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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닥치고' 수학, 행복 수학이 되기를

[취재파일] '닥치고' 수학, 행복 수학이 되기를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떠돕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동생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이 정도 조건이 충족돼야 자녀를 명문대에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우리 교육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어서 마냥 웃을 수는 없습니다. 

지난주 8시 뉴스를 통해 보도해드린 '닥치고 수학'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우리나라 수학 교육의 적나라한 실태를 체감했습니다. 사교육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너무나 치열했고, 그 안에서 우리 학생들은 참 힘겹게 어렵고 귀찮고 괴로운 수학에 목매고 있었습니다.

국제수학과학성취도 비교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 실력은 세계 1위입니다. 그런데 수학을 좋아한다는 학생은 8%에 불과해 꼴찌에서 2번째 입니다.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가 수학에 목숨을 걸고 세계에서 1등할 만큼 수학 실력이 뛰어난데, 왜 학생들은 수학을 싫어할까? '닥치고 수학' 시리즈는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습니다.

학생들이 수학을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가지 방식으로 접근하다가 '선행학습'이라는 개념과 만나게 됐습니다. 선행학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선행학습이 예측가능한 수준의 선행학습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에 배울 내용을 미리 예습해보는 차원이 아니라 학생들의 신체적 정서적 발달과정을 아예 무시해 버리는 일방적이고 무시무시한 학습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 발달 과정에 따라 그 나이에 이해할 수 있는 지식 수준이 있고, 그 나이에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의 선행학습은 그런 기준선을 뛰어 넘어버렸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의 64%, 중학생 56%, 고등학생 63%가 최소한 한 학기 이상 수학 진도를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그럼 이 학생들이 모두 수학에서 90점 이상의 성적을 받을까요?

아닙니다. 한 사교육업체에서 전국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 1637곳의 지난해 1학기 수학 성적을 분석해 봤더니, 평균 점수가 51.2점이 나왔습니다. 100점 만점에 절반인 50점을 겨우 넘긴다는 건데, 이런 수준 미달 학교가 무려 741곳이나 됐습니다.

고등학교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그런걸까 싶어서 중학교도 한번 분석해 봤는데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전국 중학교 3188곳의 수학 시험을 분석해 봤더니 평균 성적은 62.4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선행하고 공부해도 점수는 고작 50점, 60점 입니다.

학부모들이 상상이나 할까요? 비싼 돈 들여 가계 빚을 내서라도 자녀 공부시키는 게 대한민국 학부모인데 자녀 성적이 겨우 반타작이라니...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방학이 되면 하루에 5시간씩 매일매일 해야 하는 수학. 그날 그날 점수가 안 좋으면 자습실에 들어가 점수가 기준점을 넘을 때까지 집에 가지 못하는 수학. 그렇게 해도 성적이 안 나오는 수학. 이런 수학을 학생들이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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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교육비 총 규모는 19조 원으로 3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23만6천 원으로 전년 대비 4천 원 줄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건 다 떨어졌는데 1인당 수학 사교육만 7%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영어가 사교육 시장의 주인공이었는데, 이제는 영어를 제치고 수학이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우리가 처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취재하는 내내 해결책에 대해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수학 성적이 대입을 좌지우지 하는 현행 대입 체제를 뜯어 고치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해 사교육에 내몰린 학생들을 학교로 돌아오게 만들어야 할 겁니다.

'수포자' 들어보셨습니까? 수학을 포기하는 사람의 줄임말입니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고3 교실에 가보면 수능 직전에 한 반에 절반은 수포자 입니다. 수학을 못해도 국어를 잘하면, 사회를 잘하면, 과학을 잘하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면 수학에 목맬 이유가 없을 겁니다.

수학에 목맬 필요가 없어지면 선행학습은 국제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수학 머리가 뛰어난 영재 학생들만 필요에 의해 선택할 수 있게 되겠지요. 눈 앞에 쌓여 있는 엄청난 진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감만 털어내도 수학은 즐길 수 있는 재미난 학문이 될 겁니다.

새 정부 교육정책의 핵심은 '꿈과 끼를 키워주는 행복교육' 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수학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고 수학을 통해 끼를 발현할 수 있도록, 이번 시리즈가 그 출발점이 되어서 우리 수학 교육이 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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