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관 후보자 평균 연령 '58.2세'
정홍원 총리 후보자를 포함해 국무위원 내정자 18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정치인 3명을 뺀 나머지 15명이 관료와 전문가 출신이다.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번 써봐서 능력이 확인된 사람을 다시 쓴다는 당선인 특유의 용인술도 재확인됐다. 또 진영 부위원장을 비롯해 대통령직 인수위 출신이 모두 6명이나 내각에 기용된 점도 특기할만 하다.
총리와 전체 장관 내정자 17명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 7명, 인천 2명으로 수도권이 절반을 차지했다. 또 부산·경남이 3명, 대구·경북 2명으로 영남권이 5명이었고 호남과 충청 출신이 각각 2명이었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평균 연령은 58.2세로 집계됐다.
◈ 법에도 없는 '장관' 후보자
이번 인선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미래 성장 동력을 맡게 될 거대 부처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 후보자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는 가난한 이민 1.5세대 출신으로 획기적인 통신장비를 개발해 30대 때 미국 400대 부자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 1992년 벤처회사 유리 시스템즈를 세운 이후 IT 업계의 혁신가로 인정받았고, 지난 2005년엔 노벨상 수상자를 13명이나 배출한 벨 연구소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지난해 박근혜 당선인을 여러 차례 만나 당선인이 강조한 미래 먹을 거리 창출과 창조경제의 밑그림을 그리는데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김 후보자가 맡을 '미래창조과학부'가 아직 법에도 없는 유령 부처라는 점이다. 5년 만에 부활하게 된 해양수산부의 윤진숙 후보자 역시 마찬가지다.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게 될 경제 부총리도 현 정부조직법에는 없는 직책이다.
◈ 국회에 발 묶인 정부조직법
이렇게 법에도 없는 장관 후보자가 생겨난 건 새 정부의 틀을 마련할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통상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에 장관 후보자들이 발표되는 것이 맞지만 인선이 늦어진 데다 미래창조과학부의 기능조정을 놓고 여야간 이견이 첨예하기 맞서면서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도 이런 점을 우려해 지난 15일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전화를 받은 문 비대위원장은 "협상팀에게 재량권을 달라"고 말했고 박 당선인은 "(새누리당 협상팀에) 전화를 걸겠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수위에서 마련한 정부조직법 원안대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보도채널 등에 대한 규제 권한만 방송통신위에 남기고 다른 기능은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자는 새누리당과 방송 진흥 정책 기능도 방송통신위에 남겨둬야 한다는 민주통합당은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사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여야가 정부조직법을 놓고 기싸움을 벌인 점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자체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나 지금 같은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5년간 새 정부의 대국회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걸로 보인다.
◈ 정치 실종… 산너머 산
문제는 박근혜 새 정부에 정치력을 발휘할 만한 자리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무장관 성격의 특임장관이 폐지된 데다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국정 경험이 없는 법조인 출신으로 야당을 상대로 정치력을 발휘하기에는 약하다는 평가다. 그나마 허태열 비서실장에게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다.
물론 박근혜 당선인이 대야 협상에 직접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박 당선인도 원칙파이지 협상파는 아니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즉 박 당선인의 정치 스타일 자체가 원칙과 소신에 입각해 뜻을 관철시키는 스타일로, 타협과 중재에 능숙한 편은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박 당선인은 지난해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다른 후보들과 경선 규칙 문제를 놓고 마찰을 빚자 이를 협상과 중재로 풀기 보다 당헌·당규라는 원칙에 따라 처리한 바가 있다. 후보 선출 이후 지지율 추락으로 당내에서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박 당선인은 특유의 뚝심으로 정면 돌파를 택했다.
◈ 국회선진화법, 박근혜 정부 복병되나
상대적으로 빈약한 정치력과 함께 지난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선진화법도 박근혜 새 정부에게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몸싸움의 원인으로 지적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대폭 축소한 법안으로 박 당선인도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통과를 주장했던 법이다.
이 법은 여야 간 합의 없이는 사실상 법안 처리를 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어 본회의 처리 당시부터 '식물국회'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신속처리제 등으로 보완장치를 마련하긴 했지만 이 역시 여야 합의 없이는 작동이 불가능하다. 새누리당이 과반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아무리 원칙과 소신의 지도자이고 특유의 뚝심을 갖고 있다 해도 국회의 협조를 얻지 못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아름다운 선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임 대통령들이 그나마 주요 정책 사안을 본인의 뜻대로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도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박 당선인은 이달 초 부산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새 정부에서는 비서실장이건 총리건 장관이건 국회에 좀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는 참석자들의 제언을 받고 "그래야 한다. 19대 국회는 선진화법이 통과됐으니 아주 중요하다"면서 "다들 국회에 출석하고 필요할 때는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맞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당선인이 자신이 약속했던 100% 공약 실천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 야당 탓하는 건 분을 삭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일처리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총리, 비서실장, 장관으로 안된다면 박 당선인이라도 나서야 한다. 첫 시험대가 정부조직법 개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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