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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일본 불상 도난사건이 남긴 것은…

[취재파일] 일본 불상 도난사건이 남긴 것은…
 한마디로 기가막힌 일이었습니다.
지난 28일 대전지방경찰청과 문화재청의 '도난 문화재' 관련한 기자회견 말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국인 일당이 일본 쓰시마섬(대마도로 잘 알려진)의 신사 2곳에 들어가 불상 2개를 훔쳐서 국내로 갖고 들어왔는데, 일본이 인터폴에 협조를 요구해 우리 경찰이 이들을 붙잡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훔친 불상은 우리 문화재였습니다. 하나는 8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동조여래입상, 다른 하나는 1330년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만들어져 보관돼 있던 금동관세음보살좌상. 
 머릿속에 물음표가 적어도 5개는 생겼습니다.

#1. 일본 쓰시마섬 불상 도난 사건

 경찰의 설명과 피의자의 진술을 토대로 확인한 사건 내용입니다.
 지난해 8월 69살 김 모 씨 일당은 일본 쓰시마 섬에서 불상을 훔치기로 모의를 합니다. 그리고 2달 뒤인 10월 초, 부산항을 통해 출국한 김 씨는 쓰시마시 가이진 신사에 몰래 잠입해, 단상에 모셔져 있던 동조여래입상을 들고 나옵니다. 또 간논지에선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그대로 들고 나옵니다. 문화재 절도 전과 13범인 김 씨는 쓰시마에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는걸 이미 알고 있었고, 치밀한 사전 답사 끝에 경비가 허술한 새벽 시간대 3곳의 절과 신사를 돌며 불상 2점과 대장경 1점을 훔쳐 나오는데 성공합니다.
 이틀뒤, 김 씨는 후쿠오카를 통해 출국한 뒤 배편으로 부산항에 도착합니다. 들어올 땐 불상 2개만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대장경은 배를 타기 전 버렸습니다. 후쿠오카는 검색이 허술했고, 부산항 문화재 감정실에서는 이들이 가져온 불상을 '100년이 안 된 위조 골동품'으로 판명받았습니다. 통관에 성공한 김 씨는 이 불상을 마산의 한 냉동창고에 보관해 왔습니다.
 그런데 두달 뒤, 일본 정부가 두 불상이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려옵니다. 이들이 훔친건 가짜 골동품이 아닌 국보급 문화재라는 겁니다. 경찰은 입국 서류를 뒤져 김 씨 일당의 인적 사항을 토대로 피의자들을 검거하고 마산에 있던 불상 2점을 회수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회수한 불상들이, 일본이 도난당했다고 주장하는 문화재와 일치하는지 확인작업을 거친 뒤 외교 절차에 따라 반환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2. 대체 어떤 문화재길래…

 문화재 보호법이나 유네스코 협약에 따르면 불법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문화재는 돌려주도록 돼 있습니다. 훔치거나, 빼앗아 오거나. 그런데 김 씨 일당이 훔쳐온 불상을 보니 만만한 문화재가 아녔습니다. 이 불상들은 일본에서도 문화재로 지정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5년 전 일본에서 이 불상을 실제 조사한 적이 있는 최응천 동국대 박물관장을 만났습니다. 우선 일본이 1974년 자국의 중요문화재로 지정한 동조여래입상, 동국대 박물관에 가 보니 김 씨가 훔친 불상이 왜 수작이라고 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우선 크기부터가 다릅니다. 일본에 보관된 입상은 45cm, 비슷한 시기 만들어져 우리나라에 보관된 입상은 15cm 남짓입니다. 표정도 훨씬 생생하고, 특히 금박을 입히지 않았기 때문에 요즘 표현으론 디테일이 살아있는 불상입니다. 게다가 보존 상태가 좋아 거의 훼손되지 않은 듯 보입니다. 일본에서도 감정액이 1억엔, 약 11억원에 달할 정도랍니다. 통일신라 시대 불상의 백미, 당장 우리나라에서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거란게 최 관장님의 설명입니다.
 나가사키 현 문화재로 지정된 금동관세음보살좌상, 이 불상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다는 내용이 적힌 '복장 유물'이 남아있습니다. 얇은 한지에 고려시대 말인 1330년 불교국가 고려의 서주, 그러니까 지금의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제작됐다는 내용이 확실히 적혀있습니다. 이 복장유물은 불상과 따로 보관돼 있어 김 씨 일당이 함께 훔쳐오진 못한듯 합니다. 하지만 최 관장님이 찍은 사진에는 분명히 적혀있습니다. 역시 크기와 섬세함이 느껴지는 불상으로, 국내 보관된 다른 불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김 씨는 인터넷 등을 통해 쓰시마섬에 국보급 문화재가 많다는걸 알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걸 국내에 갖고 들어와 국내에서 장물로 내놓으면 고가에 넘길 수 있을거란 확신이 있었다는걸 알수 있습니다.

