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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건강하게만 돌아와 다오"

군 의료 체계, 이대로 믿을 수 있나?

[취재파일] "건강하게만 돌아와 다오"
우리나라 국민 중 군(軍)과 관련 없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군 복무를 했거나 할 예정인 사람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군 복무를 한 사람. 많은 국민들이 이렇게 두 개의 범주 안에 포함될 텐데요. 두 경우 모두 해당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 중 누군가를 군에 보내본 경험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갖고 있을 겁니다.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분단국가. 우리나라에서 군대는 국민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렸을 땐 군인 ‘아저씨’에게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편지를 썼고, 대학 시절엔 군 입대를 앞둔 친구들과 수없이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지역번호 033으로 시작하는 발신번호가 뜨면 군대 간 친구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이번엔 누굴까’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받았고, 말년휴가를 나온 작대기 네 개짜리 친구들에겐 ‘벌써 전역하느냐’며 시간 참 빨리 간다는 짓궂은 농담을 던지곤 했습니다. 오빠를 만나러 철원까지 면회를 갔다가 1박 2일 동안 군인들과 함께 노래방, 볼링장, PC방을 전전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송터미널에서 돌아오는 서울행 버스를 탔을 때 들던 해방감이란(!)

지난 몇 년간 제 주위에서 수많은 이들이 군대에 갔습니다. 앞으로 가게 될 친구들도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군에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인사는 항상 똑같았습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돌아와.”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던 겨울날이었습니다. 입대하는 오빠를 따라 의정부에 갔습니다. 연병장을 가득 찬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습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웃음소리조차 마냥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곳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훈련소에 보내고 긴 이별의 시작을 마주해야하는 순간. 오빠와 돌아가면서 포옹을 하던 우리 가족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제발 건강하게만 돌아와. 아프지 말고.” 저희 가족뿐만 아니라 아마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각자의 상대에게 그 말을 했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 군에 얽힌 추억을 늘어놓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닙니다. 군에서는 병사 혹은 전력으로 여겨질 누군가가 어딘 가에선 둘도 없이 소중한 가족이고, 친구고, 사랑이란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들도 한 명의 ‘사람’입니다. 군에 다녀온 이들에게서 듣는 말 중 가장 가슴 아픈 말은 인간 대접을 못 받았다는 말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는 그들은 존경받아야 마땅합니다. 최소한 인간 취급을 못 받는 일은 없어야겠죠.

인간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 기본권에는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보건권’이 포함됩니다. 군인(人) 역시 사람이기에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아플 땐 아프다고 말할 수 있고, 아픈 곳이 있으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건강을 되찾을 때까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써놓고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데 저는 왜 이 권리를 강조하는 걸까요. 너무나도 당연한 그 권리가 군에서는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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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군 인권센터가 휴가 나온 현역 병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7%가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지 못 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수치는 지난 2007년 인권위에서 실시한 군 인권 실태조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더 높게 나왔습니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병사들이 느끼는 진료권이 향상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선임이나 간부의 눈치가 보여서라는 대답이 무려 45%를 차지했습니다. 꾀병 취급을 당한다는 대답도 30%를 넘었고 군 의료를 믿을 수 없다는 대답 역시 20%에 달했습니다.

제가 직접 만나본 현역과 예비역 병사들의 증언도 설문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디가 아프거나 다쳐도 일단은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참아본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 경험적인 판단에서 나온 행동일 겁니다. 이정도 아픈 걸로 얘기했다간 나만 더 피곤해진다는 사실을 군에서 보낸 시간동안 보고 들은 경험으로 판단하게 되는 거죠.

실제로 훈련소에서 어깨를 크게 다쳐 의병 전역한 취재원 한 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참을 참다가 도저히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수술을 받아야한다고 말했는데, 그때부터 일주일이 정말 지옥 같았다.” 그동안은 어떻게 참았느냐, 꾀병 아니냐, 지금까지도 참았는데 앞으로도 더 참아봐라, 넌 이제 군 생활 끝난 줄 알아라 등등 폭언과 괴롭힘이 이어졌고, 일주일동안 잠을 거의 한숨도 재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 친구는 군 병원에서 세 번의 수술을 받고 전역했습니다. 꽤나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도 치료를 받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던 겁니다. 그는 수술 이후 부대로 돌아갔으면 어땠을 지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말했습니다. 군 병원에서 오래 있다 온 병사들은 ‘나약한’ 이미지로 찍혀서 심한 경우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기수 열외’까지 당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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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요한 건 이 문제가 비단 병사들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취재했던 신 상병의 경우엔 지휘관들의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그는 혹한기 훈련을 마치고나서부터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열흘 동안 그가 받은 처방은 두통약이 전부였습니다. 일반적인 두통약으로 고통이 해소되지 않으면 더 큰 병을 의심해야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부대 지휘관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픈 상태에서 다른 부대에 파견을 보내고 경계근무를 세웠습니다. 신 상병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지자 지휘관들은 뒤늦게 그를 국군병원에 데려갔습니다. 뇌수막염이 의심된다는 소견으로 척수액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뇌수막염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군은 다시 그에게 두통약을 처방했습니다.

결국 신 상병은 예정돼있던 휴가를 며칠 일찍 나왔습니다. 가족들이 ‘아이가 너무 아프니 제발 내보내달라’고 사정해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그것도 병가가 아니라 포상휴가였습니다. 가족들은 휴가를 나온 신 상병을 바로 병원에 데려갔고 그곳에서 ‘악성 뇌종양’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군에서는 ‘우리도 CT촬영을 했으면 알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일반인이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는 큰 종양 덩어리가 머리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들은 CT촬영을 하지 않았을까요? 심지어 그가 척수액 검사를 받은 군 병원에는 CT기계도 있었습니다. 군에서는 ‘다음에 다시 오면 하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이미 신 상병은 2주 동안 극심한 두통에 시달린 상태였습니다. 그는 머리를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팠다고, 관물대에 머리를 부딪치고, 주먹으로 계속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고 말했습니다. 악성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인데 오죽했을까요. 그런데 환자 상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2주를 허비해놓고서는 ‘다음에 하려고 했다’니, 군을 믿고 건강한 아들, 동생, 친구,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이들에게 너무 무책임한 말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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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에 걸린 신 상병 기사가 나간 후, 수많은 반응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댓글은 대부분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다며 분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지인들 역시 스스로의 경험을 말하며 기사를 보고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통쾌했다고, 정말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예상했던 대로 군 관계자들로부터 항의도 많이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군의관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하겠다는 메일을 보내신 분도 있었습니다.

아직 기사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저로서는 그 모든 반응들이 하나하나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신 상병과 매우 유사한 사례를 얘기하면서 취재해달라고 호소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는 군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병을 안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심지어는 이미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졌습니다. 처음 신 상병을 만났을 때 느꼈던 비참한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신 상병의 이야기만으로도 군 의료 체계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 기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은 신 상병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나니 이 문제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변화를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철옹성 같은 군의 내부 시스템 문제가 기사 하나만으로 바뀔 거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끊임없이 말해야 하고, 그래서 언젠가는 고쳐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수많은 국민들이 군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며 “건강하게만 돌아와”달라고 간절히 바라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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