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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효명세자의 '동궐도'엔 어떤 비밀이?

[취재파일] 효명세자의 '동궐도'엔 어떤 비밀이?
조선시대 경복궁, 왕이 국가 행사를 치르던 가장 권위있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임금은 경복궁 동쪽에  있는 창덕궁에 더 자주 갔다고 합니다. 창덕궁 바로 옆에 맞닿아 있는 궁궐인 창경궁까지, 두 궁궐을 당시엔 '동궐'이라고 합니다. 이 두 궁궐을 아주 자세하게 그린 '동궐도' 2점이 공개됐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지금이야 문화 유산이라는 이유로 궁에 들랄날락하지만, 그 당시에 일반인들이 궁궐에 들어간다는 건, 아니 궁궐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는 것 조차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동궐도는 궁궐이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나 상세하게 그려놨습니다. 원근과 비례까지 정확해서 궁궐의 위치는 물론 바닥돌과 벽돌 개수, 나무까지 세세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보는 누구라도 궁궐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한 편의 설계도 같은 그림 대체 누가, 왜 그린 걸까요?

동궐도는 국보 249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국가 기밀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정보를 그린 것 만으로도 국가의 보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크기가 가로 578cm, 세로 274cm로 대형 회화 작품입니다. 조선시대에 이런 큰 그림은 흔치 않습니다. 이번에 전시된 동궐도는 진본 2점입니다. '똑같은 그림이 2점이라고?' 궁금해하실 분들도 있을것 같은데 그 얘긴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할게요. 사실 동궐도는 3점이 제작된 걸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2점이 전해져 오고 있는데, 한 점은 고려대학교가 보관해온 '화첩' 형태의 동궐도, 다른 한 점은 동아대학교가 보관해온 '병풍' 형태의 그림입니다. 화첩 표지에 보면 '東闕圖(동궐도)' 그 밑에 '人(인)'이란 글씨가 씌여 있는데, 이걸 토대로 '천(天), 지(地), 인(人)' 즉 3개가 있다고 추정하는 겁니다. 여튼 고려대 소장본이 '인'이긴 하지만 동아대 본에는 표시가 없으니 '천' 또는 '지' 본으로 추측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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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그림은 1820년대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순조가 몸이 아파 아들인 효명세자가 대리 청정을 하던 시기입니다. 당시 최고의 화가들에게 이 그림을 그리라고 시켰던 것 같습니다. 창덕궁 경복전이 불에 타 보이지 않는 점, 창경궁 환경전이 재건된 것으로 묘사된 점으로 미뤄 1826년부터 30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재밌는 모습도 많습니다. 창덕궁의 중희당, 원래는 동궁인데 효명세자의 할아버지인 정조는 이 궁을 편전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 중희당 앞마당에는 측우기와 해시계가 놓여있습니다. 하늘에 대한 숭배도, 과학 기술에 대한 열정도 보입니다. 홍문관 앞마당에 놓인 2개의 잔도 특이한 점입니다. 예전엔 창덕궁과 창경궁을 잇는 문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후원을 통해 연결되지만요. '비원'이라 부르는 후원도 당시엔 대보단부터 춘당지까지 두 궁의 뒤편 북한산 자락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이었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청의정'은 궁궐 내 유일한 초가지붕이었습니다. 임금이 공식 행사를 치르던 인정전과 바로 옆 유일한 청기와인 성정전. 다른 궁궐은 모두 흙바닥이지만, 임금이 다니는 궁궐만 바닥돌이 있는 점도 볼만 합니다. 가장 신기한 건 돈화문(敦化門)입니다. 돈화문은 한번도 훼손된 적이 없습니다. 돈화문의 지붕은 '우진각 지붕'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붕 옆면이 삼각형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동궐도에 묘사된 지붕은 '팔작 지붕' 다시 말해 삼각형 아래 사다리꼴 모양의 지붕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두 그림 다 그렇게 묘사돼 있습니다. 거대한 동궐도에는 사람 한 명 없지만 볼수록 볼 게 나오는 재밌는 회화 작품입니다.

이렇게 보다 보니, 정말 궁금해집니다. 효명세자는 어떤 의도로, 왜 여러점 그렸을까요?
불행히도 속시원히 얘기해 줄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동궐도에 대한 역사 자료가 부족하다는게 학계 측의 설명이었습니다. 효명세자가 대리 청정 하던 시기를 고려하면 세도 정치로부터 왕의 권위를 강화하게 위해 그렸다는 의견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뒷받침할 고증이 충분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동궐도가 어떻게 전해져 왔는지도 궁금해집니다. 이 그림이 외부에 유출되기라도 하면 오히려 왕실에 위협이 될텐데 말입니다. 지금으로선 이 화첩 16권이 온전히 내려져 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다른 한 본은 어디있는 것일까요? 마치 항공 촬영하듯 원근과 비례까지 정확하게 맞춰 그린 이 그림은, 당시 높은 건물도 없었을텐데 어떤 방식으로 보고 그린 걸까요?

두 동궐도가 온전히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동시에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1820년대 태어난 화첩 동궐도가 지금껏 많이 훼손돼 있는데다, 이렇게 공개되다가는 더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랍니다. 당시 서민들은 알지 못했던 궁궐 생활...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저 그런 풍경화일지 모르겠지만, 관심을 갖고 보면 후손들에게는 엄청난 정보 제공자이자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텔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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