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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수상한 식품 가격 인상

[취재파일] 수상한 식품 가격 인상
지난 주 유통가는 식품 가격 인상이 화두였습니다. 간장업계 1위인 샘표가 간장값을 올리자 대상도 이틀만에 '청정원' 간장 가격을 올린 것이 불씨였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쉴새없이 품목을 달리하며 가공식품 값이 오르더니 대통령 취임식을 일주일 앞두고 간장값이 막차를 탔습니다. 정권 말만 되면 정부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물건 값을 올리던 업계 관행에 시민들도 화가 났던지 간장값 인상은 그냥 불씨가 아니라 기름을 부은 집에 던진 불씨가 된 꼴이었습니다. 

가격이 언제 올랐는지 한번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2월부터 이번 달 간장값이 오르기까지 각 품목이 오른 날짜를 쭉 살펴봤습니다. 밀가루, 고추장, 된장, 두부 등 가격이 오른 것 가운데 6개 품목을 들여다봤는데, 참 이상하고 신기한 가격 인상의 법칙이 있었습니다. 

우선 고추장을 한번 볼까요? 지난 1월 11일 CJ가 '해찬들' 고추장 가격을 8% 안팎 올립니다. 그리고 나서 한달 뒤 대상 '청정원'이 같은 폭으로 올라갑니다. 해찬들은 고추장 시장 5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1등 상품이고, 대상은 45% 정도 되는 업계 2위입니다.

두부는 어떨까요? 지난해 12월 6일 풀무원이 10% 넘게 가격을 올립니다. 보름 뒤 CJ가 같은 인상폭으로 또 두부값을 인상했습니다. 그리고 대상은 열흘 뒤 1월 1일 가격 인상을 단행합니다. 풀무원은 두부 시장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업계 1위, CJ는 2위, 대상은 3위입니다. 역시 1,2,3위가 차례차례 가격을 올린 셈입니다.

밀가루도 마찬가지입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CJ와 대한제분은 1월 초 하루 차이로 밀가루 값을 올립니다. 인상폭은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2월 20일 업계 3위 삼양사는 뒤따라 밀가루값을 인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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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품목들은 다를까요? 아닙니다. 소주도 업계 1위 하이트진로가 먼저 가격을 올렸고, 2위 롯데주류가 뒤따랐습니다. 된장과 간장도 역시 1위가 먼저 가격을 올렸고, 가격 인상폭도 같습니다. 

이상한 현상입니다. 1위가 가격을 올리니 2,3위 업체들이 뒤따라 가격을 올리는 형국입니다. 굳이 경제학 원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1위가 가격을 올리면 2,3위 업체들에겐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더군다나 오랜 불황 탓에 백원이라도 더 싼 제품을 내놓는다면 소비자들의 반응은 더  즉각적일 수 있는 때입니다. 하지만, 식품업계는 달랐습니다. 2,3위 업체들은 그냥 1위 업체를 따라갔습니다. 

누군가는 업체끼리 담합한 것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좀 다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오랜 식품업계의 관행, 식품업계의 특이한 매출 구조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의 입맛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과자를 좋아하고, 먹던 간장, 된장을 계속 먹게 되고, 샀던 라면을 계속 부지불식간에 집어 삽니다. 새로운 제품을 먹어보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입맛은 다시 돌아옵니다. 정말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기호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때문에 식품업계는 업계 1위에 오른 제품들은1,2년이 아닌 10년, 20년을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2,3위 업체들이 네거티브에 유통망 흔들기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도 사람들은 백설표 밀가루를 사고, 신라면을 사먹고, 맥심 커피믹스를 먹습니다. 잠깐 한눈 팔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IT시장 등 과는 참 다른 모습입니다. 이 때문인지 식품업계는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업체지만 홍보 전략이 적극적인 편은 아닙니다. 좀 보수적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식품가격 인상도 다른 패턴으로 벌어집니다. 2,3위 업체들이 가격을 낮춰서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것보다 그냥 같이 가격을 따라 올려서 현재 점유율에서 매출을 더 늘리는 방법을 선택한다는 겁니다. 적극적인 고객 확보 전략보다는 안정적인 수익 확보를 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간장과 된장, 고추장 등 기초 식품들은 기호 식품과 달리 가격을 올려도 다른 제품으로 갈아탈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참 이상한 가격 인상 현상은 이런 바탕 위에서 나타나는 겁니다. 특별한 시장 구조 때문에 소비자들이 맥없이 당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 가격 인상폭까지는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가격 인상 시기만 봤더니 재미난 현상을 찾게 됐는데요. 계속 인상이 반복되면 그 때는 인상폭을 한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소비자 물가 인상과 식품 가격 인상을 따져보면 또 어떤 이야기 거리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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