#3. 어떻게 일본에 가 있지?
  
 훔쳐온 거니까 물론 돌려줘야 하는게 맞는데, 여전히 석연찮은 점이 많습니다. 이 불상들은 어쩌다 일본으로 건너가 중요한 문화재로 대접을 받고 있는걸까요?
 이상한 건 일본입니다. 이들 불상의 유출 경로를 밝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이 문화재들을 '교류' 차원에서 일본에 넘겨줬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의견들도 많습니다. 부석사에 있던 좌상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에 만들어졌는데요, 당시엔 쓰시마섬을 본거지로 한 왜구들이 해안에 인접한 서산에 넘어와 약탈이 잦았던 것도 있습니다. 또 부석사에서 수백년 전부터 신도들이 모셔오던 불상을 그대로 내줬을리 없다는게 종교계의 의견입니다. 또 누가봐도 빼어난 작품을 굳이 교류한답시고 보냈다는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질 않는다는 것. 한마디로 우리 역사에서 이미 약탈당한, 도난당한 문화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불상들은 일본에 반환해야 하는게 국제법의 논리입니다. 우리 정부는 과거 일본에 불상이 넘어간 경위에 불법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면 이를 반환하는게 법 논리인지라 대단히 예민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국민 정서는 좀 다릅니다. 일본이 불상을 훔쳐갔는지, 선물 받았는지는 알고 줘야 하는게 아니냐는 겁니다. 이 뉴스가 나간 이후 일본은 전략적으로 '일본에서 불상을 훔친 절도범을 검거하고 불상 2점을 회수했다'는 내용으로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문제의 불상은 누가 뭐래도 일본 문화재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대로 돌려준다면, 혹시 이 불상들이 약탈 문화재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더라도,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눈 앞이 캄캄해집니다.

#4. 문화재 보호, 제대로 되고 있는건가?
 
 사건으로 되돌아가 한가지 더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실 겁니다. 대체 이 불상들은 어떻게 부산항을 통과한 걸까요?
 말씀드렸다시피, 전문가라면 한 눈에 수작이라 할 정도로 크고 섬세하게 제작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산항에서는 '가짜 골동품'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들을 감정한 문화재청 직원들은 김 씨 일당이 이들 불상을 '위작처럼 교묘하게 꾸며서 들여왔다'고 해명합니다.
부산항에서는 이들 불상을 보통 문화재 감정이 이뤄지는 곳이 아닌 '보세창고'에서 감정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진흙같은 오물이 많았고 푸른색 녹이 슬어 있었다고 합니다. 불상을 고정하는데 쓰는 받침대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위조품으로 보이기 위해 위장을 했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이를 감정했다는 감정위원은 '압수된 불상은 감정 당시와는 완전히 딴판'이라고 했습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감정 절차... 정작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도 도난당하면 부산항을 빠져나가겠구나'. 김 씨 일당이 후쿠오카를 통해 일본을 빠져나왔듯이, 문화재 절도범들은 부산항을 노리겠구나, 이래서 과연 우리나라 문화재가 보호될 수 있을까요?

#5. 우리 문화재의 운명은…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15만 점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일본 쓰시마 섬에 유출된 불상만 2백여 점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본은 이들을 자국의 문화재로 지정해 놓고도, 유출 경로를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훔쳐간 신라시대 범종의 경우, '갑자기 쓰시마섬 앞바다에서 종이 솟았다'는 등 현실성 없는 기록을 만들어내 의미 부여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그걸 온전히 자국의 문화재로 받아들이게끔 교육을 시킵니다. 아쉽게도 부석사에서는 이번 불상이 어떤 경로로 절에서 사라졌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명백한 기록만 있었어도, 이런 말도 안되는 동화 같은 얘기들을 모두 뒤집을 수 있을텐데 아쉽습니다.
 기록이 있어도 쉽지 않습니다. 조선왕조의궤의 경우 약탈당한게 맞다는 확실한 기록이 발견된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오기까지 6년이 걸렸습니다. 도쿄 박물관에 있는 조선 왕실 투구는 이제서야 우리에게 공개를 할 정도로 일본은 폐쇄적입니다. 

 두 불상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아무도 기약할 수 없을 겁니다. 우리 조상들이 공들여 만든 불교 문화의 산물이 멀리 외국의 문화재가 되어 돌려주려니,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그들의 땀과 노력이, 그 혼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잘 만들어졌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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