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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씨,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홍석천 씨,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왜 커밍아웃을 했냐고요? 단 1초, 단 하루라도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왜?"냐고 물을 때마다 홍석천은 수없이 이 같은 말을 되뇌었을 것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지 13년. 여전히 홍석천은 대한민국 연예계 유일한 커밍아웃 동성애자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 4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홍석천은 방송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게스트였다. 홍석천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지 않고 활동하면서 죄책감에 시달렸고, 커밍아웃 이후에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편견과 선입견에 부딪히며 상처받아왔다. 그는 누구보다 힐링이 필요했고, 지금도 필요한 사람이었다.

이날 방송은 홍석천이 지난 2000년 커밍아웃한 이래 처음으로 공중파 방송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한 자리였다. 홍석천은 "어려서부터 남들과 좀 달랐다고 어머니가 말했다"면서 그 다름을 깨닫기까지의 오랜 여정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홍석천은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인기를 누린 후에도 끊임없이 커밍아웃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는 "난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인기와 돈을 누리면서 내 성정체성을 숨겨야 했다"면서 "그러나 단 하루라도 단 1초, 단 하루도 내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이었고, 2000년대 초반이었다. 밀레니엄 시대가 왔다고 해서 사람들의 생각에도 새로운 변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도 변한 건 없다"고 말했다.

커밍아웃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데는 불같은 사랑을 했던 연인의 역할도 컸다. 동성애자 결혼이 합법화된 네덜란드 나라에서 온 연인은 어느 날 홍석천에게 "너의 그림자로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고, 이 말은 홍석천에게 커밍아웃을 하게끔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후폭풍은 만만치 않았다. 방송 출연 정지는 물론이고, 부모님의 외면에 부딪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성소수자로부터도 "왜 하필 네가 우리를 대표하냐"는 거센 비난을 받으며 그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려야 했다.

홍석천은 "커밍아웃 한 것을 후회 하냐"는 이경규의 질문에 "후회하죠.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후회한다. 날 만나려면 커밍아웃을 해야 할 텐데 상대방을 자신의 사정 때문에 못할 수도 있지 않냐. 내 사랑을 지키고 싶어 한 커밍아웃인데, 날 만나기 위해 누군가 또 커밍아웃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이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은 오로지 홍석천의 이야기만을 듣는데 그치지 않았다. 홍석천이 성소수자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면, MC 이경규와 김제동, 한혜진은 성소수자를 낯설게 바라보는 대중을 대변하면서 대다수가 가질 수 있는 물음표들을 아낌없이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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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홍석천의 출연을 끝까지 반대했다는 이경규는 "트렌스젠더와 동성애자는 어떻게 다른 것이냐", "동성애는 정신 질환으로 볼 수 있냐", "동성애자를 대표하기에 외모가 아쉬워서 비난을 받을 것 같지 않느냐" 등 듣기에 따라서는 불쾌할 수 있는 질문을 하며, 홍석천에게 다양한 편견과 맞설 기회를 제공했다.

홍석천은 이경규의 거듭된 질문에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해 답했다. 그는 "인생에는 B(Birth)와 D(Death)가 있어요. 그리고 그 중간에 C가 있는데 그게 선택(Choice)이에요.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B와 D사이가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세요"라며 자신이 동성애자로 사는 것은 선택의 문제였으나, 커밍 아웃을 한 것은 삶과 죽음 사이의 간극만큼이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음을 비유했다.

여전히 부모님은 자신의 결혼을 바라고 있다고 말한 홍석천은 "힘들고 치치고 외로울 때 제일 든든한 버팀목 되어주세요. 엄마, 아빤 제게 세상에서 가장 큰 분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읽으며 부모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이날 힐링 포인트는 '인간 홍석천의 진짜 모습 보여주기' 였다. 물론 그를 향한 편견의 시선이 단 90여분의 방송을 통해 없어 지리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이 방송을 통해 홍석천에 대한 아니 성소수자에 대한 선택이 이해와 존중의 시선으로 넓어질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전히 눈물샘이 마르지 않고 있는 그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홍석천 씨, 이젠 보통 사람의 행복 마음껏 누리세요"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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