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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장님은 왜 금배지를 찾아갔나?

국회의원 변호사 겸직법안 처리해야

[취재파일] 이장님은 왜 금배지를 찾아갔나?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가 어렵다지요. 시골에서 김 이장 찾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주소만 하나 들고 무턱대고 내려간 시골. 김 이장 찾는데 2시간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초저녁 벌써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은 마을. 멀리서 바퀴 달린 보조기에 의지해 어디론가 향하는 할머니의 실루엣. 이방인의 냄새를 맡았는지 집집마다 목이 쉬어라 짖는 개들. 주소지 건물에는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주인 것으로 보이는 수입 승용차는 비닐에 덮인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무작정 기다리는, 이른바 뻗치기를 한 지 1시간. 김 이장은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았습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뒷집을 찾아갔습니다. 시골은 시골인가 봅니다. 이장님댁 숟가락 개수도 알 것 같은 노인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무턱대고 드린 질문에, 노부부는 이장님의 평소 동선과 퇴근 시각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안 들어왔으면 늦어질 거라고, 읍내 다방을 가보라고 했습니다. 이장님 아내가 다방을 운영한다고 그랬습니다. 아파트 옆집이었으면 아무 것도 몰랐을 텐데 말입니다. 시계는 한창 저녁 식사 시간을 가리키고. 1시간 더 뻗쳐봤자 별다른 소득이 없을 거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읍내 다방 위치를 물어 찾아갔습니다. 좁은 2차로 도로변을 마주하고 늘어선 세탁소, 치킨집, 그리고 수많은 다방들. 이장 부인이 한다는 다방을 금방 발견했습니다.

다방 앞에서 내리자마자 농협 건물 2층에서 기계적인 풍악 소리가 들렸습니다. 노래방 기계가 뱉어내는 반주입니다. 쿵짝 쿵짝, 쿵짝 쿵짝. 흥겨운 노랫소리가 섞입니다. 좁은 도로 위에는 무슨 동네 감투를 새로 쓰게 됐다며, 취임식을 경축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이제 묻지 않아도, 김 이장은 100% 노래방 기계 옆에 있겠거니 싶습니다. 읍내 최대 행사에 이장님이 빠질 리가 있을까요. 다방에 들어가, 지나가다 들렀다고, 이장님의 행방을 묻자, 여주인은 역시나 풍악 울리는 곳에 전화를 걸어 남편을 데리고 왔습니다. 서울에서 손님이 오셨다고요. 다방 아메리카노 석 잔이 도자기에 나왔습니다. 곧 이장이 멀끔한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채 다방에 들어왔습니다. 카메라는 돌아갑니다.

90도로 꾸벅, 인사부터 합니다. 불필요한 경계심은 불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은 180도 돌려서 합니다. 돌직구는 이장님, 왜 국회의원 변호사를 선임하셨어요? 이렇게 던져야 할 텐데, 변화구는 이장님, 변호사님 동네에서 정말 선임하기 어려운 분인데, 아니 어떻게 하셨어요? 빙빙 돌아갑니다. 감정 노동자처럼, 미소도 잃지 않습니다. 마치 끈끈한 인간미가 묻어나는 향토 미담을 듣는 것처럼. 그렇게 얼굴 치장을 하고 변화구만 던져도, 투구수가 많아지면 취재 의도를 알게 마련입니다. 중간에 들어온 부인에게, 이장님은 이 사람들이 나를 취조하고 있다고, 한 마디 불평을 던집니다. 그때쯤이면, 카메라는 돌아갈 만큼 돌아갔습니다.

이장님은 재판 1심에서 져서, 국회의원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공문서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정부 보조금 2,500만 원을 가로채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는데, 일반 변호사가 맡은 1심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국회의원 변호사는 뭔가 다를 거라고 굳게 믿었다고 했습니다. 왜요? 뻔히 아는 걸 왜 물어보느냐고 말합니다. 마을 이장이다 보니, 예전 초선 때 알게 된 지역구 국회의원이라고 했습니다. 1심에서 패소하자, 자신이 먼저 수임을 부탁했는데, 수임료도 못 드렸다고 했습니다. 금배지 변호사는 그렇게 ‘지역구 주민=형사 피고’의 사건을 맡게 됩니다. 그게 2012년 8월, 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넉 달 만입니다.

금배지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한 지 사흘 만에 지방에 있는 한 법원에 출석합니다. 국회의원 신분으로 법정에 나간 겁니다. 지난해 8월 24일인데, 그날은 임시국회 회기 중이었습니다. 의원은 법정에서 판사에게 “정상 참작을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1심 형량(징역 6월 및 벌금 100만 원에 집행유예 2년)이 무거우니, 깎아달라는 얘기입니다. 이장님의 바람이 무색하게, 항소는 기각됐습니다. 금배지 변호사는 상고에서도 이장님 변호인에 단독으로 이름을 올렸지만,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1심 형량이 최종 확정됐습니다. 금배지는 믿었던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장님은 아직도 집행유예 기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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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의 힘. 국회의원이 변호해주면 뭔가 다를 것이라는 허망한 기대감, 피고가 원하는 바를 잘 알면서도, 지역구 주민의 민원성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사건을 끝내 수임하고, 현역 의원 신분으로 법정에 나가 판사에게 한 마디를 하고야 마는 국회의원. 의원님 한 마디에 대한 선망 뒤에는, 판사도 사람이니까 금배지의 영향권 안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습니다. 판사한테는 의원님 ‘빽’ 정도 돼야 한다는 걸까요. 금배지 파워에 대한 거래는 19대 때도, 대선 때문에 의원들이 그렇게 바빴던 지난해에도 줄곧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민사 사건에서는 ‘금배지의 힘’에 대한 기대가 재판의 물을 흐려놓습니다. 소송의 상대방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역 의원이 변호하는 한 버스회사의 퇴직 직원들. 임금 지급을 놓고 2년째 소송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19대 의원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사건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변호를 계속하는 사례입니다. 버스회사는 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의원이 됐으면 변호인을 알아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입니다. 승소하지 않는 이상, 입으로는 판사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재판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기 힘듭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습니다. 금배지 변호사에게 당한 패소는 씁쓸하고 찝찝하게 마련입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빽'에 밀려서 졌다는 엉뚱한 후회도 낳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초, 18대 국회에서도 금배지 변호사의 폐해를 고발한 적이 있는데, 19대 국회에서는 겸직 숫자만 조금 줄었을 뿐, 의원들은 여전히 자유롭게 사건을 수임하고 계십니다. 이제 대선도 끝났고, 마음만 먹으면 본격적으로 '투잡'을 뛸 여건이 조성됐습니다. 지금은 법사위 의원들만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해서 변호사를 휴업하는 게 관례가 되어왔지만, 법사위 아닌 의원들이 사건을 마음대로 맡으면서 사법부에 대한 신뢰까지 흔드는 상황입니다. 의원 개인의 직업의 자유를 내세우기에는 변호사 겸직으로 인한 문제가 너무 뿌리 깊어 보입니다. 변호사 겸직이 그냥 돈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상임위에 배정되든 변호사 겸직을 원천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안, 이게 통과돼야, 이장님이 지역구 의원에게 쪼르르 달려가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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