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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택견 접목한 스턴트 액션 만들 것"

영화 '베를린' 정두홍 무술감독1

[취재파일] "택견 접목한 스턴트 액션 만들 것"
인터뷰 가기 전날, 포털 사이트에서 '정두홍'이라는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연관검색어와 지식IN에 이런 글들이 올라옵니다. "정두홍 감독은 우리나라 싸움 랭킹 몇위 쯤 될까요?" "F1 우승자와 정두홍 감독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최홍만과 정두홍 중에 누가 더 승률이 높을까요?"  이건 뭐,,,  6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도 아니고. 내가 지금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가 몬스터를 만나러 가는 건가. 비가 세차게 내리는 차창 밖을 보며 '그래, 인터뷰하다가 흠씬 두들겨 맞으면 재미는 있겠네, 인터넷에서 화제될거야. 이렇게라도 다시보기 1위 기자가 되어보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파주 해이리에 있는 서울액션스쿨은 이미 대중에게 노출이 많이 된 곳입니다. 자사 드라마라 수줍긴 하지만, 201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스턴트맨 길라임도 틈만 나면 이곳에 와서 훈련을 받고 그랬더랬습니다. 서울액션스쿨은 우리나라 무술연기자 교육기관으로는 가장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교육환경도 최고 수준인데요. 이곳의 창립자가 바로 정두홍 무술감독입니다. 

정두홍 감독을 인터뷰하겠다,고 당차게 기획서를 내민 건 영화 '베를린' 때문이었습니다. 베를린 보셨습니까? 전 두번 봤는데(한번 보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다 읽어내지 못하는 아마추어라 화제작은 꼭 2번씩 봅니다) 두번째 보니까 훨씬 재밌더군요. 감독이 틈틈이 새겨 넣은 복선과 코드들이 많아서 두번째 봤을 땐 '와우!'였습니다. 액션 영화가 으레 팝콘무비로 받아들여지는 우리 관객들의 경향으로 봐선, 조금은 불친절하고 어려운 영화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개봉작 중에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헤이와이어'가 이런 느낌이었는데, 액션 장르에 심취한 마니아들에게는 모든 클리세를 피해가보겠다고 선언한 이런 영화들이 더 반갑기도 할 겁니다.

액션 장르엔 클리세가 많습니다. 소재와 전개가 한정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총을 쏜다, 뭐 어떻게 참신한 장면을 만들어보겠습니까? 장전하고 조준하고 쏘겠죠... 사이사이에 춤을 출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담배를 입에 물거나 역광이 비추는 쪽을 향해 눈을 찡그리는 장면은 이미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야밤에 범인이 경찰에게 쫓겨 달아난다, 골목은 좁을 테고, 지붕은 낮을 테죠. 범인은 가끔 미끄러질 거고, 때아닌 도둑고양이가 흠칫 놀라 쓰레기더미 사이로 달아나는 장면도 들어갈 것 같습니다. 가로등은 붉을 테고, 이상하리만큼 주민들은 그렇게 소란스러운데도 대문 밖으로 얼굴 내미는 일 없이 쌔근쌔근 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뭘 더 어떻게 신선한 장면과 상황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정두홍 감독은 인터뷰 내내 이런 어려움에 대해 털어놓았습니다. '뭘 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산다고 말했습니다. 전작 '짝패(2006)'에서 복층 구조의 술집 내부에서 떼거리 싸움샷을 찍었을 때를 예로 들었습니다. 당시 숱하게 회자되던 영화 '킬빌(2003)'에서 우마 서먼이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고 칼을 휘두르던 바로 그 장면과 똑같다며 악플이 쇄도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동양 무술은 칼이나 주먹으로 싸우는 아날로그 액션일 수 밖에 없고요, 실내에서 떼거리샷을 찍는다면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복층 구조가 좋구요, 그러려면 일본풍의 술집이 좋습니다. 이건 무술감독이라면 누구나 경험으로 알고 있는 정보예요. 크리에이티브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이쪽 업계에서 어느 장면, 어느 배경이 좋더라며 다른 영화를 그대로 베끼는 일은 없어요.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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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은 그런 의미에서 정감독의 고민의 총합이 어떤 식으로 해결됐는지 보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표동성(하정우 역)의 집으로 찾아온 적이 냉장고에서 갓 꺼낸(?) 통조림으로 냅다 흡씬 두들겨 맞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총을 '쏘는' 도구가 아닌 신체를 '가격'하는 무기로 사용하는 장면도 신선했습니다. 영화 초반 표동성과 정진수(한석규 역)가 총부리를 '관자놀이'를 겨누는 게 어떤 의미인지 대화하는 대목이 후반 표동성과 동명수(류승범 역) 두 사제가 애증관계였을 거라 짐작케 하는 근거로 사용되는데, 액션이 시각적인 볼거리 뿐 아니라 스토리에 잘 녹아들어간 느낌이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요원인 표동수가 시종일관 사용하는 액션의 느낌이 강렬했습니다. 알고 보니 '격술'이었는데요, 북한 군부가 지금도 훈련에 사용하는 무술이라고 하네요. 리듬이나 곡선 없이 팔과 다리를 수직으로 뻗고 내빼는 느낌의 무술이었습니다. '아프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정두홍 감독이 동영상 자료 등을 참고해 이번 영화에서 시연하고 접목한 무술이라고 하네요.

인터뷰가 끝나고 격술 시범 좀 보여주시라, 해서 저와 마주서 대련하는 장면이 뉴스에 나갔는데요. 그 과정에서 합을 맞춰 손을 뻗는데 제가 주저하느라 정감독의 손과 살짝 스쳤는데 바로 손등에 피멍이 드는 불상사가 있었습니다... 손바닥도 아니고 손등이 스쳤는데 무려 '장풍'이 뿜어져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움직임을 최소화한 시범이었는데요 워낙 단단하게 단련된 몸과 액션이다 보니 저같은 말랑말랑 근력'0의' 두부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던 겁니다.

* 정두홍 감독의 액션 이야기와 영화 '베를린'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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