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외면받는 강제징용 피해자들

'나몰라' 일본 전범 기업, 뒷짐 진 우리 정부

[취재파일] 외면받는 강제징용 피해자들
일본 식민지배는 이 땅에 많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위안부, 항일투사의 희생, 문화재 약탈, 국가의 정통성 부정 등 국민과 국가 전체에 씻지 못할 아픔을 줬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고통의 역사를 미래의 디딤돌로 삼기 위한 노력도 했지만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아픔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입니다.

얼마 전 강제징용 피해자를 만났습니다. 1944년 ‘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 군수업체에 끌려갔던 82살 김정주 할머니입니다. 1945년 광복으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김 할머니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13살에 끌려간 1년 강제징용, 그 아픔은 70년이 지속된 겁니다.

김 할머니는  “먼저 일본으로 간(끌려간) 언니를 만나게 해주겠다. 일본에 가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어서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사탕발린 말, 그녀의 인생을 바꾼 그 거짓된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 할머니가 근무했던 군수업체 후지코시 주식회사. 이 기업은 전범기업입니다. 식민지 당시 후지코시는 일본 천황이 타는 군함인 나치(那智)에서 따서 상표를 ‘NACHI’ ‘那智’로 정했고,  ‘NACHI’라는 상표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김정주 할머니는 철조망 속에서 빵 한 조각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NACHI라는 상표를 위해 강제로 1년간 강제징용 생활을 했습니다. 조국이 그리워, 가족이 보고 싶어 한 명이 울면, 울음병은 전염병처럼 또 다른 징용 피해자들의 부은 눈으로 옮겨갔습니다.

1년 후 찾아온 광복.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고국에 돌아왔지만, 해방의 기쁨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고국은 김 할머니에게 ‘낙인’을 찍었습니다. 여성이 일본에 끌려갔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본 남성을 상대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샀습니다. 김 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강제징용의 아픈 기억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위사람들은 강제징용을 기억했고, 이를 알게 된 남편은 김 할머니와 헤어졌습니다.
이미지
강제징용 1년, 그 1년은 82살 김 할머니 평생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를 보호해야 할 국가가 의무를 다하지 못해 일본으로 끌려갔고, 돌아온 고국조차 김 할머니를 보듬어 주지 않았습니다. 김 할머니가 지금까지 일본과 일본 기업을 상대로 외롭게 싸우는 이유도 바로 이런 아픔 때문입니다. 김정주 할머니의 싸움엔 우리정부는 빠져있습니다. 2003년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을 때, 그리고 패소가 확정됐을 때도 우리정부 침묵했습니다. 사인간의 소송으로 치부했기 때문입니다. 임금을 받지 못한 퇴직자가 조금 늦게 소송을 낸 것, 딱 그렇게만 생각한 겁니다.

우리정부가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속사정도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체결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협정으로 한국에게 건넨 8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3억달러)로 “모든 배상은 끝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우리정부는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답답한 데는 정부의 이 같은 안일한 태도도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 신천수(87) 옹은 “정부가 나서 주지 않으면 생전에 사죄와 배상을 받을 길이 없다”고 말 합니다. 1943년 지금의 신일본제철로 끌려갔던 신천수 옹은 김정주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본 기업을 상대로 20여년 전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습니다. 일본 최고법원은 청구권 시효가 소멸됐다고 일본정부와 기업들에게 배상 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우리나라 법원(1,2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대법원은 징용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배상금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낸 소송을 일본 법원이 기각한 것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전제 아래 내린 판결로, 이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본 대한민국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일본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한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배된다”고 명시했습니다.

주목할 것은 또 있습니다. “일본 국가 권력이 개입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동안 청구권 행사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시효도 소멸된 것이 아니다”. 일본 법원의 판결과 완전히 상반된 것으로, 징용피해자의 청구권과 한일청구권협정을 구분 짓고, 시효 역시 살아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겁니다.

징용 피해자들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 소송은 현재 파기환송심에서 배상액 산정을 두고 계류 중에 있습니다. 이르면 내달 선고될 예정됩니다. 그러나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피해자들이 배상금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확정판결을 근거로 일본 기업의 재산을 강제집행할 수 있지만, 일본 전범기업들이 사실상 국내에 재산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본정부의 고집스런 태도, 자국 정부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는 일본기업들이 한국 법원의 확정 판결로, 70년 가까이 거부하던 미불임금을 자발적으로 지급하고, 사죄를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이미지
피해자들이 정부가 나서야 된다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던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해 대법원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까지 제시했지만, 여전히 망설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망설이는 사이 몇 안 되는 강제징용 생존자들은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생전에 사죄와 배상을 받기는 어려운 걸까요.

정부는 이들을 또 다시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이미 이들을 외면한 전력이 있습니다. 청구권 자금을 경제성장의 밑거름으로 활용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고 자찬하지만, 이는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징용 피해자들을 포함한 국민의 희생 덕분에 지금 더 잘 살게됐다는 말로 안위할 수도 없습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일본 기업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건 이들의 정당한 권리이자 기본적 인권입니다. 이들의 기본권은 보호의 대상이지 희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영구히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이자, 미래의 국민에게도 인정되는 항구적 권리인 기본권 보호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이들의 기본권 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는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제시대의 교훈을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