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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조금 불편하고, 느려도 괜찮습니다

[취재파일] 조금 불편하고, 느려도 괜찮습니다
지난 해 말이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인상적인 한 구절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인간은 하이-테크가 발전할수록 정서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로우-테크를 찾게 된다. 의술이 발전할수록 대체 의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되고,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교통수단이 발전할수록 걷기 열풍이 일어나고, 첨단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인문학을 찾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의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츠의 글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다운 뛰어난 통찰력이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난 그 문구를 다시 떠올린 건, 어느 문구점에서였습니다. 평소 즐겨 쓰는 만년필을 사러 문구점에 갔다가, 저처럼 만년필을 사러온 어느 중년 남성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여러 종류의 만년필을 써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직업적인 특성과 인간적인 호기심에 말을 붙여봤습니다. “만년필 즐겨 자주 쓰시나 봐요? 혹시 글을 쓰시는 작가세요?” 그 중년 남성은 자신을 변호사라고 소개했습니다. 오래 전,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썼던 만년필이 그리워져서, 얼마 전부터 만년필을 다시 찾았다고 했습니다. 두드리고 터치하는 데 익숙해져 손에 땀이 나고 글씨도 삐뚤빼뚤 엉성하지만, 한 자 한 자 눌러 쓰며 행복을 다시 찾았다고 했습니다. 빠르고 편리해진 디지털 시대에 역설적으로 찾아온 아날로그식 소통.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그는 글을 쓰며 삶의 쉼표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아날로그 VS 디지털 
진도를 더 나가기 전에 우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부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둘의 차이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면,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전파’와 ‘숫자’라는 개념으로도 구분할 수 있는데요, 아날로그는 곡선이라는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고, 디지털은 0과 1을 사용한 2진법으로 정보를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아날로그 신호는 전류의 주파수나 진폭 등 연속적인 변화로 전류를 전달하고, 디지털 신호는 전류가 흐르는 상태(1) 혹은 흐르지 않는 상태(0) 2가지를 조합해서 신호를 전달합니다. 시계를 이용해 설명해 드리면 이해하시기 쉬울 것 같은데요, 초침이 있는 시계는 초침이 분침을 움직이고, 분침은 다시 시침을 움직입니다. 하지만, 전자시계는 초침, 시침, 분침 모두 0과 1, 2진법에 따라 각기 따로 작동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우리는 바야흐로 ‘불연속성’이 지배하는 ‘디지털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레코드판이 사라진 자리를 카세트테이프가 대신하고, 테이프가 사라진 자리를 CD가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시다시피 컴퓨터 파일이 득세했고요. 하지만, 그것들 사이에는 전혀 연속성이 없습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자고 나면 전혀 새로운 개념이 새로 출현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얘기했던 것처럼 ‘단절의 시대(Disconnected age)’에 살고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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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고 낯선 것 VS 익숙하고 친숙한 것
하지만, 이런 급격한 정서적 변하는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새로운 이념, 낯선 제도, 지금까지 접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기기. 모든 게 낯설고, 이질적이고 또 무섭습니다. 이런 변화 앞에 서면, 우리 몸은 ‘교감신경’을 가동해 새로운 존재에 맞서게 됩니다. ‘노르에피네프린’ 같은 물질이 나오면서 몸은 긴장하게 되고, 혈압과 맥박이 올라가고, 소화액 분비가 줄어들고, 한마디로 스트레스를 받은 ‘피곤한 상황’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 반대로, 익숙하고 자주 접해서 친숙한 것들을 만나면 ‘부교감신경’을 자극돼 몸과 마음이 이완되며 편안해집니다. 우리가 아날로그를 찾는 이유가 그런 게 아닐까요? 제가 만난 ‘LP 음악 카페’에서 만난 시민, ‘손 글씨(켈리그래피)’ 학원을 찾는 분들, 1년 뒤 받아볼 편지를 정성껏 쓰시는 분들 모두 불편하고 느리지만 익숙하고 친숙한 무엇을 찾아서 나선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614182)

대나무는 어느 정도 높이 자라면 성장을 멈춥니다. 그 대신 옆으로 넓어지는 부피 성장을 시작합니다. 그 부피 성장은 대나무의 ‘마디’를 만듭니다. 가느다란 대나무가 비바람이 치고 폭풍이 불어도 쓰러지거나 꺾이지 않고 올곧게 자라는 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옆으로 튀어나와 있는 바로 이 ‘마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마디’들을 형성하기 위해, 대나무는 잠시 성장을 멈춥니다. 성장을 멈춤으로써 더 올곧게 치솟아 오르는 이 ‘멈춤의 역설’. 잠시 뒤도 돌아보고, 주변도 챙겨보는 여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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