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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저씨들의 무책임한 '땐스!'

[취재파일] 아저씨들의 무책임한 '땐스!'
중년 아저씨들의 춤은 어떨까요?

막상 잘 안떠오르실 겁니다. 아줌마들은 두 팔을 내밀고 좌우로 흔드는 일명 고속버스 춤, 2,30대 젊은 층은 남녀가 함께 어우러지거나, 머리만 앞뒤로 흔들어도 뭔가 세련돼 보이는 춤, 이보다 더 젊은 10대들은 아이돌처럼 동작이 빠른 춤...그런데 아저씨들의 춤은 생각해 보니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아저씨들의 춤은 노래방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든 볼 수 있는게 아닙니다. 아저씨들은 술을 몇잔 마신 이후에나 자발적으로(?) 리듬에 몸을 맡기실 테니까요.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춤을 춘다기 보다 그냥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국 이것도 '춤'이라고 하기엔 맞질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아저씨들이 무대에서 '막춤'을 추는 공연이 준비중이라고 해서 찾아가 봤습니다. 마음 가는대로 움직이는 60대 할머니들의 '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숨겨진 끼와 열정을 발산하는 10대들의 '사심없는 땐스'를 차례로 선보였던 무용가 안은미 씨의 마지막 공연, '아저씨들의 무책임한 땐스'가 만들어지는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기로 한 40대에서 60대 아저씨들은 20여명, 공통점은 모두 춤을 배워본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연습 첫 날 서로가 어색하고 어떤 춤을 춰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던 아저씨들. 하지만 음악이 계속되자 아저씨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몸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두 팔을, 두 다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좀처럼 박자와 맞지 않는 춤이 계속됩니다. 팔과 다리는 따로 놀고,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래서 따라 추라고 하면 기억하기도 힘든 '몸짓'이 계속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다. 표정이 밝고,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동작 하나하나에 개성이 묻어나는 춤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저씨들의 춤에는 개개인의 성격이 드러나고, 각자 하고픈 얘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동작을 배워본 적이 없다보니 생각대로 춤을 추게 되는데, 자신의 생각이 여과없이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집에서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밖에서는 매일같이 선후배들과 부대껴야 하는 직장인으로 살아온 중년 아저씨들, 하지만 제대로 감정 표현조차 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젊었을 때는 다른 이들의 눈치 안보고 맘껏 자신을 표현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춤 추는걸 누가 볼까 무섭고, 스트레스는 술과 담배로 푸는게 더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아저씨들의 춤에는 이런 호소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남들 앞에서 춤을 춘다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텐데, 아저씨들은 그런 부끄러움을 잊고 오로지 나 자신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은퇴 이후 할 일이 없어진 아저씨, 뮤지컬 배우인 아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아저씨, 하루종일 컴퓨터만 보고 앉아있다가 뭔가 몸을 움직이고 싶던 아저씨...다양한 의지를 가진 아저씨들이 모여있는 셈입니다.

이런 '아저씨'란 신선한 재료(!)를 가지고 무용가 안은미 씨는 이제 요리를 시작합니다. 속박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아저씨들, 모든 책임감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아저씨들, 안은미 씨의 공연은 우리 사회 중년 아저씨들의 얘기들로 채워집니다. 지난 해부터 전국을 돌며 아저씨들의 춤을 영상으로 기록했고, 연습실에서 발견한 아저씨들의 특징을 토대로 안은미 무용단이 신선한 무대를 구성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매일 저녁 퇴근 이후 연습실에서 정열을 불태우고 있는 아저씨들의 즉흥 댄스가 이어집니다. 각본없는 즉흥 공연, 그래서 공연 내내 무대는 매번 다르게 진행됩니다. 공연 이름도 '아저씨들의 무책임한 땐스'로 결정했습니다. 앞으로 3주 동안 아저씨들은 퇴근 이후 연습실에서 춤 연습을 합니다. 전문가가 춤을 가르쳐 주는게 아니라 매번 추고 싶은 춤을 추는게 바로 연습입니다. 무대에서 하고 싶은 얘기를 찾는게 목적입니다. 

잘 짜여진 완벽한 각본을 관객들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시대는 지났다는 안은미씨와 아저씨들. '시민이 참여하는', '관객과 소통하는' 이런 말 많지만, '내가 곧 주인공'인 공연이 뭔지 제대로 보여줄 기세입니다. 3주간 계속된 연습 끝에 공연 당일 얼마나 춤을 잘 추는지, 아니 관객들에게 대체 어떤 얘기를 해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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