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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로 다크 서티', 아카데미가 놓친 미국의 잃어버린 10년

[리뷰] '제로 다크 서티', 아카데미가 놓친 미국의 잃어버린 10년
지난달 25일 열린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비롯해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제로 다크 서티'(Zero Dark Thirty)는 지난 2008년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이 '허트 로커'로 이룬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로 기대를 모았다. 결국, '제로 다크 서티'는 음향편집상 부문에서 단 하나의 트로피를 거머쥐는데 그쳤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작품상인 '아르고'나 감독상 수상작인 '라이프 오브 파이'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단언하건대 '제로 다크 서티'는 2012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다.

할리우드에서 남자 감독보다 더 힘있는 연출력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은 '제로 다크 서티'를 통해 '테러 그 후'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전작 '허트 로커'에서 전쟁이 인간에게 남기는 상흔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냈던 비글로우 감독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를 수렁에 몰아넣었던 오사마 빈 라덴 추적기에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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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다크 서티'는 비글로우 감독이 '허트 로커'보다 먼저 그리고 더 오랫동안 준비한 역작으로 CIA의 기밀문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까지 세계 최고를 자부했던 미국은 9.11 테러로 큰 외상을 입었다. 빈 라덴의 비행기 테러로 3천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죽었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국방부는 그후 10여년 간 빈 라덴를 제거하기 위해 연간 수십억 원의 국방비를 지출하지만, 행방조차 알아내지 못한다. 이 과정에서 포로에 대한 고문 논란 등에 휩싸이며 전 세계의 비난 여론에도 직면하게 된다.

'제로 다크 서티'는 일종의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다. 국가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작전이 어떻게 개인의 트라우마로 전이되고, 국가적 임무가 왜 개인의 집착으로 돌변하게 되는 지를 차분하고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CIA의 신참 요원인 '마야'(제시카 차스텐인 분)는 파키스탄으로 발령이 나자마자 빈 라덴의 자금줄로 알려진 포로를 고문하는 현장을 지켜보게 된다. 처음엔 그저 두렵게만 다가왔던 그 풍경은 어느 순간 업무의 연장이자 일상적 풍경으로 다가온다.

마야는 인생의 1/3을 빈 라덴을 추적하는데 허비한다. 주어진 임무로만 여겨졌던 빈 라덴 추적은 동료가 죽음으로 인해 꼭 이뤄내야 할 목적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 집착하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마야는 목적을 위해 수단을 아끼지 않는 노련함도 습득하게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연출을 표방하면서 극적 장치를 애써 배제한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CIA가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빈 라덴을 쫓는지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 영화의 절반을 차지한다. 각본을 쓴 마크 볼과 메가폰을 잡은 비글로우 감독이 수년간 작품을 준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도 사실성에 기반을 둔 역동성이었다.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덤덤하게 끌어가던 영화는 후반부 30분간 '제로니모 작전'으로 알려진 빈 라덴 생포 작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비글로우 감독은 이 장면의 사실적 묘사를 위해 조명, 사운드 등 촬영의 전반적인 테크닉을 배제하고 실제 현장에 와있는 듯한 사실적 묘사로 스크린을 채운다. 그래서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나 귀를 사로잡는 화려한 사운드 없이도 엄청난 긴장감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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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다크 서티'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영화이기에 자국 중심의 관점이 투영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비글로우 감독은 핵심 정보를 간과한 CIA 무능함, 빈 라덴 제거 작전을 눈앞에 두고 보이는 정부와 국방부의 안일한 대응 방식 등에 대한 비판도 서슴없이 가했다. 

실존 인물 '마야'를 연기한 제시카 차스테인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자체다. 목적을 위해 내달리던 마야는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지만, 감흥이 아닌 허탈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어떤 답도 내릴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만 가슴 속에 울리기 때문이다.    

비글로우 감독은 '허트 로커'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비극 안에 있는 한 인간의 심리묘사에 집중하며 관객에게 전쟁에 대한 혹은 테러에 대한 서늘한 메시지를 넌지시 던진다. 비극은 또 다른 비극을 잉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반전(反戰)메시지를 던지는 여타의 전쟁 영화와 다른 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와 관점이다. 화자 중심의 극화된 이야기를 통해 승리에 대한 쾌감을 전달하는 식의 단편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 개입의 차단하는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관객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지고, 대답은 보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영화의 제목인 '제로 다크 서티'는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간을 지칭하는 군사용어다. 타겟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에 침투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로 실제 미국 네이비씰이 빈 라덴의 은신처에 당도한 시간이다. 개봉 3월 7일.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57분.

ebada@sbs.co.kr

<사진 = 영화 스틸컷>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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