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윤지(29)는 자타공인 ‘왕족전문 여배우’다. 2008년 ‘대왕세종’(KBS)에서 소헌왕후 역을, 최근 종영한 SBS ‘대풍수’에서 우왕을 낳은 반야 역을 맡아 태후에 걸맞는 연기를 해냈다. 이윤지가 더욱 특이한 점은, 현대극에서도 두 번이나 공주 역을 맡았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궁’(MBC)에서 혜명공주, 지난해 ‘더킹 투하츠’(MBC, 이하 ‘더킹’)에서 공주 이재신 역을 열연했다.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왕족의 일원이 됐던, 그야말로 ‘왕족전문’이라 할 수 있는 여배우는 이윤지가 전무후무하다.
“왕족전문 여배우? 또 다른 왕족도 연기해보고파”
이윤지가 유독 왕족 역을 자주 맡는 이유는 똘망똘망해 보이는 이미지에서 기인한다. 그의 큰 눈에선 총명함이 빛나고 왠지 모를 믿음이 간다. 실제로 이윤지는 연극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인재이기도 하다. 지적이고 착해 보이는 외모, 신뢰가는 이미지, 그러면서도 강단있어 보이는 모습들이 이제 막 서른살에 접어든 이윤지를 ‘왕족전문 여배우’로 만들었다.
“‘궁’이나 ‘더킹’은 둘 다 현대극이었는데 왕실 이야기를 다뤄 제가 왕족 역할을 할 수 있었어요. 현대극에서 재벌 역할은 흔히 맡을 수 있지만, 왕족 역할은 할 수가 없잖아요. 현대극에서 왕족 이야기를 다룬 게 딱 그 두 드라마였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제가 두 작품 다 참여하며 특별한 경험을 했죠. 전 언제든지 다음 왕족을 꿈꿉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왕족도 연기해보고 싶어요.”
이윤지는 젊은 나이에 맞지 않게 고지식한 면들이 있다. 새로운 배역을 맡으면 캐릭터 분석을 하느라 방에 들어가 안 나오는 성격이다. 그래서 남들이 “좀 편하게 해라”고 말할 정도다.
“이게 성격인가봐요. 새 캐릭터를 분석하며 이건 어떤 모습일지, 저한테 어울릴지 등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그렇게 혼자 노는 거죠. 딱 왕따되기 좋은 타입이에요.(웃음)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 어디 들어가면 잘 안나오는 은둔형이니까요. 제가 방송에선 엄청 활발해 보이는데, 실제로 못하는 것들을 그렇게 방송으로 풀어내나봐요. 방송하는 사람들은 그런 순리가 맞는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도 회사에선 진득하니 앉아 일하다가, 밖에 나가 친구들을 만나면 활발해지잖아요. 그렇게 누구든 흑과백이 적당히 있는 거죠.”
“내게 2012년은 좀 부대꼈던 해”
이윤지에게 지난해는 유난히 버거운 해였다. 특별히 어떤 사건이 있어서는 아니다. 상반기해 했던 ‘더킹’, 하반기에 했던 ‘대풍수’에서 맡은 두 캐릭터가 모두 아픔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맡은 캐릭터대로 간다’는 말이 있듯, 이윤지는 두 번 연속 아픔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스스로도 가라앉았다. 그만큼 이윤지는 온 몸으로 캐릭터를 느끼며 흠뻑 빠져있었던 셈이다.
“확실히 저한테 2012년은 썩 밝지만은 않은 해에요. 연기한 캐릭터들이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느 해보다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저도 사람인지라 같이 다운되기 마련이었죠. 전체적으로 어둡고 부대꼈던 2012년이었어요. 지금은 지나고 나니 한결 후련하고 마음이 편해요. 그 시간이 없었다면 이렇게 한차례 뭔가 큰게 지나간 것 같은 시원한 느낌을 받지 못했겠죠. 겪을 땐 힘들었지만, 그런 시간들이 저한테 준 게 많다고 생각해요.”
이윤지는 ‘대풍수’ 속 반야를 연기하며 한 여인이 겪을 수 있는 슬픔, 분노, 야망, 사랑 등 모든 감정을 연기했다. 이윤지는 반야를 통해 처절하게 독해졌다. 착해 보이기만 하던 이윤지의 색다른 변신이었다.
“‘대풍수’에서 반야는 어릴 때 모습부터 나와서, 지상(지성 분)을 버린 후 공민왕(류태준 분)한테 승은을 입고, 아이를 낳고 또 아이가 죽는 것도 보고, 나중엔 정근(송창의 분)과 사랑을 하다가 슬픈 죽음을 맞았죠. 제가 생각해도 반야의 인생은 너무 슬프고 가혹했어요. 어떤 여자가 아들이 죽는 모습을 선 채로 바라볼 수 있겠어요. 제 역할인데도, 대본을 보면서 ‘반야야 그만 하자, 너무 고되다’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반야를 표현하기가 녹록치는 않았어요. 하지만 반야를 통해 ‘배우 이윤지’는 확실히 더 클 수 있었죠. 제 연기인생은 반야를 맡기 전과 후로 나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대되는 서른 살, 못했던 성인식 이제 하겠다”
힘든 2012년이 지나고 2013년을 맞은 이윤지. 그에게 2013년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1984년생 이윤지는 올해 딱 서른이 됐다. 이윤지는 여자로서, 또 배우로서 서른을 맞은 기분이 남다르다.
“누구나 시간과 나이를 피해갈 수 없지만, 배우는 그걸 더더욱 직면하는 것 같아요. 배우는 얼굴을 보여주는 게 직업이다보니 그만큼 나이라는 카테고리를 코 앞에 두고 바라봐야 하죠. 때론 그게 안타깝기도 하고 너무 가혹하다 싶기도 해요. 전 그런 것들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그래서 제 나이대에 맞는 기쁨, 슬픔을 표현할 줄 아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개인적으론 서른 이후가 오히려 더 기대가 되요.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럽고 억지 없이, ‘일반인 이윤지’의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서른을 맞은 이윤지가 꼭 해보고 싶은 것은 ‘성인식’이다. 보통 사람들이 만 스무살 5월에 하는 성인식을 이윤지는 이번에 해보고 싶단다.
“성인식을 서른에 하려고 해요. 원래 스무살에 해야하는 건데, 정작 그 땐 지금처럼 일하던 때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못하고 지나갔죠. 제가 스물아홉이었던 작년, ‘내가 20대에 못해본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많더라고요. 성인식도 그렇고, 배낭여행, 친구들과의 기념 파자마파티 같은 것들을 못해봤어요. 이번에 서른이 된 친구들과 같이 우리들만의 성인식을 다시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서른살의 성인식을 치르면, 이 다음에 올 30대를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기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큰 산을 넘고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선 이윤지는 마음이 즐겁다. 하고 싶은 게 많은 그는 이것저것 계획하고 꿈꾸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낀다.
“2013년엔 작품적으로 멋진 도전들이 이어지면 좋겠고, 작품이 아니더라도 예능이나 또 다른 어딘가에서 다른 저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2012년은 좀 부대꼈지만, 2013년은 즐겁게 맞았어요. 제가 즐거우니까 절 보는 분들도 분명 즐거울 거에요. 행복을 마구 나눠드릴 테니, 그 행복을 이곳저곳에서 확인 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게요. 기대해주면 좋겠어요.”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사진=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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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강선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