는지 뻥 뚫린 채 벽체만 서 있었다.

가재도구는 모두 불에 탔다.

이씨는 집에 딸린 축사에 있었다.

축협 수의사가 소 4마리의 상태를 살펴봤다.

수의사는 새끼를 밴 2마리 중 1마리는 유산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4마리 모두 극심한 열기와 연기에 정신적 쇼크가 클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튼튼한 축사 지붕이 잘 견뎌줘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었다.

이씨는 "불을 보고 급하게 몸만 빠져나와 살긴 살았는데, 지금부터 살 방법이 막막하다"면서 "올해 농사에 종자로 사용할 벼도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했다.

이따금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삼켰지만, 그의 넋두리는 울음에 가까웠다.

이씨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특별재난지역 지정 등이 유일한 방법인데 이번 산불은 그 기준에 모자란다고 울주군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마을에는 이씨의 집을 비롯해 민가 7채가 전소했다.

일부 피해를 본 집도 10여가구에 이른다.

시커멓게 변한 야산을 올랐다.

수십년간 자리를 지켰을 소나무 수십그루는 숯덩이가 돼 있었다.

불에 탄 조상의 묘를 손질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한 농가에서는 불에 타 죽은 개의 사체를 볼 수 있었다.

박제된 것처럼 사지를 쭉 편 채 굳어 있는 모습에서 화마의 잔혹함이 느껴졌다.

다시 도로변으로 나왔을 때 전소한 또 다른 집이 눈에 띄었다.

산자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집인데, 멀쩡한 이웃집과 달리 홀로 피해를 입었다.

불붙은 잡풀 등이 바람을 타고 미사일처럼 산에서 날아와 집에 곧장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엄주현(59)씨가 설명했다.

유리가 녹아 뚫린 방안에서 엄씨 형제가 삽을 들고 이곳저곳을 뒤지고 있었다.

형제는 노모(83)의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밤 부산에서 부랴부랴 올라왔다고 했다.

집에는 쓸만한 물건이 없었다.

무엇을 찾는지 궁금했다.

엄씨는 손에 쥔 두툼한 물건을 내밀었다.

어머니의 사진이었다.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어머니의 휴대전화도 보여줬다.

엄씨는 "화재 소식을 듣고 집 전화기와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는데 내내 불통이었다"면서 "미처 휴대전화도 못 챙기고 몸만 피하신 것이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가 물건을 넣어두던 서랍장 근처를 뒤졌더니, 상자에 보관하던 사진들이 비교적 멀쩡한 상태로 발견됐다"며 "그나마 남은 소중한 물건이라도 건지려고 샅샅이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엄씨 집을 뒤로하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보니 마을 안에서부터 진입도로 양편에 차량이 줄지어 주차돼 있었다.

주로 노인 1∼2명씩 가구를 이룬 시골마을에 화재 뉴스를 접한 자식들이 모여든 것이다.

언양읍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산불은 이틀 만에 가까스로 진압됐다.

그러나 그 상흔이 지워지는 시간은 기약할 수 없는 듯했다.

(울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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