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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희망 전도사 故 임윤택 지다

[취재파일] 희망 전도사 故 임윤택 지다
설 연휴 마지막 날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던 길이었습니다. 기차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후배에게서 그룹 울랄라 세션의 리더 임윤택 씨가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찌나 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던지, 같은 칸에 탄 승객들이 모두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상가에 가면 늘 남겨진 사람들이 걱정이 됐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고인이 그리웠습니다. 

'슈퍼스타K'가 시작이었습니다. 어떤 재밌는 사람들이 나와서 얼마나 재밌게 편집이 됐을까, 기대가 컸습니다. 울랄라 세션은 첫 등장부터 눈에 띄었습니다. 언제나 편집이 그렇듯, 눈부신 외모의 참가자는 얼굴을 자세히 비춰주는 '클로즈업' 샷이 많이 들어가는데 울랄라 세션은 4명의 얼굴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떼샷'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강한 인상이 남았습니다. 신나는 댄스와 가창력, 거기에 돋보였던 건 4명의 기막힌 호흡이었습니다. 얼마나 연습을 하면, 얼마나 오랜 시간을 같이 하면 저런 재주가 나올까. 거의 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오디션이 진행될수록 고인의 얘기가 나옵니다. 울랄라 세션이 이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계기, 고인이 위암 4기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윤택이 형이 아파요'라고 말하는 남자들의 표정은 울상이었고,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해보자고 도전한 이들의 포부는 비장했습니다. 그 이후로 이들의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다면서 어떻게 저렇게 춤을 출까, 옆에서 함께 춤을 추는 사람들은 얼마나 조마조마 할까...시청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혹시 무대에서 실수하진 않을까, 무대가 끝나고 내려가면 주저앉는건 아닐까, 다음 번 생방송엔 못나오는 건 아닐까...매번 아무 문제 없이 끝난 무대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의 춤은 결코 아픈 사람의 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울랄라 세션은 슈퍼스타K 에서 우승합니다. 그리고 활동을 계속합니다. 위암 4기 환자가 아픈데 없는 저보다 더 활기찹니다. 얼굴은 더 말라가는데, 목소리는 당찹니다. '한번도 아프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아프지 않을수가 있죠? 전 머리가 너무 아파서 밤새 데굴데굴 굴러다닐 땐, 그냥 이대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 '아프지 않다'고 합니다. 상금으로 멤버들이 함께 생활할 집을 사고, 시종일관 방방 뛰는 새 앨범에, 뮤직 비디오가 나왔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고, 토크쇼에도 나오고, CF에도 나옵니다. 쉬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짜 아프지 않다고 생각해서 아프지 않았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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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4기에 1년 넘게 산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결혼해 딸까지 낳았던 건 기적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고인 덕분에 그 '기적'이란게 어렵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행복을 찾아서, 열정을 둘 곳을 찾아서 살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10년 넘은 무명 생활 끝에 찾아온 기회 앞에 그는 형으로, 리더로, 남편으로, 아빠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새 앨범 준비에 바빴고, 신혼여행을 가지 못해 미안해 했다고 합니다. 암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에게는 물론이고, 그저 TV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일반인들에게도 그는 희망전도사였습니다.

2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고인은 많은 이들의 환호 속에서 손을 흔들었지만 악플도 많았습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동적인 모습에, 위암이란게 가짜라며 고통을 후벼파기도 했습니다. 투병끝에 사망했다는 기사에도 도넘은 악플은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고인의 삶은 그런 악플에 대응할 시간조차 없이 치열했습니다. 새 앨범은 어떨지 궁금했는데, 이제는 무대를 볼 수 없다니 벌써부터 그립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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