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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논픽션] '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감독, 절반의 성공과 실패

[김지혜의 논픽션] '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감독, 절반의 성공과 실패
첫번째는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적잖은 부담도 가질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무엇인가를 할 때 그 결과가 성공적이라면 기념비적인 기록으로 회자되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면 실패 사례로 거론될 것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완성한 김지운 감독도 이같은 부담 속에서 '라스트 스탠드'(The Last Stand)개봉시켰다.

북미에서의 성적은 아쉬웠다. 지난 1월 18일에 개봉한 '라스트 스탠드'는 개봉 첫주 9위로 데뷔했으며, 2주 만에 10위권에서 자취를 감췄다. 결국, 제작비 4,500만 달러(한화 약 480억원)의 1/3 수준인 1,200만 달러의 극장 수익을 내는 데 그쳤다.

이 작품이 정치인에서 배우로 돌아온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10년 만의 복귀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쉬운 결과였다. 물론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이미지가 실추된 슈왈제네거의 티켓 파워가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더욱이 90년대를 풍미한 액션 스타의 위용은 사라졌다. 영화 속 대사처럼 그는 늙었다.

아쉬운 것은 한국에서도 참담한 성적을 거둬들였다는 점이다. 지난달 21일 개봉한 '라스트 스탠드'가 11일동안 모은 관객은 전국 6만 4,989명.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8위로 데뷔해 3주차엔 21위까지 순위가 떨어졌다. 1998년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한 이래 김지운 감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업적인 실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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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배급을 담당한 CJ 엔터테인먼트의 한 관계자는 "'라스트 스탠드'의 홍보 기간이 무척 짧았다. 생각보다 광고에 많은 투자를 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인지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고 전했다. 

또 일각에서는 '애초 계획대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아닌 리암 리슨이 주연을 맡았더라면….'하는 아쉬움 섞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라스트 스탠드'는 헬기보다 빠른 튜닝 슈퍼카를 타고 돌진하는 마약왕과 아무도 막지 못한 그를 막아내야 하는 작은 국경마을 보안관 사이에 벌어지는 생애 최악의 혈투를 담은 작품이다. 줄거리에서도 알 수 있듯 소재 자체의 매력이나 장르적 쾌감이 돋보이는 영화는 아니다. 노쇠한 보안관이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이야기는 그 옛날에도 많이 봐 왔던 다소 올드한 이야기다.

김지운 감독은 변화의 폭이 넓지 않은 스토리에 자신의 색깔을 최대한 넣고자 고군분투했다. 단선적인 이야기가 단점으로 지적되는 만큼 캐릭터에 입체감을 불어넣었다.

슈왈제네거가 맡은 '레이 오웬스'를 '무적 영웅'이 아닌 노쇠하지만 정의감은 살아있는 캐릭터로 수정했다. 총기 수집이 취미인 괴짜 '루이스 딩컴'(조니 녹스빌 분)으로 하여금 양념 같은 유머를 던지게 하며 극의 생동감을 더했다. 또 국경 마을에 들이닥친 범죄자들에게 반응하는 노인 캐릭터들도 소소한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FBI 요원으로 등장하는 포레스트 휘태거나 다니엘 헤니 등은 입체감이 현저히 떨어졌다. 굳이 이 배우가 아니어도 가능한 특징 없는 캐릭터였다. 또 희대의 마약왕과 그의 부하로 분한 에두아르도 노리에가나 피터 스토메어 등도 전형적인 악역이라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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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에서 김지운 감독은 인상적인 액션신으로 자신의 낙인을 찍었다. 대표적인 것은 후반부 등장하는 '옥수수밭'신이다. 최대시속 450km에 달하는 슈퍼카 콜벳 ZR1과 보안관의 자동차가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채로 옥수수밭에서 아찔하게 질주한다.  

김지운 감독의 핵심적 역량이 총 집합된 것처럼 보이는 이 신은 그 자체만으로는 상당한 개성과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 중반부까지는 도로를 질주하는 슈퍼카와 시골 보안관의 지루한 일상을 교차로 보여주는 평이한 연출은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지운 감독에 이어 박찬욱 감독까지 한국 감독의 미국 진출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메가폰을 잡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제작, 각본, 캐스팅까지 어느 정도 판이 짜인 상태에서 한국 감독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미 짜인 판에서 한국 감독이 연출의 묘를 발휘할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할리우드는 스태프들의 체계적인 분업과 배우들의 엄격한 시간제 노동, 촬영에 대한 사전 협의 등 촬영에 관한 전반적인 것들을 철저한 사전 제작(Pre-Production) 아래에서 움직인다.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과 충무로의 가장 큰 차이는 감독의 현장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었다"면서 "나는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는 편인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것을 실제 촬영에 반영하려면 제작사의 단계적인 승인을 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현장에서 시간은 곧 돈이기에 포기해야 하는 아이디어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장점 만큼이나 단점도 적잖이 노출됐다. '라스트 스탠드'가 이야기의 결이 고르고 액션의 질이 매끄럽지 못한데는 김지운 감독의 색깔이 속속들이 미치지 못한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라스트 스탠드'는 미국의 B급 액션 영화를 표방하고 있고, 콘셉트에 맞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정서가 공존하면서 국내 관객들에게 어필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결국, 김지운 감독의 첫번째 도전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거두었다.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완성해낸 작품이기에 단순히 흥행 스코어만 가지고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김지운 감독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다소 아쉬운 첫번째 성적표를 뒤로 하고 차기작에서는 김지운 월드의 확장판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bada@sbs.co.kr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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