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본 듯한 사진도 있지만 처음 접하는 사진들도 많았습니다. 사진자료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노라니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까지 한국현대사를 백범이란 인물의 삶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연관된 취재를 하면서 임시정부의 역사도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임정의 역사 또한 백범과 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이 암살당하는 순간까지 머물렀던 거처인 경교장도 복원을 마치고 오는 3월 2일부터 일반에 공개됩니다. 백범 김구 사진자료집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임시정부는 수립 이후 어려움 속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비밀조직을 통한 주요 인물 제거 활동으로 한인애국단이 그 조직입니다. 대표적인 애국단 소속 대원이 이봉창, 윤봉길 의사입니다.
이봉창 의사는 이 사진을 찍고 얼마 뒤 도쿄로 잠입해 1932년 1월 8일 일본 국왕 암살을 시도합니다. 실패했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이 사진은 눈에 익습니다. 태극기 앞에서 오른손엔 권총, 왼손엔 수류탄을 쥐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김구 당시 임시정부 국무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김구 선생의 전기나 윤봉길 의사 전기에 나오는 유명한 대목, 기억하실 겁니다.
윤봉길 "제 시계가 더 좋은 건데 저는 한시간 뒤면 소용이 없으니 바꿉시다"
그 시계가 이렇게 생겼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 및 상하이 사변 전승 축하식에서 폭탄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역시 바로 체포됐습니다.
다소 침체기였던 임시정부의 활동은 연이은 거사 이후 활력을 더하게 됐지만 그만큼 일제의 압박도 심해져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장정에 오르게 됩니다.
1940년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임시정부 환국 이후 1946년 3월 1일에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3.1절 기념식이 치러집니다.
임시정부 환국 이후 백정기, 이봉창, 윤봉길 삼의사의 유골을 발굴해 모셔오게 됩니다.
이 사진은 윤봉길 의사 유골 발굴 장면입니다.
백범 선생은 환국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과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적극 추진했고 이후 유엔 감시하의 남북선거에 의한 정부 수립안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남북이 갈라서면서 남과 북에 각각 단독 정부가 수립됐습니다.
그리고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와 백범학술원, 백범김구기념관이 공동으로 발간한 이 사진자료집은 760여 장의 백범 관련 사진이 담겨 있으며 비매품으로 전국 도서관에 무료로 배포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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